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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구叅究, 참선叅禪、 제세간在世間、 의심疑心의 관觀 】

이 뭣고? 2020. 11. 14. 20:13

 

【의관疑觀】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헌디
뢰진풍치해악경(雷震風馳海岳傾)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한디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법왕권실(法王權實)이 영쌍행(令雙行)이여.
법왕(法王)에 권(權)과 실(實)이, 권법(權法)과 실법(實法)이 하여금 쌍(雙)으로 행(行)해. 권실(權實)을 다 갖추어서 행(行)하더라.


뢰진풍치해악경(雷震風馳海岳傾)이여.
법왕(法王)이 권법(權法)과 실법(實法)으로써 그 법령(法令)이 행(行)하면 번개가... 우레가 치고 바람이 불며, 불어가지고 바다가 뒤집어 지고 태산이 무너지더라 그 말이여.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한데.
벽력, 벼락이, 벼락 치는 한 소리에 다 흩어져 버렸는데,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라.
집에 이르른 것이 원래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고향에 도달허더라.


———

부처님께서 출현(出現)을 허셔가지고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허시는데, 중생의 근기(根機)가 천차만별(千差萬別)이기 때문에 실법(實法)만을 가지고는, 실상법(實相法), 실법만 가지고서는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권법, 방편법(方便法)을, 아주 좋은 방편법을 잘 쓰면서 거기... 그래가지고 실법(實法)을 나투어야, 그래야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말 없는 가운데에 교해(敎海), 교법(敎法)의 바다가 파도를 치고, 그 교해, 교법(敎法)의 바다 속을 향해서, 바로 그 속에서 말 없는 진리법(眞理法)을 나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은, ‘부처님의 무언(無言) 가운데에, 말 없는 가운데에서 교법(敎法)을 설(說)하시고, 그 교법 설하신 그 속에서 무언(無言)의 진리를 보이신 도리(道理)’를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방편법(方便法)에 떨어져가지고 부처님께서 보이고자하신 그 실법(實法)을 보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
.....

한철동안 정진(精進)을 해 가는데, 언제나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이 부처님의 법은 세법(世法)을, 속... 세속(世俗)에 차별법(差別法)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日常生活)을 여의고 참선(叅禪)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 이 생사법(生死法)을 여의고 진리법(眞理法)을 따로 찾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증득(證得)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그 진리(眞理)가, -진리 그 자체(自體)는 모냥도 없고 빛깔도 없고 참... 그런 것이지만- 그것이 용(用)으로서 발(發)한 것이 바로 이 산하대지(山河大地)요 일월성진(日月星辰)이요 두두물물(頭頭物物)인 것입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는 그러헌 신령(神靈)스러운 묘체(妙體)가, 그것이 나타나면 바로 태양이요 · 달이요 · 그 무수한 별이요 · 산이요 · 바다요 · 나무요 · 돌이요 · 일체 중생이요 모든 짐승이며 · 그 꿈적 꿈적 헌 벌레에 이르기까지 전부 진리(眞理)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 진리가 나타난 그 그림자인 것입니다. 그 그림자 있는 곳에 그 반드시 실상(實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물의 그 본성(本性), -물의 본성은 바로 습성(濕性)인데- 그 물의 본성은 볼 수가 없으나 그 물의 본성이 때로는 액체(液體)가 되아서 흐르기도 하고, 바다에 잠기... 잠기기도 하고, 호수에 잠기기도 하고, 시내로 흐르기도 하고, 폭포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영하로, 섭씨 영하로 내려가면은 고체(固體)가 되아서 얼음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백도(100도) 이상으로 끓으며는 그것이 기체(氣體)가 되아가지고 수증기로서 증발을 허게 됩니다.

