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變化)의 연속(連屬】
【계기(契機)로 삼을 줄 알어야】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하고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牆)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청수정이명월현(淸水靜而明月現)하고
신심정이제불강(信心淨而諸佛降)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하고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牆)이다.
좋은 새를 초대하고자 할진대는 나무를 많이 심고, 저 먼 산 경치를 보고자 하거든 담을 짧게 쌓을지니라.
청수정이명월현(淸水靜而明月現)이요.
맑은 물이 고요하면 밝은 달이 그 물에 나타나고,
신심정이제불강(信心淨而諸佛降)이다.
신심(信心)이 청정(淸淨)하며는 모든 부처님이 강림(降臨)을 허신다 이거거든.
좋은 새들이 와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기를 바래거든 나무를, 숲을 잘 심어서 가꽈야 하다 그 말이여. 저 앞산에 좋은 경치를 볼라며는, 보고자하며는 담을 짧게 쌓아야지 담을 높이 쳐놓면 어찌 앞산을 보며, 맑은 물이 고요해서 고요허며는 자연히 거기에 밝은 달이 그 물에 나타나는 것이고, 신심이 청정하고 간절하면 반드시 불보살님이 강림을 허신다 그 말이여. 감응(感應)을 허신다 이거거든.
_______
.......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금생에 재앙을 만나고 액난을 만나게 되는데, 몇 일간 기도했다고 해서 어떻게 그 엄청난 죄(罪)가 다 소멸이 될 것이냐? 한 번 지은 죄는 부처님도 그 업은 면(免)틀, ‘정업(定業)은 면허기가 어렵다’고 허는데, 우리 중생이 어떻게 기도 몇 일간 해가지고 그 두터운 업(業)을 다 소멸(消滅)헐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회(懺悔), 진실로 참회를 하고, 참회를 허며는 업장(業障)이 소멸(消滅)하고, 또 기도를 해서 참회허고 또 발원(發願)을 하며는 자기 마음이 청정(淸淨)해지고,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업장이 소멸헌 것은 믿는 사람에게는 조끔도 의심이 날 수가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안 믿을는지 모르지만 정말 진실로 믿고 참회하고 기도허며는 반드시 그 감응(感應)이 있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어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며는 흥망성쇠(興亡盛衰), 흥했다가 없어지고 뭔 일이 잘 되다가 또 쇠퇴하기도 하고, 살다보며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어. 기쁜 일도 있고 속상하는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있어. 사계절(四季節)에는 봄도 있고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다 그 말이여. 동서남북(東西南北)이 있고. 그래서 이러헌 변화(變化), 변화가 끊임없이 연속(連屬)이 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정법(正法)을 믿고 열심히 그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參禪)을 헌 사람에게도 흥망성쇠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을 수가 있다 그 말이여. 있으나, 정법을 믿지 않고 참선을 안 헌 사람이 그러헌 흥망성쇠와 생로병사를 맞이헌 것과 믿고 안 믿고의 그 차이, 실천허고 실천허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 말이여.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흥망성쇠를 맞이허며 어떠헌 마음가짐으로 희로애락을 당해서 처리해나가며 생로병사를 어떻게 맞이하고 임하는가에는 그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
그래서 흥망성쇠(興亡盛衰)도 있어야 하는 거고,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있어야 하는데, ‘다른 집에는 다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 집에만 없어라’ 그건 너무 욕심이 과한 거야. 너나할 것 없이 흥(興)헐 때는 흥하고 망(亡)할 때는 망하되 흥망성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아니헌 것이 그것이 중요해. 마치 봄이 좋지만 여름이 돌아오면 여름에 적응하고 여름을 잘 즐길 줄 알고, 가을이 돌아오면 가을에 단풍구경에다가 또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무르익으면 그걸 추수(秋收)도 하고, 겨울이 눈이 내리고 바람이 차웁지만 겨울에 스키도 타고 겨울에 등산도 하고 겨울에 바닷가에 가서 터억 시(詩)도 읊고, 춘하추동(春夏秋冬)에 따라서 그 계절에 맞추어서 적응하고 거기에서 즐길 줄 아는, 알어야 한다 그 말이여.
