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집멸도>
<無苦集滅道>
小乘之人 日夜精進 六度萬行 心外求法 免此四諦 出三界 免輪廻(回) 無有是處。諸佛為大事因緣出現於世 不以小乘法濟度於群生。大乘之者 學無為法 端坐念實相 眾罪如霜露 慧日能消除。在於閑處 收攝其心 端然不動 觀一切法 皆無所有。
소승의 사람은 밤낮으로 정진精進하고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하면서 마음 밖에서 법을 구하는데, 이 사제법(四諦:고집멸도苦集滅道)에 노력해서 삼계를 뛰어나며 윤회를 벗어나려는 것은 옳지가 않다.
모든 부처님은 일대사인연(大事因緣)으로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지 소승으로서 군생群生을 제도하신것이 아니다.
대승의 사람은 무위법無為法을 배우고 단정히 앉아 실상實相을 념念하므로 온갖 죄는 서리와 이슬같아서 지혜의 날(日)이 능히 소멸시켜 없앤다. 한적한 곳에서 그 마음을 거두어 잡두리하면 단연端然히 움직임이 없어서 관觀하는 일체법이 모두가 있는 바가 없다.
反觀四大 有身非覺體 無相乃明真 自知空寂。今知空寂 頓脫淨盡 無功之功 長劫不壞 如如不動 湛然常寂。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
사대四大를 돌이켜 관觀해보면, 있는 몸은 각체覺體가 아니며 상相이 없어야 비로소 밝은 진여(明真)라 스스로 공적空寂을 알게 되리라. 지금(今)의 공적空寂을 알아 몰록 벗어나서 깨끗하게 다해버리면(조금도 남아있지 않으면), 공功이 없는 공功으로서 오랜 겁에도 무너짐이 없고, 여여如如해서 움직임이 없으며, 담연湛然해서 항상 적적寂寂하다.
【모든 법이 본(本)으로 좇아 오면서 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불자佛子가 도道 행함을 다해버리면 오는 세상에 부처 지음(作佛)을 얻으리라】
定慧力莊嚴 無迷無悟 無苦無樂 無集無滅 無道無德 無慧無失(癡) 本來無一物 明鏡亦非臺。
到這裏修證即不無 染汙即不得 一超直入如來地。
要見如來麽。
(如來似來不來似去不去
送之即不得 留之亦不住。會麼。)
【竹密不妨流水過 山高豈礙白雲飛】
정혜定慧의 힘으로 장엄莊嚴함은, 미혹함(迷)이 없어서 깨달음(悟)이 없고, 고통(苦)이 없으니 즐거움(樂)이 없으며, 모으는것(集)이 없어서 멸滅할것이 없고, 도道라 할것이 없으니 덕德이라 할것도 없으며, 슬기(慧)가 없으니 허물(失)도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밝은 거울 또한 대臺가 아니다.
이 속에 이르러서는, 닦아 증함(修證)은 없지 아니하나 오염(染汙)은 얻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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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來無一物 明鏡亦非臺
修證即不無 染汙即不得
닦아 증한(修證) 즉即 없음이 아니며(不無)
오염이 된(染汙) 즉即 얻지를 못한다(不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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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뜀에 바로 여래지如來地에 들어간다.
여래如來를 알고싶은가?
(여래如來는 오는것 같으면서 오지 않고, 가는것 같으면서 가지 않네. 보낸 즉 보낼 수 없고, 붙잡아도 또한 머무르지 않네. 알겠는가!)
【대나무 빽빽해도 흐르는 물 지나감에 방해롭지 않고,
산이 높다해도 어찌 흰 구름 날으는 것에 거리낄 것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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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苦集滅道]
伊麽則現前天地日月 萬像森羅以至二乘諦緣菩薩六度諸佛無上正等菩提 一一無主 一一無相 一一淸淨 一一寂滅 一一如銀山鐵壁相似 無有一法 容思議於其4) 間矣
이렇다면 눈앞에 나타난 천지일월天地日月과 삼라만상森羅萬像에서 부터 이승二乘에서의 사제四諦, 십이인연十二因緣, 보살의 육바라밀六度波羅蜜, 모든 부처님의 무상無上의 정각正覺, 등각等覺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주착住著이 없고 하나하나 상相이 없으며 하나하나 청정清淨하고 하나하나 적멸寂滅하여 하나하나가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아서 한 법法도 그 사이에서 사의思議(생각하고 의논하는것)함을 용납容衲하는 법法은 없는 것이다.
- 『금강반야바라밀경오가해설의』
金剛般若波羅蜜經 五家解說誼 卷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