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담선사 법문

【진금真金은 다시 광석鑛石이 되지 않는다】

이 뭣고? 2022. 7. 11. 19:24

○ 然金性本有。鍊之則純。如體本然。修之則淨。
故圓覺云。譬如銷金鑛。金非銷故有。雖復本來金。終以銷成就。一成真金體。不復重為鑛。

금성金性은 본래부터 있는 것으로 그것을 단련하면 순수해 지는 것이, 마치 체體는 본래로 그러한 것(本然)이어서 그것을 단련하면 깨끗해지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으로 <원각경>에 이르기를,
‘비유하면 금광金鑛을 녹임에 금金은 (광석을)녹인 까닭으로 (금이)있는 것이 아님과 같아서, 비록 다시 본래本來의 금金이 마침내 (광석을) 녹임으로써 성취成就는 되었으나, 한 번 참된 금의 몸(真金體)을 이루면 다시는 거듭 광석鑛石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 金剛經疏記科會-唐-宗密


- 금은 본래 스스로 금으로 있던 것이지, 광석이 변해서 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광석 속에서 금을 발견 했을 때도 본래로 금이었고, 순금이 된 뒤에도 역시 금임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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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된다.’ 고 허는 말도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어서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참선(參禪)을 허는 것은 본래 갖추어져 있는 자기의 마음, 자기의 부처를 갖다가 찾는 것인데, 본래 부천데, 지끔 우리가, 우리 자신이 이치(理致) 상(上)으로는 우리의, 우리의 불성(佛性)이 부처와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으니 나 자신도 부처라고 할 수가 있다 허지만, 양심적으로 생각헐 때 우리가 어디다 떳떳이 내놓고 ‘나도 부처님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이다, 나도 여래(如來)다’.헐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그거 헐 수 없는 것은 한 생각 어긴 탓으로 이렇게 되았어. 그러니 다시 정말 명실공(名實共)히 완전무결(完全無缺)한 불보살(佛菩薩)과 똑같은 불보살... 부처가 될라면 그 한 생각을 탁 돌이키는 데에 그 묘(妙)가 있는 거여. 한 생각 어긋나서 중생이 중생(衆生)에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다시 부처로 돌아갈라면 그 한 생각을 돌이키는 데에 묘(妙)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전기 스위치(switch)를 탁 누름으로써 불이 꺼졌으면, 그 눌러진 스위치를 탁 위로 올리며는 불이 탁 켜진 거와 같다. 중생성불(衆生成佛)이 찰나간(刹那間)이거든.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닦아야 성불(成佛)을 할 수가 있다.’ 교리(敎理) 상(上)으로는 그렇게 되야 있는 데가 있지만,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한 생각에 중생성불이 달려 있는 것이여. 우리가 ‘본래부처’가 아니라면 지금부터서 삼아승지겁을 닦아간다 해도 그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본래부처’거든. ‘본래부처’라고 허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본래부처’이기 때문에 다못 한 생각 어긴 탓으로 그 업(業)으로 인(因)해서 지끔 이렇게 매(昧)해가지고 있는 것뿐이지, 한 생각 탁! 돌이켜 버리면 우리도 찰나간에 스위치 한 번 넣으면 불이 캄캄해졌던 방이 불이 환히 밝아지듯이, 불이 천천히 밝아진 게 아니예요. 스위치 탁! 넣으면서 일시(一時)에 방안이 환하게 밝아지듯이,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우리도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된다.’ 고 허는 말도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어서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허는 것을 믿고 우리는 참선을 허는 것이지, ‘이렇게 험으로써 장차 부처님이 된다’고, 그거 벌써 틀린 것입니다. 방편(方便) 상(上)으로 그렇게 말허기도 하지만,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허는 사람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내가 부처’라고 처음부터서 그렇게 믿고 대드는 것입니다. 업(業)을 소멸(消滅)을 해가지고 차츰차츰 부처가 되는 것, 그것은 이 활구참선이 아닙니다. 소멸해야 할 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중생이라고 허는 그 본질(本質)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본질은 부처인 것이지.

마치 저 파도가 따로 어디서 파도라고 허는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고 물이 바로 파도인 것입니다. 물이 움직이고 있으면 그것을 파도라고 허는 것이지 물을 내놓고 파도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를 여의고 물을 찾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는 것이 아니고, 망상, 번뇌망상(煩惱妄想)을 여의고 보리(菩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번뇌(煩惱)가 바로 보리(菩提)고, 중생이 바로 부처라고 허는 것은, 파도와 물의 관계여. 파도를 띠어 내고 없애고서 물이 있는 것이 아니여. 파도가 바로 물이거든. 우리는 그렇게 처음부터서 믿고 들어가야 깨달을 수 있는 분(分)이 있는 것이지, 믿음이 잘못 되아 갖고 있으면 평생을 공부해도 깨달음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세등 57번.



“중생이라고 허는 그 본질(本質)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본질은 부처인 것이지.”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중생’이 있다면 다시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중생은 본래로 부처였기 때문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