사업이 잘 되아서 번창할 때는 번창한 대로 그것을 잘해나가고, 여의치 못해서 잘 안 되며는 안 되는대로 잘 지혜롭게 처리를 해서 거기서 또 살아가는 바른 길을 찾어야 하는 거지, 잘될 때는 어쩔 줄을 모르고 흥청망청 쓰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잘못 되며는 술 먹고 아주 뭐 못 견뎌서 싸우고 잠을 못자고 폐인이 되고 나중에는 자살을 허고 이렇게 되아서 쓸 것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세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그냥 그것이 춘하추동(春夏秋冬)이고, -춘하추동이, 얼마나 이 우리나라는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 국토에 우리는 태어났냐 그 말이여- 문제는 그 계절에 맞추어서 우리가 적절하게 그것을 적응하고 그것을 즐기면서 잘 그 계절을 이용해서 멋지게 살아가고 보람 있게 살아갈 줄만 안다면 변화(變化)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단 훨씬 낫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런 변화(變化)가, 변화라고 허는 것은 좋게 변헌 것도 좋지마는 때로는 비가 오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이 불기도 하고, 때로는 눈이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더웁기도 하고, 때로는 춥기도 해서, 이러헌 변화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자기로 돌아오게 하는, 참나로 돌아오게 하는, 자기를 반성(反省)허고 자기에게 채찍질 헐 수 있는 아주 없어서는 안 될 좋은 계기(契機)로 삼을 줄 알어야 한다 그 말이여. 사실은 불보살(佛菩薩)과 같이 깨달은 성현들의 눈으로 본다면 생로병사니 흥망성쇠니 이것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의 그때그때의 발로(發露)이지, 생(生)했다고 해서 좋아할 것도 없고 죽었다고 해서 슬퍼헐 것도 없는 것이여.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衆生)에게는 생은 좋고 죽음은 슬프다, 슬픈 것으로 알고, 알지마는 그 자체(自體)에 있어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바로 그것이 진여, 진여(眞如)의 발로(發露)요 열반적멸장(涅槃寂滅場)이다 그 말인데,
그런 의미에서 기도도 밤낮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고 자기의 욕심을, 중생의 끝없는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도허는 거, 그것도 소박한 뜻에서 본다며는 인생살이가 그러헌 것이니까 하나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나무랄 것은 없으나,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는 우리 형제자매도반여러분은 기도(祈禱)를 하되 좀 더 승화(昇華)된 대승적(大乘的)인 그런 기도를 헐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허며는 좀더 승화된 그런 기도를 기도라고 헐 수가 있느냐?’하며는, 참선하는 그 마음, 버리고 취할 것이 없는 그 마음으로 기도 중에는 일심(一心)으로 기도(祈禱)를 해. 기도 중에 법당(法堂)에 들어와가지고 다른 분들은 목탁에 맞춰서 ‘관세음보살’ 한데, 자기는 떠억 앉어서 ‘이 뭣고?’ 하고 그렇게 허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법당에 들어와서 목탁을 치면서 다 같이 기도헐 때는 정말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이나 ‘서가모니불’ 일심(一心)으로 부르는 거여. 그러되 부르는 동안에는 오직 ‘관세음보살’만 부르지 그 밖에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 돼. 그리고 다 기도... 정근(精勤)을 마치고 축원(祝願)헐 때는 자기의 마음속에 축원을 염(念)허는 것은 그건 좋지마는,
그리고 법당에 들어와서 기도헐 때만 관세음보살을 지극정성으로 부르고 문 밖에 나가며는 온갖 번뇌(煩惱)와 망상(妄想)과 쓸데없는 일에 챔견(參見)하고 시비(是非)하고 썽내고 이래선 안 된다 그 말이여. 적어도 칠일기도(七日祈禱) 기도 중에는 댁에서 절에를 올 때나, 절에 와서 이렇게 도량(道場)을 거닐 때나, 법당에 들어와서 정근을 허실 때나, 또 기도가 끝나고 공양을 드실 때나, 공양이 끝나고 댁으로 돌아가시는 차중에서라도 항, 일심으로 기도허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단속(團束)을 허시고, 또 가정에 돌아가셔서도 이것저것 사소한 일이나 큰일에 썽을 내서는 안 돼. 가정에 가서도 꼭 절에 와서 계실 때의 그 마음으로 가정에서도 모든 일을 하고 생활을 허시되 그런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허신 것이 바람직 허다 그 말이여.
