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衣裏珠 옷 안에 구슬】、<色即是空>

2020. 3. 24. 06:18카테고리 없음

 

【衣裏珠 옷 안에 구슬】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어려운 진리眞理를 우리에게 가르키고 설명을 허시기 위해서 오신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들 마음 속에도 참 부처님이 계시다’ 하는, 허는 것을 가리켜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부처님허고 우리 허고는 아주 바탕이 달라서 도저히, 전혀 하늘과 땅 만큼 동 떨어진 그러헌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부처님은 그 본 바탕이 조금도 차이가 없는 똑같은 존재다.”


옛날에 ‘양반이다’ ‘상놈이다’ 이러헌 계급階級 의식이 강할때, 특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인도 나라는 네 가지 계급이 있어서 인종 차별이 대단이 심했습니다만은, 바라문 계급이라든지 또는 왕족계급이라든지 또는 일반 농민 서민계급이나 또는 노예계급 이러헌 사 계급이 있어서 노예들은 바라문이나 왕족의 옆을 지내 가지를 못하고 옷만 스쳐가도 큰 벌을 받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이 되아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맨 먼저 ‘계급타파階級打破’를 부르짖어서 부처님의 제자를 만들 때는 농민도 출가出家를 허락을 허셨고 백정도 출가를 허락을 허셨고 또는 왕족이나 바라문도 허락을 허셨습니다.
왜 그러한 것에 구애拘礙없이 허락을 허셨냐 하면,

‘동쪽에서 흘려 들어온 물이나 서쪽에서 흘려온 물이나 또는 맑은 물이나 흙탕물이나 일단 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오면, 바다는 깨끗허다고 해서 받아들이고 더럽다고 해서 거부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종류에 물을 추호도 차별없이 다 받아 들였습니다.
받아들인, 일단 받아들이면 어떠헌 종류의 물이라도 바다에 도달하면 짠맛! 짠맛으로 변허고 마는 것처럼, 어떠헌 계급階級의 인종, 어떠헌 죄罪 많은 사람이라도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부처님 제자弟子가 되면 다 부처님의 혈통을, 진리眞理의 혈통血統을 이어받은 부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 천년이 지난 오늘날 부처님의 진리眞理,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依해서 불제자佛弟子가 되았습니다.
불자佛子가 된 이상 우리도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이요 부처님의 딸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죄 많은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을 막론하고 다 부처님과 같은 성현聖賢이 될수 있는 위대한 자격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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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에 부처님께서 말씀을 허시기를,

