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죽을 때 열 번 염불]

이 뭣고? 2021. 12. 3. 15:41




問:「一生習惡,積累因深;如何臨終,十念頓遣?」
묻되, 일생(一生)을 악업(惡業)만을 익혀서 진루(塵累)의 인(因)을 쌓음이 깊은데, 어찌 임종(臨終)할 때의 십념(十念)만으로 능(能)히 (모든 업장(業障)을) 몰록 없앤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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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那先經》云:『國王問那先沙門言:「人在世間,作惡至百歲;臨終時念佛,死後得生佛國。我不信是語。」
답하되, <나선경(那先經)>에서 왕이 나선사문(那先沙門)에게 묻기를, “사문(沙門)들은 ‘사람이 세간(世間)에 있으면서 악업(惡業)을 지어 백세(百歲)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임종(臨終)할 때에 부처님을 념(念)하면 죽은 뒤에 불국(佛國)에 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那先言:「如持百枚大石置船上,因船故不沒。人雖有本惡,一時念佛,不入泥犁中。其小石沒者,如人作惡不知念佛,便入泥犁中。」』
나선(那先)이 말하기를, “마치 백 장(百枚)의 큰 돌을 가져다가 배에다 실으면 배를 인(因)하는 까닭에 (큰 돌이)가라앉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비록 본래 악(惡)이 있으나 한 때에 부처님을 념(念)하면 지옥(地獄) 가운데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작은 돌도 (물에 던지면)가라앉는 것은, 마치 사람이 악(惡)을 짓되 부처님을 념(念)할 줄을 모르면, 곧 지옥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又《智論》問云:『臨死時少許時心,云何能勝終身行力?』答:『是心雖時頃少,而心力猛利。如火如毒,雖少能作大事。是垂死時心,決定勇健故,勝百歲行力,是後心名為大心;及諸根事急故,如人入陣,不惜身命,名為健。』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물어 이르길, “죽음에 임(臨)한 때의 잠깐 동안의 마음이 어찌 능히 종신(終身)토록의(평생의) 행력(行力)을 이길 수 있는가?” 답하되, “이 마음은 비록 그 시간은 아주 잠깐으로 짧으나, 마음의 힘[心力]은 맹렬(猛烈)하고 예리(銳利)하다. 마치 불이나 독(毒)과 같아서, 비록 적지만 능히 큰 일[大事]을 지을 수가 있다. 이 거의 죽어갈 때의 마음은 결정코 용맹하고 굳센 까닭에, 백세(百歲)의 행력(行力)을 이겨내므로 이 뒤의(죽을 때의) 마음을 이름하여 ‘대심(大心)’이라 하는 것이며, 나아가 제근(諸根, 六根)의 일이 급(急)한 까닭에 사람이 적진(敵陣)에서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이름하여 ‘굳세다’고 하는 것이다.” 하였다.

故知善惡無定,因緣體空;跡有昇沈,事分優劣。真金一兩,勝百兩之疊華;爝火微光,熱萬仞之𧂐草。」
그러므로 알지니, 선(善)과 악(惡)은 정해진 바가 없고 인(因)과 연(緣)의 체(體)는 공(空)하지만, 그 자취는 오르내림이 있고 일에는 우열(優劣)로 나뉨이 있는 것이다. 진금(眞金) 한 냥이 백 냥의 첩화(疊華)보다 낫고, 횃불의 작은 불이 만 길의(산처럼 쌓인) 풀 더미를 태우는 것이다.


- [만선동귀집] 항주혜일 명명지각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