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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我相의 산山이 무너질 때】

이 뭣고? 2021. 5. 4. 10:48

아상(我相)의 산(山)이 무너질 때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이요

묘오요궁심로절(妙悟要窮心路絶)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여.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뚧은 것이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다.

묘(妙)한 깨달음은 마음 길 끊어진 것을 요(要)한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 달 아래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무루조사관(無漏祖師關)을 관(觀)하고자 한다.

 

이러헌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을 읊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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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서, 무슨 목적으로 이 삼복(三伏)더위에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고 그리고서 또 해제에 이렇게 모이셨는데, 알고 보면 제게, ‘자기에게 있는 자기를 찾는다’고 허는 자체가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밥 먹을 줄 알고, 옷 입을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도 알고, 칭찬허면 좋아할 줄도 아는, 그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자기(自己)를 그것을 또 찾는다고 허니, 고인(古人)네에 법문을 보며는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 자기가 타고 있는, 소를 타고 있으면서 그 소를 찾는 디다가(데에다가) 비유를 해서 법문을 허셨는데, 알고 보면 ‘찾는다’고 헌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으나, 번연히 그런 줄 알면서 ‘이 뭣고?’ ‘대관절 이 소소영영한 이놈이 무엇이냐?’ 하고 이렇게 찾는 것을 이것을 참선(參禪)이라 하는데, 알고서도 찾는다고 허는 것이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나, 그런 줄 알면서도 밤잠을 안자고 ‘이 뭣고?’, 허고 싶은 일이 있어도 다 버려버리고 ‘이 뭣고?’, 인생을 포기허고 ‘이 뭣고?’, 청춘을 버리고 ‘이 뭣고?’, 오욕락을 버리고 ‘이 뭣고?’, ‘이 뭣고? 이 뭣고?’ 허다보며는, 처음에는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마는 자꾸 허다보며는 참 의단(疑團)이 돈발(頓發)허게 되아서, 마침내는 통밑구녁 빠지듯이 탁! 터지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금방 조실스님의 법문에도 선하자(禪荷子)라고 허는 스님이 하도 공부를 해도 안 되니까 백일기도(百日祈禱)를 시작했습니다. 동냥을 해다가 많은 집에서 탁발(托鉢)을 해가지고 그걸로 마지(摩旨)를 지어서 올렸습니다. 마지를 지어서 올렸다가 그 밥을 다시 내려가지고 다시 또 밥을 지어서 올리고 해서 결국은..., 또 마지를 지어서 올리는데 포수(砲手)가 나타나가지고 그 밥을 “내가 배고파 죽겄으니 그 밥을 달라.” “이것은 마지를 올릴 밥이니까, 마지를 올리고 난 다음에 줄지언정 지금은 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포수가 그 선화자스님을 총으로 쏘았습니다. “팡!” 총을 쏘니까, 깜짝 놀래서 깨보니까 백일기도 마지막 회향 날 저녁에 꿈에 포수한테 총을 맞았습니다. 그 총을 맞고, 꿈에 총을 맞었는데 탁! 깨서 보니 꿈인데 거기서 자기, 자기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실스님 법문에, 중국(中國)에 천자(天子)가 그 총소리를 듣고서 “그 이 무슨...” 그 총소리가 아니라 산이 울리는... 울렸는데, “이 무슨... 왜 이렇게 산이 우느냐?” 그러니까, 신하가 말하기를 “한국에, 소국(小國)에 그 선하자(禪荷子)라고 허는 스님이 아만통(我慢桶) 깨지는 소리다.” 이런 내용에 법문을 금방 들었는데, 진짜 아만통을 터지면서 중국에 산이 울릴 정도로 그럴는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가나, 하여칸 우리 중생에, 자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보지를 못하고, 그래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허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 때문에 자기 자성(自性),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보지 못하느냐 하며는, 아상(我相), 아만심(我慢心), 아만 때문에 자기를 보지 못한다 이거거든. 

 

그래서 도(道)를 닦어서 첫 번째 올라가는 단계가, 아상(我相)이 깨져야 하거든. 중생(衆生)은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이것이 바로 중생의 살림살이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육도윤회를 헐 수 밲에 없다 이건데, 그놈이 깨지는 소리가 결국은 중국(中國) 천지(天地)를 울리는 그런 소리가 났다 이건데, 대단히 비유적인 설화(說話)겠으나, 우리는 중생으로서 무량겁을 윤회허는 것은 아애, 아만, 아치의, 그 인자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제칠식(第七識)의 그 작용(作用)이 바로 아애, 아만, 아치의 그... 아만(我慢)의... 이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자기 자성(自性), 보고 듣고 성내고 탐심(貪心)내고 허는 그런 생각이 전부 그 ‘아만’ 때문에 그런 것이니, 그 ‘아만심을 버릴 수 있어야 자기를 볼 수가 있다’ 이건데, 

 