칠일기도가 끝나서는 인자 기도가 끝났다하고 무엇이든 마구잽이 말하고 마구잽이 생각하고 마구잽이 행동할 것이 아니라, 그러헌 마음이 일 년 내내 그러헌 경건(敬虔)하고 엄숙(嚴肅)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모든 일을 처리하고 생활을 그렇게 해나간다면 그 사람에게는 삼재(三災)가 어떻게 와서 들어붙으냐 그 말이여. 삼재는 마음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인(因)해서 삼재(三災)가 일어나는 것인데, 마음에 탐진치 삼독심이 없고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신심(信心) 자비심(慈悲心) 지혜(智慧)로운 마음이 가슴에 가득 차서 그러헌 자비와 지혜로운 마음으로 말을 허게 되고 행동을 허게 되는데 어느 틈에 삼재팔난이 그 사람에게 닥쳐올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올라다가도 그 사람에게는 들어붙지를 못하고 요, 집안도 요리 둘러보고 잡귀가 붙어 있으믄 잡귀 끌고 가버릴 거다 그 말이여. 잡귀가 왔다가 선신(善神)으로 변허고 말 것이다 그 말이야.
예를 들어서 골이 단단히 나가지고 어떠헌 그... 와가지고 몽둥이를 들고 와서 다 때려죽인다고 들어왔다가, 그 집안이 모두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해보니 정말 마음씨가 착하고 말이 어질고 행동이 점잖어니까 몽둥이 가지고 왔던 거 뒤로 감춰버리고 다 마음이 풀어져서, ‘참 내가 오해를 했다’고, ‘참 이러이러 해서 내가 부회가 나서 왔는데 와서 뵈웁고 보니 정말 그러실 분들이 아니겠다’고, ‘참 앞으로는 참 좋게 지내자’고, 이렇게 헌 일도 종종 있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로 행해서 큰 썽을 내가지고 크게 다투고 허는 것은 마음속에 탐진치 삼독심이 넘치기 때문에 그런 거고, 탐진치 삼독심이 마음속에 없으면 어떠헌 어려운 일을 당해도, 어떠헌 원결(怨結)이 있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국은 해치지 아니하고 좋게 일이 잘 풀려가는 것입니다. 그러헌 뜻으로 이 삼재에 드신 분도 일 년 내내 그렇게 지내시고, 또 삼재가 안 드신 분도 평상 생활을 그런 마음으로 사시면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 일이 그대로 그냥 그것이 신수기도(身數祈禱)가 되는 것입니다.
_______
구죽생신순(舊竹生新筍)하고
신화장구지(新花長舊枝)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우최행객로(雨催行客路)하고
풍송편범귀(風送片帆歸)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구죽(舊竹)에 생신순(生新筍)하고,
묵은 대에 뿌리에서 새 죽순이 나오고,
신화(新花)는 장구지(長舊枝)니라.
새로 핀 꽃은 묵은 가지에서 길어나더라 그 말이거든.
우리는 을해년(乙亥年)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이름도 갑술년(甲戌年)에 쓰던 그 이름을 쓰고 있고 사는 집도 갑술년에 살던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집은 가옥도 말허지마는 이 몸띵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몸띵이 육체가 갑술년에 내가 살고 있던 그 육체가 한 살 더 묵었습니다. 옷만 새로 입었지 내나 그 육체는 갑술년까지 살아오던 그 묵은 몸띵이라고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갑술년에 그 육체는 이미 없어지고 을해년에 새 몸을 받아난 것입니다.
마치 한 시간 전에 촛불을 켜놨던 그 촛불이 한 시간 후에도 계속해서 그 촛불이 타고 있습니다. 그 촛불이 한 시간 전에 그 촛불이겠습니까? 그 한 시간 전에 켰던 그 촛불이 계속해서 한 시간 동안을 불이 타고 지금도 역시 타고 있지마는, 현재 타고 있는 그 불은 한 시간 전에 켜졌던 그 불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촛불은 아닌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재 을해년에 가지고 있는 우리 이 육체나 을해년을 맞이한 우리의 마음은 갑술년에 가지고 있었던 그 육체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육체는 아니고, 우리의 마음도 갑술년에 가졌던 그 마음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갑술년에 그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보통 일 년에 한 번씩 나이가 올라가긴 허지마는, 사실은 시시각각으로 죽고 또 새로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생(前生)에 육체(肉體), 전생에 영혼(靈魂)에 대해서 우리는 국집(局執)할 것이 없습니다. 설사 전생에는 어떠헌 악한 짓을 하고 어떠헌 슬픈 일이 있었고 어떠헌 원망스러운 일이 있, 있다하더라도, 새로 태어난 마당에는 과거에 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새롭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새로 태어나고 새로 받아난 이 몸과 마음을 간수헐 줄 모르고 밤낮 지나간 전생 일만...에 국집하고 전생에 언짢안(언짢은) 일만을 생각해가지고 거기에 얽매이고 거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이 가련하고 불쌍한 중생들인 것입니다.
