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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각이 일어나는 곳은】

이 뭣고? 2021. 4. 30. 20:05

【그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모냥도 없는 것이, 들을 줄도 알고 볼 줄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알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이 있지마는 그 천칠백 공안 가운데에 가장 근본적(根本的)인 화두(話頭)가 「이 무엇고?」입니다. ‘시 씀마’, ‘시삼마(是甚麽)’.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 뭣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성내고 슬퍼하고 근심걱정허고, 온갖 그 바깥 경계(境界)에 대응(對應)헐... 속에서 어떤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이, 생각들이 일으킬 수 있는 그 근본당처(根本當處)가 있거든. 일어나는 그것은, 그것에... 물에서 일어나는 파도(波濤)와 같은 것이고, 그 일어나는 파도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 있는 곳에 물이 있으니까 파도 있는 곳에서 바로 ‘이 뭣고?’를 챙겨야 하거든. ‘이 뭣고?’ 허는 그놈이, 그 생각도 중생(衆生)에게는 그것이 망상(妄想)이고 생각이지만, 그 생각이 일어나는 곳은 우리는 눈으로도 볼 수 없고 손으로도 잡을 수도 없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소리가 없어. 그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모냥대... 모냥도 없는 것이 들을 줄도 알고 볼 줄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알고 음식을 보고 맛을 알고 밥을 먹을 줄도 알고, 아! 그 스님이 한 생각을 잘 내면 천사(天使)와 같은 행동도 나오고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찰나간(刹那間)에 독사(毒蛇)도 되고 구렁이도 되고 악마(惡魔)도 되고 호랭이도 될 수가 있다 그 말이여. 그 한 놈이 어떻게 영, 신령(神靈)스럽고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존재던지, 그러헌 모냥도 없는 것이, 빛깔도 없는 것이 성현(聖賢)도 될 수도 있고 지옥중생(地獄衆生)도 될 수도 있고 악마도 될 수도 있고 그런 참, 부처님도 될 수도 있고 선지식도 될 수도 있다 그 말이여. 그놈을 떠나서는 부처님도 존재헐 수가 없고 불보살도 존재헐 수도 없고 선지식도 존재할 수가 없는 거여. 

 

그걸 바로 경전에서는 ‘불성(佛性)이다’ ‘진여(眞如)다’ ‘일심(一心)이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경전마다, 또는 ‘법계(法界)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을 허셨는데, 우리는 그런 이름에 따라갈 것이 아니고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을 허는 거여. ‘이 뭣고?’ 슬퍼도 ‘이 뭣고?’ 기뻐도 ‘이 뭣고?’ 배가 고파도 ‘이 뭣고?’ 배가 아파도 ‘이 뭣고?’ 누가 나한테 억울한 소리를 해서 부화를 질러도 그 사람허고 대응해서 싸울라 허지 말고 터억 ‘이 뭣고?’ 이렇게 살아간다면 이 사바세계에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일체처 일체시에...가 전부(全部)가 다 부처님이요 선지식(善知識)이요 도를 닦는 선방(禪房)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이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비록 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뭉쳐진 이 허망하고도 부정(不淨)한 이 몸띵이를 가졌으면서도 이 몸띵이야말로 바로 이것이 불, 불법신(佛法身)이여 이게. 그렇게 생활을 허고 그렇게 도 닦은 사람은 그 사람이 바로 도인(道人)이고 선지식이요 부처님이다 그 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 이런 무상한 몸띵이를 태어나가지고 바로 부처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고, 그 길 내놓고 따로 부처님을 찾는다면 그 사람은 불교(佛敎)를 올바르게 믿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말씀은 지난 이십오 년(25년)간에 수없이 이런 뜻에 말씀을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산승이 그 동안에 더러 경(經)도 보고 어록(語錄)도 봤는데 다 봐봤자 <화엄경(華嚴經)>이나 <원각경(圓覺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이나 <금강경(金剛經)> 다 봐봤자 결국은 이 말씀이거든. 그러니 내가 그 속에서 뽑고 뽑아가지고 이 말씀을 내가 헐 수 밲에는 없어. 내가 강사(講師)도 아니고 교수(敎授)도 아닌데 낱낱이 그런 경전을 갖다가 여러분한테 다 해설, 나도 헐라고 마음먹으면 못 헌건 아니지만 그 번거롭기만 허고, 가장 골수(骨髓)만을 뽑아서 당장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각(時刻)부터서 실천해가지고 빨리 성불(成佛)헐 수 있는 길이 이것이기 때문에 항상 되풀이해서 이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풀이해서 여러분에게, 여러 도반들에게, 여러 선배 후배 법보제자(法寶弟子)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헐 수 있는 기회(機會)가 앞으로 얼마만큼 있을란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생사(生死)가 있으니까, 그건 저도 확실히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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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촌리형형례(三街村裏兄兄禮)하고

요시전두부부지(鬧市廛頭父父知)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일념회기즉재자(一念回機即在玆)호되

호리유차유천리(毫釐有差謬千里)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삼가촌리형형례(三街村裏兄兄禮)요 

요시전두부부지(鬧市廛頭父父知)다.

