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5. 09:38ㆍ카테고리 없음
【원망怨望할 것이 없어】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 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演劇을 허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俳優나 탈렌트는 각본을 쓴 작가作家가 따로있고, 그 각본에 의해서 감독이나 연출演出이 그것을 연출을 해 가지고 배우나 탈랜트를 잘 선정을 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연극을 허게 하는데, 그것은 배우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각본에 의해서, 감독監督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길 밲에는 없는 것이고 배우 지 맘대로 이리저리 못허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무량겁이라 해도 좋지만 가깝게 금생今生 일생一生 이렇게 사는 것만을 우선 생각을 해보자 이거거든-
우리가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어렸을 때를 살고 어떻게 유치원으로 국민학교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녀가지고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하고 누구와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고 어떠헌 자식을 낳냐,
그러고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 갔느냐, 생로병사 일생 만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무슨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재석천왕이나 또 어떤 염라대왕이나 어떠헌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켜 갖고 되는 일이 아니여.
전부 우리 자신이 그런 각본脚本을 썼어.
각본을 써 가지고 자기가 그 각본에 의해서 지금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각본脚本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거여.
하나도 부모를 원망怨望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선생을 원망헐 것도 없고 사회를 원망헐 것도 없고 국가를 원망헐 것도 없어.
부부간에도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고, 남편이 아내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어.
도둑질 허다가 감옥을 가도 검사나 판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거여. 지가 그 죄罪를 지어가지고 판결判決을 받아가지고 징역懲役을 사는데, 감옥을 들어가서 내나 자기를 잡아넣은 형사를 “내가 나가기만 하며는 그놈의 형사 가만 안놔둔다.” 고 이를 갈아붙이는 죄수가 있다면 그 어떻게 된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를 무기징역無期懲役을 청구請求를 하고 무기無期를 갖다가 판결判決을 내린 검사와 판사를 원망허는 죄수가 있다면 그 어떻게 된 거냐 그말이여.
가끔 전혀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안했는데 억울허게 징역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자기를 억울허게 그 징역을 살게하는 그 검... 형사나 검사나 판사를 정말... 참 중생으로서는 원망 안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억울한 사람을 억울허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말이여.
과거가 없는 금생은 없어.
바... 전부가 금생이, 금생今生에 우리가 지은 업業과 과거過去에 지은 업業이 다 연관성 있게 우리가... 모든 것이 전개되아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가 그래서 과거過去에 지은 업과 금생今生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合해가지고 우리의 미래未來가 열려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헐 수가 없으나 그 각본脚本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
우라는 탤레비젼을 보면은 거기서 전개되아 가는것을 보고 야단들이여.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며는 작가作家한테 막 편지질을 허고 전화질을 허고 방송국에다 그래가지고 “그렇게 죽여서는 안된다,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렇게 하도 전국에서 들어오며는 처음에 작가의 생각은 죽... 죽일랴고 했다가도 하도 그래 싸면 그 바꾼다고 그래요.
근데 그까짓 티비에 나온거 죽이면 어떻고 살리면 어떻고 별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가지고 금생에 너무 불행허게, 불행不幸한 일만 당하게 되았다 허면 그 각본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썼기 때문에 금생今生에 각본脚本을 달리 쓸 수는 있다 그말이여.
달리 써가지고 어찟튼지 좋은 방향으로 이렇게 틀어벌... 틀으면 좀 힘은 들란가 모르지만 자기가 쓴 각본을 자기가 방향을 바꽈 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여.
왜그러냐.
미래未來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今生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合해져가지고 미래未來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運命論이다’, ‘숙명론宿命論이다’ 이렇게 말헐 수가 없어.
불교佛敎는, 인과법因果法은 숙명론도 아니고 운명론도 아니여.
과거過去에 지은 업業도 절대로 무시헐 수가 없지만, 금생今生에 내가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허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가지고 미래未來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꽈 쓰면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그말이여.
- 송담선사 법문 52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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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비록 연극인 줄을 알지만,
최선을 다해서 그 역을 소화해 내는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