묵은 가지가 아니면 새 죽순(竹筍)이 날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고, 새로 피는 꽃은 묵은 가지에서 길어 나가지고 꽃이 핀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새로 나온 죽순을 잘라서 무쳐먹을 수도 있고 새로 나온 죽순을 잘 길르며는 또 좋은 대로써 활용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 꽃도 묵은 가지에서 피었지만, 묵은 가지에서 새 가지가 나와가지고 새로 꽃이 피었지만, 그 새로 핀 꽃에서 또 향내가 나고 또 우리에게 그 아름다움을 줌과 동시에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최행객로(雨催行客路)요,
여행을 허는데 비가 쏟아지면 ‘에이, 비가 쏟아진다’고 다 그 싫어헙니다마는, 비라, 비가 쏟아진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여. 피로한 몸에 시원한 비를 맞고 보면 한결 피로도 풀리고 새로운 기운이 나기도 하고, 또 길에서 길이 뜨끈뜨끈하고 먼지가 나던 것이 비가 오게 되며는 먼지가 안 나서 좋고,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이, 목적지에 도달헐라며는 꽤 길이 남았지만, 거리가 남았지만 비가 쏟아지면 다 바삐바삐 걸어서 길을 재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가정에서, 또는 가족에서, 또는 회사나 직장 사업하는 데 있어서의 모든 방면에 문제점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다 장애가 없이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다 잘되기를 바래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살아와서 지은 업도 가지가지여서, 좋, 좋은 일이 있다 보며는 궂은일도 있고, 궂은 일이 있지마는 잘 처리해나가다 보면 또 좋은 일도 오는 것이어서, 언짢안 일이 있으면 그것을 꼭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거기에서 좌절헐 것이 아니라, ‘아! 비가 오니 서늘해서 좋다. 문지가 안 나서 좋다. 여기서 우리 좀 빨리 빨리 가서 길을 재촉해서 가자. 그럼 목적지에 좀 더 빨리 도달 헐 것이다.’ 이렇게 생각허듯이,
살아가는데 어려운 일을 만나고 언짢안 일을 만난다 하더라도 그렇게 잘 마음을 돌려서 풀이를 하고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을 삼을 줄 아는 지혜(智慧)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러헌 여유(餘裕)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러헌 여유에서 그런 지혜가 나오고, 그러한 지혜를 잘 활용을 해서 인생을 살아간 사람은 그것이 바로 멋지게 보람 있게 인생을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이거거든. 그러헌 여유와 지혜는 어디서 나오냐하며는, 평소에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참선(參禪)을 해야, 해놓으면 그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흔들리지 아니하고 떡 그 오히려 중심(中心)을 딱 잡고서 관찰을 신중허게 해가지고 경거망동(輕擧妄動)을 아니하고, 그럼으로써 전화위복의 계기(契機)를 삼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풍송편범귀(風送片帆歸))
조각배를 타고 가는데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잘 이용해서 가면 훨씬 뱃길을 빨리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헌 역경(逆境)을 잘 활용(活用)을 허는 거고, 탐진치 삼독이 가뜩 차서 어리석은 사람은 그러헌 역경을 활용헐 줄을 모르고 거기에서 넘어지거나 싸우거나 술과 타락으로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우리나라는 지금 새해를 맞이해서 정치나 경제나 모든 것이 여러 가지로 중요한 고비를 또 맞이허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족, 가정에도 역시 그러헌 영향을 받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정법을 믿는 사람은 더 그러헌 일을 당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신심을 돈독히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열심히 정진(精進)을 허시면, 그리고 이 신수기도를 앞으로 초아흐레(9일) 날까지, 초아래... 초아... 음력 초아흐레 날에 회향(廻向)을 맞습니다마는, 남은 삼 일(3일)간을 잘 기도를 허셔서 모든 일이, 좋은 일은 더욱 좋아지고 언짢은 일은 전화위복이 되어서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돌아오도록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_______
환자구의원(患者求醫員)하고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환자구의원(患者求醫員))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
환자가 어진 의원을 구하듯이, 어린아이가 배가 고파서 어머니를 생각허듯이, 그러헌 마음으로 정진(精進)을 해가시라 그 말입니다.
