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光作牛意旨如何, 어째서 소가 되았느냐?】
옛날에 운광법사(雲光法師)는 어떻게 계행(戒行)이 청정(淸淨)하고 그리고 법문(法門)을 잘하던지 그 법을 설하면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그 도량(道場)에 있는 돌도 그 법문을 듣고서 고개를 끄떡 끄떡 점두(點頭)를 헐 정도로 그렇게 참 법(法)을 잘 설(說)했습니다. 그래서 그 운광법사가 법을 설하시기를, 마치 오늘 산승(山僧)이 말하듯이,
“중이 되아가지고 시주 것만 먹고 그렇게 해태(懈怠)에 빠져서 도를 닦지 못하면, 닦지 아니하면 죽어서 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헌 법을 설했는데, 어떤 스님이 그 운광법사에게 “스님은...” 그리고 “도(道)를 이루지 못하면 맛있는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물 한 방울도 능히 소화를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헌 참 간곡한 법문을 설했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그러며는 법사스님께서는 능히 녹일 수가, 소화시킬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운광법사가 “능소(能消) 능소(能消), 능히 소화시킬 수가 있다.”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마자 운광법사는 눈 한번 깜박헐 사이에 소가 되아버렸습니다. 소가 되아가지고, 큰 황소가 되아가지고, 되아버렸는데, 그 운광법사는 입을 벌려서... 아, 본래 법문을 잘하시는 스님이니까 입을 벌려서 뭐라고 법을 설헐라고 말을 허며는 나오는 소리는 “음메~ 음매~” 아, 그래서 그렇게 되았는데, 그 소를 갖다가 소가 죽어서 그 소 껍데기를 벗겨가지고 북을 맨들았습니다. 큰 북을 맨들아서 인자 북을 치는데,
‘운광법사와 같은 그렇게 계행이 청정하고 참 수행을 알뜰히 하고 법문을 잘해서 그런 잘헌 그런 도인(道人)도 이렇게 소가 되았느니라. 하물며 우리 말세(末世)에 우리 중생(衆生)들이 그렇게 게을리 도(道)를 닦아서 되겠느냐? 어쨌든지 부지런히 도를 닦어라.’ 이래가지고 그러헌 뜻으로써 그 절절이 큰 종을 달고 큰 북을 달아가지고 그렇게 북을 치는데, 그래서 종과 북과 목탁과 운판(雲版) 이런 것을 절에서는 사물이라, ‘불교(佛敎)에 사물(四物)’이라 그러는데 사물 가운데 하나가 북이 들었는데, 그 북을 치는 뜻이 뭐 ‘육지에 중생들을 갖다가 이고득락(離苦得樂)하라고 친다.’ 이렇게 말들을 헙니다마는, 그 북이 처음에 생겨난 유래(由來)는 그 운광법사(雲光法師) 때문에 그게, 운광법사가 죽어서 소가 되아가지고... 운광법사가 된... 소가 된 그 껍데기를 벗겨서 참 정신 채리가고 그렇게 북을 치게 되았다고 전해옵니다.
「어째서 그, 그렇게 계행(戒行)이 청정(淸淨)하고 그렇게 참 수행(修行)을 잘하고 그 법문(法門)을 그렇게 잘한 그 운광법사가 어째서 소가 되았느냐? [雲光作牛意旨如何]」
이것도 공안(公案)에 하나인 것입니다. 계행을 지키지 아니하고 공부를 게을리하고 법문도 헐 줄도 모르고 그래서 소가 되았다면 그건 참 당연헌 것인데, 그렇지 않고 그렇게 참 계행이 청정하고 수행을 참 열심히 하고 그렇게 법을 잘 설하는데 왜 소가 되았느냐?
상풍괄지소고해(霜風刮地掃枯荄)헌디
수각동군영이회(誰覺東君令已廻)ㄴ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유유영매선누설(唯有嶺梅先漏洩)하야
일지독향설중개(一枝獨向雪中開)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상풍괄지소고해(霜風刮地掃枯荄)헌디
서릿바람이 온 대지(大地)를 휩쓰니, 휩쓸어서 마른 이파리를 다 휩쓸었단 말이여.
수각동군영이회(誰覺東君令已廻)여.
누가 봄이 이미 돌아온 줄을 알았겠나? 서릿바람이, 그 매서운 뼛골에 사무치는 서릿바람이 휘몰아쳐가지고 마른 이파리를 쓸어. 아직도 겨울, 겨울인데, 누가 그 서릿바람 부는 그 속에 봄이 돌아온 줄을 알았겠느냐?
유유영매선누설(唯有嶺梅先漏洩)하야
오직 저 산마루에 매화(梅花)가 그 누설(漏洩)을 했어.
(일지독향설중개(一枝獨向雪中開)
누설을 해가지고 매화가지 한 가지가 눈 속에서 홀로 피었구나.
- 송담선사 법문 세등 6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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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門徹因僧問。雲光作牛意旨如何。
師曰。陋巷不騎金色馬。回途却著破襴衫。
頌曰。
瑞草藂中懶欲眠。徐行處處逈翛然。
披毛戴角人難識。為報芒童不用鞭。: 丹霞淳。
- [禪宗頌古聯珠通集] -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