옛날에 어떤 큰 부자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들을 하나를 낳아 놓고 그 아들이 말 귀도 못 알아 들을 정도로 어렸을 때 그 장자 부자가 죽게 되았습니다.
그래서 그 집안에 가장 훌륭한 보배 구슬, 그 보배 구슬 하나만 있으면 평생을 먹고 쓰고도 남을 만한 그러헌 훌륭한 보배 구슬을 그 어린 애기한테 전해봤자 소용이 없어서 자기가 가장 믿는, 믿을수 있는 친구에게 그 보배 구슬을, 구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핸 것입니다.
그 보배 구슬을 어린 아이의 옷 속에다가 넣고 잘 꿰매 놓았습니다.
그리고서 그 자기 친구에게,
“이 깐난 애기 품 안에다가 보배구슬을 넣고 잘 꾸며(꿰매)놨으니 이 아이가 크거든 자네가 이 보배구슬이 있다고 허는 사실을 일러주어 가지고 그 어린아이로 하여금 먹고 입고 사는데 궁窮함이 없이 잘 살도록 일러주기를 바라네.”
이렇게 부탁을 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 몸에 간직한 보배구슬, 그 보배구슬이 자기 몸안에 있는 것을 전현 인식 하지를 못하고 부모 없는 자식이 되아서 고향을 떠나 가지고 천하를 얻어먹고 돌아 다니면서 거지 신세가 되았습니다.
그리자 어느날 자기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허다가 바로 그 소년이 자기의 친구 아들이라고 허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친구의 유언에 따라서 그 어린 거지 아이의 몸 안에 구슬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자기 몸 안에 있는 보배구슬을 꺼내 가지고 그걸 가지고 집도 사고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식량도 사고 또 부릴 사람도 사고 이래가지고 남 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허는 옷 안에 구슬, [옷 안에 구슬]이라고하는 법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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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는,
우리 안에, 우리는 이 지수화풍地水火風, 흙으로, 흙 또 물 또 불기운 바람기운 이 네 가지의 원소가 모여 가지고 이 육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네가지 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띵이는 일단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그러헌 무상無常한 존재에 지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무상한 몸땡이 속에 영원히 쓰고 또 쓰고 쓰고 남에게 주고 그래도 끓임없이 바닥이 날 줄 모르는 그러헌 보물이 이 몸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우리 몸안에 그러헌 휼륭한 보배가 있다고 허는 사실을 우리에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일려주시기 위해서 삼천년전에 부처님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사바세계에 탄생을 허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보배구슬이 우리 안에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
몸을, 오장육부를 해부를 해 보아도 그 구슬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몸띵이를 빨가 뱃겨놓고 온 몸을 두루 다 살펴보고 눈,코,입,귀, 아홉 구멍을 다 뒤져도 그 보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아홉 구멍을 다 두루 살펴 봐도 없다면 대관절 어떻게 해서 우리 몸 안에 그러헌 위대한 보배 구슬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보배구슬!
여러분들은 다이몬드라든지 무슨 그러헌 오색五色이 찬란한 그러헌 보석을 보면 굉장이 기뻐하고 부러워하고 갖고자 원하시지만 그러헌 물질로 된 보배는 언젠가는 내 몸으로 부터 떠나고야만 마는 것이고 아무리 잘 간직헌다 하더라도 도둑을 맞거나 불에 넣으면 타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부서지거나 또 형편이 어려워지면 내 몸으로부터 떠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고, 일생동안 잘, 복福이 있어서 잘 간직한다 하더라도 칠십년 팔십년 이승을 다 살고 갈때에는 그것은 가지고 갈수가 없습니다.
“왜? 죽을때 관 속에 넣어 가지고 가면 되지 않느냐!”
관 속에 그 보배 보석을 가지고 가 본들 썩어가는 육체와 함께 묻어 놓은 뿐이지 내가 그것을 가지고 가는것은 아닙니다.
몸뚱이는 목숨이 끓어지자 마자 십분이 되면 벌써 내장부터 버글버글 썩어들어 갑니다.
그때애는 우리의 몸으로부터 이 몸뚱이을 끌고 다니는 영혼은 이미 떠나가고 없기 때문에 시체와 함께 그 보석을 묻어서 같이 묻어놓아 봤자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물질로 된 보물을 욕심내고 간직 할려고 할것이 아니라 정말 금생今生 일생동안 실컷 쓰고 남고 또 이승을 하직하고 다시 새 몸을 받을 때에도 그 가지고 갈 수 있는 그러헌, 불에 넣어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훔쳐갈수도 없고 도둑 맞을수도 없는 그러헌, 그러헌 보배를 우리는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해부를 해도 나오지 아니하고 화장火葬을 해도 타지 않는 것이냐!’

‘이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 안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을 수가 있으며 있는 증거를 내 보여라!’

지금 이 송담松潭이 여러분께 말씀을 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송담의 말을 귀를 기울이고 지금 듣고 계십니다.

‘그 듣고 있는 놈이 무엇이냐?’

‘귀가 듣지 무엇이 듣느냐?’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이 있습니다. 귀를 통해서 듣는 놈!
지금 이 법상에 올라와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데, 저의 모습을 여러분들은 보고 있습니다.
눈이 보고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서 보고 있는 놈이 있습니다. 그 눈을 통해서 보고있는 놈!
귀를 통해서 듣고 있는놈, 그놈이 바로 여러분이 찾어야 할, 개발해야 할, 여러분이 깨달러야 할 여러분의 영원한 보물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불법佛法이요 참선叅禪인 것입니다.
그것을 찾는 공부가 바로 도道를 닦는 것인 것입니다.
그것 찾는 공부 밖에는 인생으로서 태어나서 할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공부를 허는 목적, 돈을 버는 목적, 정치를 허는 목적, 모든 목적이 보다 더 잘사는데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행복허게 살기 위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하고 정치도 해야하고 예술도 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돈 많이 번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많이 헌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가 된다고 해서 꼭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헌다고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궁극의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나, 나를 찾는 공부, 참 나를 찾는 공부만이 인생으로써 해야 할 가장 급하고 우선적인 소중한 일이다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켜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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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他一時】


聞聲是證時
見色是證處

念念釋迦出世
步步彌勒下生


문성 시증시聞聲 是證時다,
소리를 듣는 그때가 바로 참 나로 돌아가야 할 때다.

