2017. 7. 10. 12:47ㆍ카테고리 없음
[법문 듣는 법]
법문이라하는것이 원래 說할것이 없는거여.
들을 것이 없어.
설할바 법이 없고 들을바 법이 없는 것이, 이것이 참 說法이여.
부처님께서 열반회상에서 말씀허시기를,
"내가 저 녹야원에서부터 오늘 이 발제하에 이르기까지 49년 동안 한 글자도 설한바가 없느니라."
이것이 참 설법인 것입니다.
설할바 법이 있어서 설한다면, 그 설법은 틀려버린 것입니다.
설할 바 법이 없다고해서 아주 입을 꼭 다물고 법회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설할바가 없으면서도 상주설법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들도 들을 바가 없어.
들을것이 없지만 그 위법망구적으로 법문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법문을 귀로 듣고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속에 기억할 것이 있고, 알아 들어서 얻은바가 있고, 이것은 법문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그 위법망구적으로 정성을 들여서 법문을 들을때, 한마디도 들은바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색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그래가지고 그것을 통해서 얻은바가 있고 나를 구한다면 이것은 삿된 길을 행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해야 삿된 도를 행하지 않겠는가. 색상과 음성, 소리에 즉허지도 말고 색상과 음성을 여의지도 말 것이여.
...
다못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이 아닌줄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소리를 듣고, 색상을 보는 그 견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情이 다하면 능히 道와 더불어 서로 親하게 될 것이다.(송담선사 법문 세등3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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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過眼耳鼻舌身心。法無高下。
法常住不動。法離一切觀行。
法相如是、豈可說乎。
법은 안이비설신의를 넘어섰으며,
법은 높고 낮음이 없으며,
법은 항상하면서 움직이지 않으며,
법은 온갖 觀行을 여의었다.
법의 相이 이와같을진댄 어찌 설할 수 있겠는가?
夫說法者、無說無示。
其聽法者、無聞無得。
대저 법을 설하는 사람은, 설할것이 없고 보일것이 없다.
그 법을 든는 사람은, 들을것이 없고 얻을것이 없다.
-유마경 제자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