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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길에 만나게 되는】

이 뭣고? 2021. 6. 3. 10:49

【긴 여행길에 만나게 되는】


앞으로 석 달 동안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우리는 정진(精進)을 허게 됩니다. 가장 주의(注意)해야 할 점에 대해서 간곡(懇曲)히 당부(當付)말씀을 드리고자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시간 맞춰서 일어나고, 시간 맞춰서 입선(入禪)하고 방선(放禪)하고 이렇게 선방생활(禪房生活)을 허게 되고 참선(參禪)허게 됩니다마는, 가장 주의헐 것은 한 생각 단속(團束)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입선을 허거나 안 허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끊임없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눈을 볼 때에도 눈을 통해서 뭘 보고 생각하고, 귀를 통해서 무슨 말이나 소리를 들으면 그 듣는 디에 끄달리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육근(六根)을 통해서 모든 경계(境界)를 당(當)하면 거기에서 생각이 자동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일어나자, 날랴고 헌 그 찰나(刹那)에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 뭣고 화두를 허는 분은 ‘이 뭣고?’ 무자화두(無字話頭)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 화두를 들고 또 들고 그렇게 단속을 허는 것입니다. 천하에 간단하고 쉬운 것이고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자세히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자세(姿勢)를 단정히 하고 호흡(呼吸)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허면서 떠억 화두(話頭)를 드는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입니다. ‘판치생모가 무엇인가?’ 하고 판치생모를 가지고 따지는 것도 아니고, 무자는 ‘어째서 무(無)라했는고?’ ‘무(無)?’ ‘어째서?’ 그 ‘어째서?’라고 허는 거기다가 의심(疑心)의 눈을 박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허다보면 사람에 따라서 어떠헌 경계(境界)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무슨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찌릿허고 느끼는 그런 것이, 그런 경계가 있는 사람, 화두가 무슨 선풍기 돌아가듯이 그렇게 뭐 돌아간 것처럼 그런 것을 느끼는 사람, 또 어떠헌 실지(實地)는 없는 환상(幻像)이 나타나는 사람, 또 그렇게 하다 꿈, 자며는 잘 때 꿈에 어떤 경계가 나타나는 사람, 그런 것이 나타나면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그냥 요대로 해나가야 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해서 여태까지 나타나지 아니하던 경계가 나타나니까 그것을 어디 가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만날랴고 해도 만나기도 어렵고 그래서 저한테 편지를 보낸 사람도 있고, 만나고자 원해도 만나기가 어려워서 그런 분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조실(祖室)스님 법문(法門)을 들으면 자연히 그런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되리라고 믿고, 우선 그런 어떤 경계가 일어나면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거각(擧却)을 해나가면 그러헌 경계가 차츰차츰 시일(時日)이 지내가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행(旅行)을 허다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고, 눈 오는 날도 있을 것이고, 또 하늘에 까마귀나 까치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 수도 있을 것이고,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헌 경계가 일어나거나 자기의 갈 길을 열심히 가면 그만입니다." 열심히 가다보면 구름도 사라지고, 비도 그칠 것이고, 새도 지나가면 그만이고, 비행기도 날아가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낱낱이 거기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공포심(恐怖心)을 낸다든지, 그걸 가지고 점(占)을 친다든지, ‘좋다, 나쁘다’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해나가다 보면 전생(前生)에 지은 자기의 업(業)과 금생(今生)에 자기의 오장육부(五臟六腑)의 체질(體質)에 따라서, 다 같이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정진(精進)을 해도 육체상(肉體上)에 또는 정신상(精神上)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경계(境界)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좋다. 나쁘다’ 끄달리지 말고 심호흡(深呼吸)을 허면서 ‘이 뭣고?’ 판치생모 화두를 허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열심히 들어가면 저절로 그러헌 경계는 사라지고 올바른 정진궤도(精進軌道)에 올라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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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요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이요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 게송은 재(齋) 지낼 때 읊으는 게송(偈頌)으로 스님네는 다 알고 있는 게송입니다.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계절에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고,
일에는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고,
우리의 감정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습니다.

이러헌 것들이 우리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똑같은 것입니다. 한 생각 속에도 있고, 하루 동안에도 있고, 평생에도 있고 그런데, 그러헌 경계에 부딪혀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은, 활구참선을 아니헌 사람은 전부 그 경계에 끄달리게 됩니다. 끄달려서 근심걱정을 했다, 울었다, 웃었다, 골냈다, 그러면서 하루해가 지내고 일 년이 지내가고 평생이 지내갑니다. 생각으로 일어났던 것이 말로 표현을 하고, 생각 일어난 것이 그것이 나중에 행동으로 일어나서 온갖 죄업(罪業)을 짓게 되는데, 그렇게 해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게 되는 것인데,

그러헌 경계가 일어나자마자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허는 사람은 바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육근육식(六根六識)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境界)는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것이 화두(話頭)를 들도록 해주는 법문(法門)이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아니헌 사람은 그런 경계로 인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로 끌려가는데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런 경계로 인해서 자극을 받게 되며는 바로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와서 화두(話頭)를 들기 때문에, 화두를 듦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과 활구참선 아니헌 사람과는 비교헐 수 없다고 허는, 처음에 올라와서 읊은 게송이 바로 그 게송인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열심히 정진을 허면 반드시 공부에 큰 진취(進就)가 있을 것이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도반이 나올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73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