우리는 눈을 떴다하며는 모든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결국은 그 ‘나’라고 허는 생각 때문에 번뇌가 일어난 것이니, 그 번뇌를 버리고 나를 찾는 게 아니라, 아만심이 나고 성나고 욕심이 나고 탐심내고 하는,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거나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거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듦으로 해서 결국은 언젠가는 그 아만통을 깨고 아상(我相)의 산(山)이 무너질 때 자기를 깨닫게 된다하는 것인데, 이것은 부처님을 위시(爲始)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실증(實證)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재미가 있거나 없거나 공부가 잘된다고 느껴지거나 안 느껴지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해감으로 해서 무량겁 아만통을 깨고 무량겁 업, 업(業)을 갖다가 깨트려 가지고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보는 것이 우리의 참선(參禪)하는 사람의 본업(本業)이고, 거기에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인생을 걸고 고향을 버리고 부모를 하직(下直)허고서 우리는 이 수행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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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만큼 우리가 건강할 때 더욱 정진을 해야 한다고 허는 것은 고조사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씀허신 바고, 또 산철결제가 아마 팔월 초하루부터서, (산철결제... 응? 백중날에 팔, 산철결제를 해? 그래가지고? 두달간?) 네, 백중날에, 음력 칠월 십오일에 산철결제를 해가지고 두 달간 산철결제를 허게 되니, 그때 또 인연 있는 도반들이 모여서 또 같이 정진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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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색시증시(見色是證時)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념서가출(念念釋迦出)이요

보보미륵생(步步彌勒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견색시증시(見色是證時)요

모든,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色相)은 바로 자기가 자기를 증오(證悟)하는 바로 그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 무슨 소리가 되았건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가 바로 자기 자성(自性)을 바로 보는 곳이다. 

 

 

염념서가출(念念釋迦出)이요

그래서 생각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생, 한 생각 일어날 바로 그 때 그때가 서가여래(釋迦如來)가 출세(出世)허시는 곳이요,

 

 

(보보미륵생(步步彌勒生))

걸음걸음이 한 걸을 한걸음, 산을 걷거나 들을 걷거나 어느 곳을 가거나 한 걸음, 걸음마다 미륵(彌勒)부처님이 출생(出生)허는 곳이다. 

 

고 허는 고인의 게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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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성지안선사(喚醒志安禪師)라고 허는, 우리나라 선맥(禪脈)이 환성지안선사에서 그 선맥이 그때까지 정식(正式)으로 일조사(一祖師) 일조사로 전(傳)해오다가 환성지안선사 뒤로는 선맥이 침체(沈滯)하고 강맥(講脈)으로 주욱 내려오다가, 백 년(100년) 전에 경허성우(鏡虛惺牛)라고 허는 대강사(大講師)가 강사로서 확철대오를 해가지고 한국(韓國)에 선맥(禪脈)을 다시 중흥(重興)을 했는데, 그 환성지안선사가 바로 읊으신 게송(偈頌)은,

 

「돌 우에 앉으며는 돌에 견고한 것을 배우고, 물이 흘러가는, 물을 보거나 물을 만날 때는 자기의 마음을 맑게 허는 것을 배우고, 소나무를 보거나 소나무 소리를 들으며는 자기의 마음을 곧게 허는 지조(志操)를 배우고, 밝은, 저 휘향창 밝은 달을 보며는 자기의 마음을, 자성(自性)을 밝힐 것을 생각하라. 말 없는 나무나 돌이나 흙이나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을 대(對)하며는 거기에서 선지식을 배우고, 선지식(善知識)으로 거기서 삼고 거기서 도반(道伴)을 삼어라. 삼라만상이 비록 말이 없지마는 낱낱이 다 비로자나법신체(毘盧遮那法身體)를 지니고 있으니 거기서 바로 선지식과 도반으로 거기서 무엇인가를 보고 깨달으라.」 [坐石學堅水學淸, 對松思直月思明, 無言萬像皆師友, 雖獨山林主伴成.] 이건데,

 

돌을 보고 견고헌 것을 배우고, 물을 보고 맑은 것을 배우고, 달을 보고 밝은 것을 보고, 그런 것도 대단히 좋으나, 최상승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는 우리 참선납자(參禪衲子)는 바로 거기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이다. 화두를 떠억 든다며는 거기에 무슨 견고헌 것을 배우고, 맑은 것을 배우고, 곧은 것을 배우고, 밝은 것을 배울 그러헌 단계를 훨씬 더 뛰어넘어서 자기의 자성불(自性佛), 부처님, 서가여래(釋迦如來)부처님, 미륵불(彌勒佛)을 바로 일념(一念) 속에서 친견(親見)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입니다. 

 

해제일을 맞이해서 산승(山僧)이 여러분께 부탁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고인네 게송을 읊음으로 해서 여러분께 염념(念念),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자기의 ‘본참화두’를 들고, 걸음걸음 걸을 때마다 자기의 ‘본참공안’을 관조(觀照)함으로 해서 우리는 살아있는, 삼천 년(3000년) 전에 열반(涅槃)하신 서가모니 부처님을 한 생각 일어나는 곳에서 친견(親見)하고, 오십육억칠천만 년(56억 7천만년) 뒤에 이 사바세계에 출현을 하실 미륵불을 우리 한 걸음 한 걸음 속에서 친견헐 수 있는 길이, 우리의 자성,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함으로 해서 그런 부처님을 친견(親見)하게 될 도리(道理)가 거기에 있다고 허는 것을 스스로 자각(自覺)하면서 여러 도반들에게 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날씨도 더웁고 먼 곳에서 이까지 모두 다 오시느라고 수고하신 도반들에게 이러헌 간곡한 당부(當付)에 말씀을 드리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65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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