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太平】
【本太平】
觀他也不妄
觀自亦無生
出世謌何事
人人本太平
- 청허 휴정.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허신다헌 말은 대관절 무엇을 깨달러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허셨는가.
팔만대잔경에 팔만사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이 들어있습니다마는 오늘 산승山僧은 그 가장 요점要點만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일생 동안을 무슨 마음으로 사셨으며 무슨 설법說法을 초점焦點을 두고 허셨으며 평생 동안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모든 것을 보실 때 모든중생衆生과 모든 것을 다 보실 때에는 망령妄靈되지 않다.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관자역무생觀自亦無生이다.
당신當身 스스로는 어떻게 당신當身을 보셨을까.
'남(生)이 없다'고 그렇게 보셨다.
'망령妄靈되지 아니허다'고 허는 것은 '모두가 진실眞實'이요 '모두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모두가 진리眞理'다 그 말씀이고,
스스로를 보실 때 무생無生으로 보셨다 그 말이여.
보통 우리 중생으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 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出家허셔서 고행苦行을 허셔가지고 깨달랐다.' 그렇게 우리는 중생衆生의 눈으로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 자신自身은 '남(生)이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신것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 중생들도 좋아허는 노래가 있어서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고 혼자도 부르고 여러사람이 모이면 다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의식이 있을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出世謌何事)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 부터 태평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태평허다.'
태평太平허다고 허는 것은, 모든 고통苦痛이 없으며 슬픔이 없으며 아무 근심 걱정이 헐 수 없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태평太平허다고 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고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거 같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본래 비로자나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과 똑같은 존재임을 아지를 못하고, '자기는 중생衆生이고 중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속에서 고통苦痛을 받게 되아있다.' 그렇게 착각을 허고 살기 때문에, 본래 부족함이 없고 본래 생사가 없는 존재이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이 생사生死없는 도리道理를 말씀을 허셨지마는 중생이 이해를 못허기 때문에 중생, - 원래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을 없애야 우리가 열반涅槃에 드는데 괴로움에 원인이 뭣이냐.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생사生死가 있는 것이고 고통苦痛이 있는 것이고 진리眞理 속에서 있으면서 진리를 모른 것이다. - 이렇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말씀을 허시게 된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수행修行을 쌓아 나가면 생활生活 속에서 수행修行을 쌓아 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이라고 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법문을 설하시다가 나중에 법화경法華經을 설 하실 때 부처님은 무슨 게송偈頌을 읊으셨냐 하면은,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제법이, 제법諸法이라는 것은 우주법계 삼라만상宇宙法界 森羅萬象을 모두 제법諸法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종본래從本來로, 본래부터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열반상涅槃相이다.
[열반상涅槃相이라 허는 것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佛子가 이 도리道理를 깨달으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내세來世라고 허니까 이 몸띵이 삼 십, 팔 십년, 오 십, 구십년 살다 죽은 뒤에 성불成佛한다고 그렇게 해설解說헌 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입각立脚해서 해석解釋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법이, 모든 것이 본래本來로 생사生死가 없는 진리眞理다고 허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경지境地에 들어간 것이다.
근데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고, 경전經典마다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고 허는 많은 법문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생사가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느냐 허면은, 비유를 들어서 물이라 하는 것은 영,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됩니다. 고체가 됩니다. 그것을 끓여서 100도가 되면은 증기蒸氣가 나와 가지고 기체氣體가 됩니다.
물로 되았을 때나 얼음으로 되았을 때나 증기蒸氣로 있을때나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은 변變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 따라서 모냥만 다르지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은 어떠헌 모습으로 변허거나 그 자체는 언제나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중생衆生으로 있을 때나 부자로 있으나 가난뱅이로 있으나 죄罪를 지어서 형무소에 가서 있거나 또는 더 무서운 죄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또는 업業에 따라서 축생畜生의 모습을 뒤집어 쓰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그 본성本性은 부처님으로 있을 때나 조사祖師로 있을때나 수 빈부귀천貧富貴賤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나 똑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해서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가지고 잘난 사람은 잘난 체 못난 사람은 기氣가 죽고 부자는 부자라 해 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권리가 있으면 권리가 있다고 남을 업신 여기고 자기의 권리를 휘두르고 그러다가 그것을 부정不正을 허다가 잘못되면은 또 다시 저 감옥에도 가고 그러헌 흥망성쇠興亡盛衰와 생사윤회生死輪廻와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 가슴, 몸 속에는 어떠헌 모습으로 있다허더라도 우리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비로자나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허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허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 가지고 그것을 깨달라서 영원한 생사를 해탈허게 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우리가 구현具現허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그것을 그 진리와 하나가 되기위해서 열심히 참선叅禪을 허고 근기根機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허거나 주력呪力을 허거나 염불念佛을 허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가장 유무식有無識을 막론莫論허고 누구라도 가장 있는 그 자리에서 공부헐 수, 그 도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이 뭣고-' 참선법입니다.
종파宗派에 따라서 각기 자기가 믿는 경전에 의거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허고 교화를 허고 있지마는, 우리 용화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 끊임 없이 우리의 마음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슬픈 생각도 일어나고 고통스러운 생각도 일어나지마는,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허면 그 한 생각이 자기의 본 마음을 찾는 공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장소가 따로 필요가없고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찾는 나에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산승山僧이 이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叅禪인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7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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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思量
萬思想
本太平
舊家俱
천가지 생각과
만가지 생각이
本太平이요
옛 살림살이로다.
- 송담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