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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반야바라밀다고>

이 뭣고? 2017. 9. 25. 20:23

<依般若波羅蜜多故>

此中間六箇(個)字 依此前種種解說 得大智慧 最尊最勝。
悟性般若 天上天下 無有及之。

여기의 중간 여섯자(般若波羅蜜多)는 이 전의 갖가지 해설에 의지해서 큰 지혜(大智慧)를 얻음이니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다. 반야의 성품을 깨달으면 하늘 위 하늘 아래에 그에 미치는 것이 없다.

古云 千日學慧 不如一日學般若。 般若通透 大光明藏
如人入海 轉入轉深 開佛知見 入佛知見 悟佛知見。
有大神通 種種變化 種種方便 應現種種相 隨機利物 引導群迷 同到彼岸。

옛 사람이 이르시되, "천일 배운 총명함이 하루 배운 반야만 같지 못하다." 하였다.
반야란 큰 광명장을 통하고 사무친 것으로,
사람이 바다에 들어감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깊어짐과 같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가고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된다.
큰 신통이 있어서, 갖가지 변화와 갖가지 방편으로 갖가지 상相에 응應하여 나투며 기틀을 따라서 사물에 이로워 미혹한 무리들을 인도하여 다함께 피안에 이른다.

三界唯心 萬法唯識 躰(體)用雙行 渾融歸一。
無二亦無三 唯有一乘法。動靜言談 句句平等 不落第二
一體同觀。平等真法界 無眾生可度 豈有差別。
脫躰(體)無依 果行圓滿 名曰蜜多。
<三世諸佛 被思大和尚 一口吞盡了也>

會麽。

【破鏡不重照 落花難上枝】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만법萬法이 오직 식識이니, 체體와 용用을 쌍雙으로 행함에 무르녹아 섞이어서(渾融) 하나로 돌아간다.
둘이란 없고 셋 또한 없어서 오직 일승법一乘法만이 있을 뿐이다.
움직이고 고요함과 언담言談하는것이 구절마다 평등平等하여 제 2에 떨어지지 않으니 하나의 체體로 같음(同)을 관觀한다.
평등한 진법계真法界로서 가히 제도할 중생이 없으니 어찌 차별이 있겠는가.
체體를 벗어나 의지할 것이 없으면서 그 과果와 행行이 원만하니 이름하여 '밀다蜜多'라 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사대화상思大和尚의 한 입에 삼켜져 다해 마쳤느니라.>

알겠는가?

【부서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하고
떨어진 꽃은 가지에 오르기 어렵네.】



*思大和尚: (515-577). 중국 천태종天台宗의 제 2조祖인 남악南岳 혜사慧思 스님의 별칭別稱. 속성은 이李씨, 남북조시대에 남예주南豫州의 무진武津에서 나다. 열 다섯살에 출가하여 법화경만 전공하고 혜문慧文의 가르침을 받아 일심으로 연구 정진하여 법화삼매法華三昧를 얻다. 그뒤 곳곳에서 그의 이름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법화경을 강의하다가 568년 남악南岳에 들어가 교화하다.
보지공寶誌公 화상이 어느날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하되, "왜 산에서 내려와 중생들을 교화하지 않고 우두커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나의 한 입에 다 삼켜졌거늘 어디에 다시 교화할 중생이 있으리요?"하였다.
진陳 대건大建 9년 6월에 입적하였다. 《대승지관大乘止觀》2권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