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

2019. 6. 13. 18:09카테고리 없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


近日氣如何。懷想不可極。
我昔在途中。步步多斫額。

요사이 기운은 어떠하뇨. 그리운 생각 그지없다.
내가 지난 날 여행할 때에, 걸음마다 숱하게 이마를 찧었었다.


邀我出山門。感汝情莫逆。
然汝運不通。病臥星村落。

나를 맞으려고 산문山門을 나왔으니 너의 막역莫逆한 정을 느낀다. 그러나 네 운이 좋지 못하여 별이 빛나는 촌락에 병들어 누웠구나.


呼痛六七日。無人進飮食。
寥寥秋夜長。一燈挂塵壁。

육칠일六七日을 신음할 제 사람 없으니 누가 음식을 권했으랴.
쓸쓸한 가을 밤은 길기도 한데 외로운 등불만이 먼지 낀 벽에 걸렸구나.


一夕忽見我。哀淚凝而滴。
我亦見汝哀。益增情欝抑。

어느 날 저녁, 홀연히 나를 본 그대 구슬픈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누나. 나 또한 그대의 슬픔을 보니 정이 더욱 일어나 가슴이 미어진다.


汝向神興寺。我入內隱寂。
自此斷音信。石逕雲長碧。

너는 신흥사興寺로 가고 나는 내은적內隱寂으로 들어갔었지.
이로부터 소식 끊어졌으니 돌길에 구름만이 짙푸르렀다.


堪嗟大夢中。誰是善知識。
汝我在皮袋。一生俱無益。

애처롭구나, 대몽大夢 중에 누가 선지식善知識인고.
너와 내가 가죽주머니(皮袋)에 있으니, 일생이 무익無益할 뿐이다.


四大誠苦聚。三界眞火宅。
汝我俱出沒。劫海終難測。

사대四大는 진실로 괴로움 덩어리요, 삼계三界는 참으로 화택火宅인데 너와 내가 함께 출몰出沒하니 겁해劫海를 마침내 헤아리기 어렵구나.


今幸得人身。幸叅眞法席。
糸+丐惟過去因。盲龜實遇木。

이제 다행히 사람의 몸을 얻어 참된 진리(法)의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과거의 인연을 생각하면 참으로 눈먼 거북이가 나무를 만난 것이다.


豈可虛消日。與物爭馳逐。
禪觀勤抖擻。長念無常速。

어찌 세월을 헛되이 보내며 물욕을 다투어 달리겠는가.
부지런히 참선에 정진하여 무상한 세월이 신속함을 늘 생각하라.


腹飢思餓鬼。身安念地獄。
秀也亦懶者。念佛宜付囑。

배가 주리거든 아귀를 생각하고 몸이 편안하면 지옥을 생각하라. 신수여, 너 역시 게으른 자이니 염불하기를 부탁한다.


莫使長放緩。無慙恣情慾。
須生慙愧心。念起勤即覺。

항상 방일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부끄러움이 없거나 정욕을 탐하지 말라. 모름지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어 생각이 일어날 제 곧 깨우쳐라.


早暮念四恩。爲國勤資福。
和同上下輩。去就勿乖角。

아침이나 새벽이나 네 가지 은혜를 생각하며 나라를 위하여 복을 빌고 상하上下의 무리들과 화동하여 거취去就에 떨어지고 모남이 없게 하라.


汝師乞閭閻。哀此老僧獨。
汝輩豈忘恩。自少曾養育。

너의 스승이 여염집에서 양식을 구걸하는 것을 이 노승老僧이 홀로 애달파함이라, 너희들이 어찌 그 은혜를 잊겠는가.
어릴 때 부터 길러 왔거니.


勤修出家心。拔濟沉九族。
逆耳在忠言。苦口在良藥。

출가한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 고해苦海에 잠긴 구족九族을 구제하라.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리고 양약良藥은 입에 쓰느니라.


吾言豈在口。一一俱出腹。
揩背望他日。爲汝今懇祝。

나의 말이 어찌 입에만 있겠느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배에서 나왔느니라. 다른 날 등을 어루만지기를 바라며 너희를 위하여 간절히 빈다.


- 『청허당집』 淸虛集卷之一
동국역경원/ 박경훈 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