閒- 한가함에 대하여

2019. 3. 18. 12:07카테고리 없음

[閒- 한가함에 대하여]


진실로 그 마음이 한가할진댄 사방으로 통하는 대로변이나 떠들썩한 시장통 속에서도 한가함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니, 어찌 반드시 인적 없는 깊은 산중이나 고즈넉한 맑은 물가에서만 한가함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집은 시장 옆에 있는지라, 해가 뜨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해가 지면 온 동네 개들이 어지럽게 짖어 댄다.
그 속에서도 나는 편안히 글을 읽는다.

때로 집 밖에 나서 보면 땀 흘리며 뛰어가는 사람도 있고, 말을 몰아 내달리는 사람도 있다. 또 수레와 말이 섞여 복잡하게 오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도 나는 홀로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이는 모두 내 마음이 한가하여 그 소란함에 나의 한가함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달리 저 세상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어지러워 한가한 자가 드무니, 그것은 마음속에 저마다 다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이는 저울눈에 마음이 빼앗기고, 벼슬살이 하는 자는 명예와 이익을 다투느라 정신이 없고, 농부는 밭 갈고 김매는데 마음을 빼앗긴다.
이처럼 날마다 무언가에 마음을 뺏겨 그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한적한 산수 간에 앉아 있다 한들 손발을 편히 드리우고 끄덕끄덕 졸기만 할 뿐 여전히 그 마음에는 평소 생각하는 게 있어 꿈속에서도 그것만을 생각할 터이니, 어느 겨를에 한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나는 “마음이 한가하면 몸은 절로 한가해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이덕무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