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園은가시덤불에서]

2020. 1. 21. 07:55카테고리 없음

[樂園은 가시덤불에서]

 

죽은줄아럿든 매화나무가지에 구슬가튼꼿방울을 매처주는 쇠잔한눈위에 가만히오는 봄긔운은 아름답기도함니다.
그러나 그밧게 다른하늘에서오는 알수업는향긔는, 모든꼿의죽엄을 가지고다니는 쇠잔한눈이 주는줄을 아심닛가.

 

구름은가늘고 시냇물은엿고 가을산은 비엇는데 파리한바위새이에 실컷붉은단풍은 곱기도함니다.
그러나 단풍은 노래도부르고 우름도움니다.
그러한 ‘자연의 인생’은, 가을바람의 꿈을따러 사러지고 기억記憶에만남어잇는 지난여름의 무르녹은 녹음綠陰이 주는줄을 아심닛가

 

일경초一莖草가 장육금신丈六金身이되고 장육금신丈六金身이 일경초一莖草가됨니다.
천지天地는 한보금자리오 만유萬有는 가튼소조小鳥임니다.
나는 자연自然의거울에 인생人生을비처보앗슴니다.
고통苦痛의 가시덤풀뒤에 환희歡喜의낙원樂園을 건설建設하기위하야 님을떠난 나는 아아 행복幸福임니다.

- 한용운.

 
죽은줄로만 알았던 매화나무 가지에서 구슬같은 꽃망울을 맺어주는, 쇠잔한 눈위에 가만히 오는 봄기운은 아름답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밖에 다른 하늘에서 오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모든 꽃들의 죽음을 가지고 다니는 쇠잔한 눈이 주는 것임을 그대는 아십니까?

구름은 가늘고 시냇물은 옅고 가을산은 비었는데, 파리한 바위 사이에 실컷 붉은 단풍은 곱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풍은 노래도 부르고 울음도 웁니다. 그러한 ‘자연의 인생’은, 가을 바람의 꿈을 따라서 사라지고 기억記憶에만 남아있는 지난 여름의 무르녹은 ‘녹음綠陰’이 주는 줄을 그대는 아십니까?

한 줄기 풀이 부처님 몸이 되고, 부처님 몸이 한 줄기 풀이 됩니다.

하늘과 땅은 우리의 ‘한 보금자리’요, 온갖 생명들은 같은 ‘적은 새’입니다.

나는 자연自然의 거울에 대고 인생人生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고통苦痛의 가시덤불 뒤에 환희歡喜의 낙원樂園을 건설建設하기 위하여 님을 떠난 나는, 아아! 행복幸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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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쥔 매화,

한 때는 주먹쥐고 세상에 나와,
한 때는 손을 펼쳐 세상 떠나는,

봄 마다 그 자리에 꽃을 맺지만,
봄 마다 그 자리 꽃은 이전 꽃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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