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佛性】
【당처當處가 바로 불성佛性이라】
대신심大信心이란 게 무엇이냐?
무엇을 믿어야 대신심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냐?
내가, 내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내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는 것이 그것이 바로 대신심이여.
‘이론상으로는 우리도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을 해서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견성이다’ 이렇게 다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따로 있고, ‘내’라고 한 놈이 불성을 속에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줄 알고, 말을 들을 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그 당처當處, 그 당처를 여의지 않고 그 당처가 바로 불성이라, 바로 그것이 자성불自性佛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놈을 철저히 믿어야 그놈을 여의고 따로 부처를 찾지 않게 되는 거여.
그놈을 여의고 따로 ‘참 부처’를 찾는 한에는 영원히 찾어도 부처님은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이 신심信心이 꽉 아주 견실堅實해야 그래야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있어.
그 다음에 대분심大憤心.
왜 내 자신이 부처이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불보살, 역대조사는 진즉 이 문제를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을 해서 생사해탈을 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해 속에서 이렇게 헤매이고 있는가?
왜 멀쩡한 부처님이면서 부처님으로서 살지를 못하고, 부처님으로서 행하지를 못하고, 어찌 이렇게 업풍에 따라서 이렇게 윤회를 거듭하고 있고, 언제 그 기한 없이 이렇게 고취苦趣 속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뼛골에 사무치도록 분심! 한탄이라고 할까? 원망이라고 할까? 기가 맥힐 일입니다. 그러한 뼛속에서부터 사무치는 그런 분심이 없고서는 도는 닦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은 동시에 발發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35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