환자(患者)가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그 아무리 참고 참을라 해도 참을 수 없을 때 무엇을 바라고 구하느냐? ‘어진 의원(醫員)이 빨리 와서 이 통증(痛症)을 가라앉혀주었으면, 이 고통을 없애, 없게 해주었으면, 빨리 회복을 해서 내 다리로 땅을 걸어 다닐 수 있고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 어진 의원을 구하듯이, 갓난아이가 배가고파서 그 어머니를 생각허면서 울어대듯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가라 그 말이여.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이 뭣고?’
‘대관절 이 몸띵이 끌고 다니는 이 이놈이 무엇이냐? 이 뭣고?’
해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 이리저리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게 아니고 해갈수록 꽉 맥혀야 돼. ‘그 맥힌 의심(疑心)이 간절(懇切)하고 의심이 크면 클수록 큰 깨달음을 얻는 거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는 거고,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해서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하고, 소의지하(小疑之下)에 소오(小悟)하고, 무의, 무의(無疑)면 무오(無悟)다, 무각(無覺)이다.’인데,
간절하게,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를 들으라’ 하니까, 이 여기다가 내 천(川)자를 써가지고 눈을 찡그리면서 ‘이 뭐꼬’ ‘이 뭐꼬’ 그러라는 게 아니여. 머리로 ‘이 뭐꼬’ ‘이 뭐꼬’허면 기운이 위로 올라가가지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골이 아퍼서 안 돼. 몸은 단정(端正)허니 들고, 얼굴은 편안(便安)허니 허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서, 화두(話頭)를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허되, 화두를 어디다 놓고 관조(觀照)허냐 하면 배꼽 밑에 단전(丹田)에다가 딱 두고서 배가 들어마시믄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쉴 때는 배가 홀쪽헌데, 그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한 거기다가 화두를 딱 두고 알 수 없는 의심을 관찰하는데,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허다보면 숨을 들어마실라고 해도 가슴이 빡 차가지고 숨도 들어마셔지지도 않고 내쉴라고 해도 내쉬지도 않고 영 이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도 없고 안 쉴 수도 없고 그런 경우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런 때에는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를 홀쪽히 허면서 가슴을 이렇게 가뜩 들어주고, 숨을 내쉴 때는 홀쪽헌 배를 차츰차츰 불르게 맨들으란 말이여. 가슴은 홀쪽이 허면서 배는 까꾸로 허는 거여. 보통 평상시에는 들어마실 때는 배가 볼록허니 내밀고 내쉴 때는 배를 홀쪽히 허는데, 호흡이 잘 안되고 답답허고 그럴 때는 까꾸로 허는 거야. 들어마실 때는 배를 홀쪽이 허고 가슴을 요렇게 요렇게 크게 하고, 내쉴 때는 반대로 배를 볼록허니 허고 가슴은 홀쭉, 그렇게 허면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호흡을 자유롭게 쉴 수가 있는 거야.
그리고 이 단전호흡은 절대로 무리허게 해서는 안 돼요. 너무 가뜩 들어마셔가지고 들어마신 상태로 오랫, 얼굴이 벌거지도록 참고 그렇게 무리허게 하는게 아니여. 처음에 준비호흡(準備呼吸)은 두 번 내지 세 번을 그렇게 가뜩 들어마셨다가 한참 참았다가 후~ 허고 내뿜고 이렇게 준비호흡은 허지만, 정식호흡(正式呼吸)은 그렇게 절대로 무리허게 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허실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앓는 환자가 의사 구허듯이, 어린 아이가 어머니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앉어서나 서서나 일할 때나 밥먹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나 목욕을 헐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이 이 간절한 화두가 염념부자(염념부정念念不停- 명확하지 않음)요, 끊이지 않도록 그렇게 단속을 해나가면,
홍일(紅日)이 상동령(上東嶺)이다.
캄캄한 밤이 지나고 새벽이 돌아오면 붉은 해가 동산(東山)에 뜨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 허게 될 것이다.
새해에 양력(陽曆)으로는 이 월(2월) 첫째 번 일요일이고, 음력(陰曆)으로는 첫 번째 정월(正月)에 일요일입니다. 신수기도와 입춘기도, 또 오늘 일요법회에 참석한 이 인연공덕(因緣功德)으로 여러분의 가정에 모두가 다 건강하시고 모든 삼재팔난과 일체액난이 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아서 뜻있는 한해가 되고 보람 있는 한해가 되아서 이 한해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확철대오에 기념할만한 좋은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545번.
* 참선하는 마음, 버리고 취할 것이 없는 그 마음으로, ‘변화의 연속’을 잘 적응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