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8. 11:02ㆍ카테고리 없음
【본체本體를 깨닫도록】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이요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이다.
욕계 색계 그 삼계가 오직 한 마음이요 마음 밖에는 딴 법이 없느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 밖에도 이 태양계를 중심해서 있는 그 세계의, 와 같은 세계가 수 억만개 무수, 무수한 세계가 있습니다.
그 무수한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이 ‘한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입니다.
그 한 마음 밖에는 딴 법이 없다.
우리 눈에는 태양이 있고 달이 있고 별이 있고 지구세계, 산천초목, 인간, 축생, 별 별 것이 다 있지마는 그것은 인연으로 뭉쳐진 것이라 언젠가는 변해가지고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가운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마음이고, 마음으로 인해서 그러헌 것들이 모여졌다 흩어졌다 하는 것이니, 중생들은 겉으로 보는 그것을 가지고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 지구 모든 것이 성주괴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생로병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있는, 본래 생할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없는 그 한 마음의 존재는 아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부처님께서는 ‘그 마음, 모든 중생도 다 가지고 있는 그 마음과, 그 마음을 깨달은 부처님과, 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중생,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가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화엄경》에 말씀을 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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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양순 영가의 사십구재를 맞이해서 첫째 그 영가와 그 유족과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은, 생사없는 진리. 왜 생사없는 진리를 우리는 가지고 있고 그 진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의 윤회를 겪으면서 고통 속에서 살고 또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가. 어떻게 허면 그 생사 속에서 살면서도 생사없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간단히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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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은 인연因緣으로 뭉쳐진 것입니다.
인연因緣으로 뭉쳐졌다가 그 인연因緣이 다하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돌과 부시를 부딪히면 거기서 불이 번쩍 나는데, 그 불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돌과 부시를 부딪히므로 해서 그 인연因緣으로 잠깐 나왔다가 또 꺼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연으로 인해서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 있다가 그래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이 육체는 받아났으나 한 살 두 살 차츰 차츰 자라서 결국은 일생을 살다가 인연이 다하면 이 육체는 땅에다 묻어도 언젠가는 없어지게 되는 거고, 화장火葬을 해서 재를 뿌려서 뿌린다해도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로병사生老病死요 온 세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와 성주괴공과 생주이멸 속에 영원불멸永遠不滅한 자성自性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眞理이고 우리는 그것을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 마음은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예’ 하고 대답할 줄을 압니다.
욕 허면 썽 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압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만 알고있지 그 마음은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모냥이 없고 상相이 없습니다.
언제 생겨날 때도 없고 멸할 때도 없습니다.
마음의 그 본성本性은 그것을 자성自性이라고 하고 불성佛性이라고 합니다마는, 그 불성에서 나오는 작용作用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이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남을 미워할 줄도 알고 이뻐할 줄도 압니다.
그 작용은 우리는 느낄 수가 있으나 그 작용이 나온 그 본체本体는, 그 자성自性 불성佛性을 우리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 몸, 육체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것이 우리를, 이 육체를 움직이고 활동을 하고 일생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면서도 우리는 그 본체를 알지를 못합니다.
그 본체를 깨닫도록 우리에게 일러주신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그것을 우리는 깨달라야 진실로 올바르게 살 수도 있고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 있게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 허시기를,
<내 법은, 불법佛法은 생각허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되 행동함이 없이 행동하고,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은 하고 여러분이 듣고 있습니다마는, 어떻게 허는 것이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고,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생각허되 생각없이 행한다고 허는 것이 어떻게 허는 것인가 도저히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양순 영가의 사십 구재를 기해서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께 간단하게 그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왜 이말씀을 허냐 하며는, 이 법法을 산승山僧이 말하고 산승의 말을 인연因緣해서 여러분이 그것을 실천에만 옮기신다면 그것이 오늘 보현궁 국양순 영가의 명복을 비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에 그렇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그 인연으로 해서 여러분이 참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을 알고 믿고 실천허신다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러헌 좋은 인연因緣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국양순 영가의 명복을 비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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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눈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코를 통해 모든 냄새를 맡고, 혀를 통해서 모든 맛을 알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끼면서 하루 하루를 살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썽도 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미워하고 살아가는데, 그러다가 그러면서 죄만 짓고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죄를 짓지 않고 앉어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느냐.
무엇을 눈에, 눈을 통해서 볼 때에 그때 바로 ‘이놈이 무엇인고’, ‘이 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 ‘이 뭣고?’
무슨 슬픈 생각이 나거나 성내는 생각이 나더라도 ‘이 뭣고?’
‘이 몸띵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것이 ‘화두話頭’라고 합니다마는, 참선叅禪하는 데에는 화두가 있어야 합니다.