저 삼거리 이런, 그런 디 마을에서 “아 형님, 안녕하셨어요?” “어 동생, 잘 있었는가?” 인사(人事)하고, 요시전두(鬧市廛頭), 저그 창... 시장 장터 그런 디에서, 가게 그런 디에서 “아저씨, 이거 사가세요. 아주머니, 이거 사가세요. 이거 물견이 좋습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러헌 속에서 바로, 

 

 

일념회기즉재자(一念回機即在玆)여.

한 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바로 거기에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옛날 도인은, 도 닦는 스님은 아침에 절에서 한 숟갈 먹으면 떠억 지팽이를 짚고 시장터에 나가가지고 손님이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복잡한 통에 가가지고 장, ‘비싸다’ ‘싸다’ ‘뭣을 사라’ ‘어떠해라’ 뭐 그런 속에 가서 한 이틀 탁 있다가 저녁때는 딱 돌아오는데, ‘에, 참 오늘 장 잘 봤다.’ 그 복잡헌 속에서 허며는 잠도 안 오고, 그 복잡헌 속에서도 화두(話頭)가 터억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들리니까 그 장을 잘 봤다 그러거든. 일념회기(一念回機), 한 생각 기틀을 돌이키면 바로 거기에 이것이 있다는 게 그것이 기가 맥힌 뜻인데,

 

 

호리유차(毫釐有差)면 유천리(謬千里)다. 

한 생각 삐끗 틀리며는 천리(千里)를 어긋진다 그거거든. 

 

‘아 바로 이놈이로구나. 바로 이놈이지 그놈이 어디로 가.’ ‘이놈이다’ 하고 탁, 착각을 하며는 천리만리 어긋져버린다 이거거든. 바로 거기에 있는데 한 생각 어긋지면 아닌데, 그거, 그거, 고 대목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지, ‘바로 이놈이구나’ 생각허면 그게 아니거든. ‘이놈이로구나’허면 ‘이놈이로구나’헌 망상(妄想)이지 그것이 어찌, 그것이 어찌 깨달음이겠느냐 그 말이여. 

 

긍게,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만공(滿空)스님께서 정진하시다가 앞이 훤-히 보시는 그런 경계가 나타났다’고 허는 말씀을 여러분은 조실스님 녹음법문을 통해서 들으셨겠는데, 그 공부허다가 혹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 있기는 허나 그것이 바로 깨달음과는 별개의 문제여. 꿈에 환한 불을 본다든지, 앉았어도 뭐 저 낙동강(洛東江)이나 서해(西海)가 보인다든지, 그게 아니거든. 그런 경계(境界)가 나타날 수는 있을는지 모르나 그것이 깨달음과는 직결(直結)되는 것이 아니여. 그런 디에 팔려가지고 ‘아 내가 이것이 도통(道通)했구나’ 그것은 천리만리 떨어져버린 거고 잘못된 것이여. 그래서 공부 허다가 어떤 경계가 나타나고 부처님이 나타나고 뭐 꿈에 나타나고, 그래가지고 그것이 자기가 뭐 공부 뭐 헌것처럼, 깨달은 것처럼 착각(錯覺)을 하고 어쩌고저쩌고 자랑허고...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여. 

 

정말 여법(如法)허게 공부해나간다면, <능엄경(楞嚴經)>에 오십(삼)변마장(五十辨魔障)에 보며는 그런 여러 가지 나타나는 경계가 나타나나 그것은 잘못된 마섭(魔攝), 마경(魔境)이지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여. 설사 무엇이 미랫 일을 알게 되고, 몸에서 광명(光明)이, 사람 몸을 보며는 육체 안이 환히 들여다 보여가지고 뭐 어디가 병이 난 것을 알고, 뭐 앞으로 그 장사를 허면 재수가 있고 그 장사를 허면 안 되고, 누가 언제 죽을 줄 알고, 전혀 이 참 깨달음과는 관계가 없는 일들이어서, 공부허다가 혹 그런 경계가 본의아니게 나타났다 하더라도 깨끗이 그거 놓아버려야 하고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허도록만 잡두리 해나가고, 빨리 툭 터지기를 바랜다던지 누가 이럴 때 나를 깨닫게 해주기를 바랜다던지 그런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이러헌 마섭된 경계에 착각을 허고 그런 데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사마외도(邪魔外道)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조실(祖室)스님 법문(法門)을 항상 들어야 한다 이 말씀이여.

 

 

- 송담선사 법문 638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