견색 시증처見色 是證處요,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산을 보던지 나무를 보던지 또는 사람을 보던지 어떠헌 색상色相을 본 바로 그 때가, 그곳이 참 나로 돌아가야헌, 돌아가는 그 곳이다 이것입니다.

참 나는 어떻게 찾는냐?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야만 있느냐, 부처님을 모신 절에만 가야만 찾느냐?
그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든지 또는 들에서든지 또는 직장에서든지 기차나 버스 속에서든지 어디서 언제 무엇을 허고 있는지 간에,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릴 때 그때 ‘이 무엇고?’
눈으로 무엇을, 산을, 산을 보고 새를 보고 기차를 보고 사람을 보고 무슨 빛깔 청,황,적,백 무슨 빛깔을 보던지 무슨 모냥을 보던지 볼 그 찰나가 바로 ‘이 무엇고?’
이것이 바로 참 나, 자성불自性佛, 내 몸안에 있는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는 그 찰라더라 이것입니다.

이러헌 마음가짐으로 일분 일분 한시간 한시간을 살아가고 닦아가고 공부해 간다면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時)더라.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년 전에 네팔 룸비니 동산에서만 출세하신것이 아니라,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 무엇고?’ 할 그 찰라 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時)라.

부처님께서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에 말씀허시기를,
‘오십 육억 칠천말년 뒤에 미륵불이 염부재, 이 사바세계에 석가모니불 다음 부처님으로 다음 교주로 탄생을 허셨다.’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그러나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한 생각 한 생각 한 걸음 한 걸음 옮길때에도 ‘이 무엇고’를 놓치지 아니헐때, ‘이무엇고?’ 를 관조觀照할때 그때 그때가 바로 미륵불이 하생헌 때(時)다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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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원컨대 법계法界에 모든 중생들이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일시一時에 성불成佛하여지이다.

- 송담선사 법문 14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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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即是空>

眼是色不能見 只是眞空能見 耳是色不能聞 只是眞空能聞 鼻是色不能嗅 只是眞空能嗅 舌是色不能說 只是眞空能說 身是色不能覺觸 只是眞空能覺觸 脚(腳)是色不能行 只是眞空能行 手是色不能行拳 只是眞空能行拳 無眼能見 無耳能聽 無鼻能嗅 無舌能談 無脚能行 無手能行拳。
意根有名無形 分為八萬四千 見聞覺知 惣(總)歸六根 遍身互換 神通妙用。 
古云 通身是 遍身是。會得 色即是空 空即是色 色空不異 眞空妙理。所以道 色可色非眞色 空可空 非眞空。
惣(總)歸大空 畢竟空 自性空 本性空 空空 不可得空 二十空門元(原)不有。 
且道 到這裏 似個什麽。

【常憶江南三月裏,鷓鴣啼處百花新】

눈은 색(色)이니 능히 보지 못하고 다만 이 진공이 능히 보는 것이며, 귀는 색이니 능히 듣지 못하고 다만 이 진공이 능히 듣는 것이며, 코는 색이니 능히 냄새맡지 못하고 다만 이 진공이 능히 냄새 맡는 것이며, 혀는 색이니 능히 말하지 못하고 다만 이 진공이 능히 말하는 것이며, 몸뚱이는 색이니 능히 감촉하지 못하고 다만 이 진공이 능히 감촉하는 것이며, 발은 색이니 능히 걸어다니지 못하고 다만 이 진공이 걸어다니는 것이며, 손은 색이니 능히 주먹을 쥐지 못하고 다만 진공이 능히 주먹을 쥐는 것이니, 눈 없는 것이 능히 보고 귀 없는 것이 능히 들으며 코 없는 것이 능히 냄새맡고 혀 없는 것이 능히 말하며 다리 없는 것이 능히 걸어 다니고 손 없는 것이 능히 주먹을 쥐는 것이다.
의식意根은 이름만 있고 형상은 없으니, 나누면 팔만사천이 되어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만, 모두 육근六根으로 돌아가 몸에 두루 호환(바뀌어가며 작용)하니 이것이 신통묘용인 것이다.
옛 사람이 말씀하시되, "온 몸이 통째로 이것이요, 몸에 두루한 것이 이것이다."고 하였다.

【언제나 강남 삼월을 생각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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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憶江南三月裏,鷓鴣啼處百花香(鮮, 新)

언제나 강남 삼월을 생각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롭다.

- 풍혈 연소.



* 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 《대학大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