그 화두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 어데서 어떠헌 것을 보고 듣고 허더라도 바로 그것에 즉即해서 ‘이 뭣고?’ 이렇게 생각허시면 ‘이뭣고’ 이 한 생각이 모든 슬픔을 이겨내고 모든 노여움을 이겨내고 모든 근심 걱정을 이겨내고 바로 그 속에서 자기로 돌아오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 있어서 최상승법인 참선叅禪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헌테 누가 욕을 할 때에 그 욕을 통해서 우리는 썽을 내게되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다투게 됩니다마는, 불법佛法을 믿고 참선을 허는 사람은 바로 그 때에 그 찰나에 ‘이 뭣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껍데기로 허게 됩니다마는, 하루 하루를 그렇게 허고, 앉어서나 서서나 모든 상황에서 항상 ‘이 뭣고?’하고 자기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잊어버리게 되고 바로 밖으로 쫓아가는데, 자꾸 허게되면 금방 자기로 돌아오게 되고, 썽이 날 법 하다가도 금방 ‘이 뭣고?’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자꾸 허다보면 저절로 되게 된 때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그 의심’ 하나가 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순수무잡純粹無雜한 자기의 마음을 유지허게 되고 차츰차츰 마음이 편안하게 되고 차츰차츰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고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거나 모든 사람을 보면 미워허는 생각이 없고, 어떠헌 상황에도 흥망성쇠興亡盛衰의 모든 상황에서도 항상 자기를 유지허게 되고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돈이 만滿하거나 벼슬이 높거나 재산 손해를 봐가지고 여의치 못하거나 좋은 자리로 부터서 쫓겨나게되는 그런 상황에서도 바로 ‘이 뭣고?’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계절에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모든 일에도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일생을 살아가게 되는데, 봄이 돌아오면 봄에 상응相應해서 일을 하게 되고, 여름은 여름 따라서 살고 가을이 되면 가을 따라서 농사짓는 사람은 추수를 허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人生에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기 때문에 태어나서 차츰 자라서 늙어서 결국은 병들어 죽어가는데, 그 속에서 불법을 믿고 ‘이 뭣고?’를 실천허는 사람은 생로병사가 바로 한 생각 한 생각 일분 일초가 진리를 닦아가는 수행이 되고, 일생을 그렇게 닦아가는 사람은 죽음이 돌아와도 두려운 것이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이 만滿허야 하고 권리가 높아야 하고 명예가 높아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허고 인생을 성공했다고 합니다마는, 자기를 다스릴 줄을 아는 사람, ‘이뭣고?’를 통해서 자기의 참 나를 찾은 사람이라야 그것이 인생으로서 진정한 성공成功이 되는 것입니다.
제법종인생諸法從因生이요 제법종인멸諸法從因滅이니라.
제법諸法은 인연으로 좇아 생겨난 것이다.
제법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을 이것을 제법諸法이라고 헙니다.
모든 것은 다 인연因緣으로 해서 이루어졌고 그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육체도 마찬가집니다.
여시멸여생如是滅與生이 사문여시설沙門如是說이니라.
인연으로 좇아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는데, 이것은 온 세계의 현상입니다.
그러나 생사, 생로병사도 원래는 껍데기만 그렇게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지 그 생사, 생로병사 춘하추동은 그 근본根本은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온도에 따라서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음 덩어리가 되고, 백도 이상이 되며는 펄펄 끓어서 증기로 변합니다.
증기로 있을 때나 얼음 덩어리로 있을 때나 물로 있을 때나 폭포수로 떨어질 때나 강물로 흘러갈 때나 물결치거나 물결이 조용하거나 물 자체의 그 원소元素는 변함이 없는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뭣고?’를 통해서 반드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으로 해서 우리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깨달으면 부처가 되기 때문에 깨달은 공부를 해야 깨닫게 되는 것이고 깨닫지 않고 번뇌망상을 다스릴 줄을 모르고 살며는 생로병사 속에 한량없는 죄만 짓고 가지고 갈 때는 높은 벼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산태미같이 모여놓은 재산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명예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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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이 돌아가실 때에는, 버스를 타고 가실 때에 여러분은 참선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설한 녹음 테이프를 선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이 취봉거사, 취송거사 신현식씨가 여러분을 위해서 사십구재에 오신 기념으로 참선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설한 녹음 테이프를 선사할 테니 그걸 가지고 가셔서 시간 있는대로 오분도 듣고 십분도 듣고 한시간도 듣고, 오늘도 듣고 내일도 듣고 자꾸 되풀이 해서 들다보며는 참선허는 앉는 법과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법과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법이 구체적으로 설해져 있을 것입니다.
이 테이프는 신현식씨가 불교청년회로 있을 때 불교 청년들을 용화사로 인솔 해가지고 와서 참선법을 구체적으로 설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해서 그 불교 청년들에게 삼십 여년 전에 설해진 녹음 테이픕니다.
오늘 여러분께 이 선물을 하신 것은, 여러분도 참선을 열심히 하셔서 진정한 영원불멸한 부처님이 되시기를 바래서, 생사해탈허시기를 바래서 이런 선물을 허신 것이니, 그 법문을 잘 듣고 참선을 잘하셔서 세세생생에 부처님 회상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약을 하면서 말을 마치고자 합니다.
-송담선사 법문 복전암 6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