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1. 19:09ㆍ카테고리 없음
[서장書狀]을 배우신 분은 다 아시겠지마는, 증시랑曾侍郎이 대혜선사大慧禪師한테 묻는 편집便紙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선지식善知識에 참參해가지고 이... 이 참선법叅禪法을 듣고... 들었는데, 이십에 결혼을 하고 또 벼슬을 허는 중에 이 공부를 철저徹底허게 허지를 못하고 그럭저럭 이렇게 늙었습니다.
아직도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니 참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開自幼年發心。參禮知識扣問此事。弱冠之後。
即為婚宦所役。用工夫不純。因循至今老矣。未有所聞常自愧歎。)
그러나 입지立志, 뜻을 세우고 기어코 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해야겄다고하는 이 발원發願은 실로 그럭저럭한 생각이 아니고, 깨닫지 못하면 말려니와 깨달았다하며는 바로 고인 친증처親證處에 이르러야만 휴헐지지休歇之地, 큰 휴헐지지를 삼을까 하나이다,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삼을까 하나이다.”
(然而立志發願。實不在淺淺知見之問。
以為不悟則已。悟則須直到古人親證處方為大休歇之地。)
이러헌, 그 편지가운데 이러헌 마디가 있습니다.
‘깨닫지 못했으면 말려니와, 차라리 깨닫지 못했으면 말려니와 깨달았다하며는 바로 구경각究竟覺을 얻어서 불조佛祖와 같은 경지境地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저는 깨달음을 삼지 않겠습니다’이런 내용의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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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랑曾侍郎은 속가俗家에 선비요 벼슬아치로서 이렇게 철저徹底한 발원發願을 했습니다.
하물며 정법正法을 믿는 납자衲子가, 최상승最上乘을 믿는 불자佛子로서 정진精進허다가 잠꽌 무슨 소견所見 난거, 공안公案을 바로 보지도 못하고 구경究竟의 깨달음도 얻지 못한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어찌 ‘초견성이니, 한소식이니’ 하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속에 둘 수가 있겠습니까?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은 사람은 결단코 이러한 조그만한 소견을 가지고 살림을 삼어서 되겠습니까?
<금강경金剛經>에도,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이나 아나함阿那含이나 소경, 소승사과小乘四果에 최고最高에 지위地位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했다 하더라도 내가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또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고허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이미 아상我相 · 인상人相 · 중생상衆生相 · 수자상壽者相에 떨어진 것이라 어찌 그것이 참 아라한阿羅漢이겠느냐.
어찌 그것을 참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 인가를 허겠느냐.
실지實地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하더라도 ‘내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될텐데, 하물며 바른 깨달음을 얻지도 못하고 정진허다가 슬쩍 지내가는 지나쳐 버리는 그러헌 일시적一時的인 소견을 어찌 그것을 견성見性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일 것이냐 그말입니다.
우리가 얻지도 못한 것을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남에게 자랑하고, 증證허지도 못한 것을 증했다고 스스로 착각錯覺을 하고 남에게 뽐낸다면, 어찌 그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목표로 하고 자각각타각원만自覺覺他覺圓滿을 목표로 하는 정법학자正法學者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온통 사기로써 업을 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불법문중에서 이 최상승정법문중最上乘正法門中에 학자學者는,
결단코 ‘자기를 속이지 말것’이며,
‘불조를 속이지 말것’이며,
‘중생을 속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어떠헌 소견이 설사 자기도 기약하지 못헌 가운데 소견이 났다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부정否定을 해버리고 언제나 백지白紙의 초학자初學者의 입장에서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精進을 해 가야할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41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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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流數魚 흐르는 물 내려다보며 물고기를 세다】
長江如練寫秋空
俯瞰吟詩日已紅
但道游魚淸可數
區區屈指與癡同
긴 강江은 명주실로 짠듯 가을 하늘을 베껴놓았으니
내려다보며 시詩 읊는데 해는 이미 붉었네.
다만 노니는 물고기를 분명하게 셀 수 있다 말하며
구구區區하게 일일이 손가락을 꼽는다면, 미련하고 멍청한 사람과 더불어 매 한가지.
- 가정稼亭 이곡李穀. <臨流數魚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고기를 헤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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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學圃 이상좌李上佐. <박주수어도泊舟數魚圖>
16세기초. 비단에 담채, 18.7 x 15.4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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駕起鐵船入海來하니
釣竿揮處月正明이로다
性愛蟾光寒照影하야
滄溟過來渾不覺이로다.
更知道
途中却憶靑山事하야
終日行行不知行이니라
쇠배(쇠로 만든 배)를 메어 일으켜 바다에 들어오니, 낚싯대 두르는(던진) 곳에 달이 정正히 밝도다.
성性이 섬광蟾光(달빛)의 차게 비추이는 그림자를 사랑하여,
창명滄溟(넓고 큰 바다)을 지나 오매 몰록(전혀, 도무지) 알지(깨닫지) 못하도다.
또 이르는 것을 알지니(다시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니),
‘길 가운데(도중에) 청산靑山의 일을 도리어 생각하여서, 날이 맟도록 가며 감에 가는 줄을 알지 못하도다’
(종일終日토록 행行하고 행行하건만 ‘아지 못함(不知)’만을 행行하더라.)
- 함허 득통 [金剛經 五家解] <究竟無我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