수증기로 기체(氣體)가 되아가지고 있을 때도 그 물의 본성(本性)인 그 습성(濕性)은 변함이 없는 것이고, 그것이 액체(液體)로서 물이 되아가지고 흐르고 떨어지고 잠겨있다 하더라도 그 물의 본성(本性)인 그 습성(濕性)에 있어서는 증감(增減)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서 꽁꽁 얼은 얼음이 되아있다 하더라도 역시 그 물의 습성(濕性)인 그 본성(本性)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거나, 짐승으로 태어났거나, 곤충으로 태어났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미생물로 태어났거나, 또는 복(福)을 지어서 천상(天上)에 태어났거나, 악(惡)을 행해가지고 지옥(地獄)에 떨어졌거나, 이 시방세계(十方世界) 어느 곳에 어떠헌 형태로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실상(實相), 진리(眞理)의 체(體)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

【참구叅究, 참선叅禪】

세속(世俗)에 모든 공부는 차츰차츰 한 걸음 한 걸음 단계적(段階的)으로 향상(向上)을 해가지고 박사도 되고 모다 높... 이... 판사도 되고 허지만,

이 공부는 처음 출가(出家)할 때부터서 마지막 도(道)를 이룰 때까지 허는 일이 ‘한결같이 그 한 생각을 돌이키고 또 한 생각을 돌이켜서 계속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계속 그 초점(焦點)을 여의지 아니하고 관(觀)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참구叅究, 참선叅禪인데,

그렇게 해가지고 결국은 그 대의단(大疑團)이, 큰 의심덩어리, 가슴 속에도 콱 차고 이 나의 주변에... 주... 주변에도 콱 차고, 이 우주법계(宇宙法界)에 가뜩 그 의단(疑團)이, 의심덩어리가 차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봐도 그 의심(疑心)이요, 땅을 봐도 그 의심이요, 무슨 소리를 들어도 의심이요, 무슨 생각이 일어나도 의심이요, 썽이 나도 의심이요, 슬픔이 일어나도 의심이요,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다못 그 의심덩어리로 가뜩 차버려.
의심(疑心) 외(外)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들리는 것도 없고 생각할 것이 없어. 보았다 하면 바로 그 의심이요 귀에 무슨 소리 들렸다 하면은 동시에 의심이요,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며는 그 생각 따라갈 겨를이 없어. 나는 바로 의심(疑心)이다 그 말이여.

이렇게 다구치고 이렇게 잡두리를 해 나갈 때에, 모든 번뇌(煩惱)와 망상(妄想)도 발붙일 곳이 없어.
일체차별(一切差別)이 거기에서는 다 떨어져버려.
미웁고 고운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그래서 결국은 이 몸띵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의단(疑團)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그 의단이 독로(獨露)했을 때에 망상을 일부러 다른 생각을 헐랴고 해도 되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을 버릴랴고 허고 물리칠라고 헐 것이... 허지를... 헌 것이 아니고, 일부러 딴 생각을 좀 헐라고 해도 딴 생각이 일어나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의심이요, 똥을 눌 때도 의심이요, 포행(布行)을 헐 때에도 의심이요, 법당(法堂)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헐 때에도 그 의심이요, 옆에서 누가 말을 허고... 해도 나는 의심이요,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헐 때의 그 마음 경계는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고 쇄락(灑落)하고 말로써 표현을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헌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그러기 때문에 일부러 화두(話頭)를, 화두를 들... 드는 것 까지도 망각(忘却)하게 되는 수가 있어. 그때에 나아가서 화두에 대한 의심을 놓아버리면 안 돼.
너무 고요하고 깨끗허니까, 그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은 그디에... 그곳에 따악 착(著)해가지고 화두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여.

그럴 때에도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의관(疑觀)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럴 때 일부러 힘을 써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힘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힘을 쓰지 아니하고 그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그 의심(疑心)의 관(觀)이, 관은, 관(觀)만이 있어야지 일부러 생각을 일으켜가지고 힘을 써서 화두(話頭)를 드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러헌, 그렇게 이 화두가 순일무잡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화두를 들랴고 애를 써도 들 때뿐이지 금방 딴 생각이 오고 그러지만, 그 딴 생각났다고 해서 신경질을 내고, ‘하이구, 이놈으 공부가 언제나 될 것인고. 내가 아매도(아무래도) 참선법에... 참선(叅禪)에 인연(因緣)이 없은가, 업(業)이 두터워서 그런가’ 이 생각 저 생각해서 짜증을 내고 그래선 아니 된 것입니다.

망상(妄想)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일어난 대로 놓아두어 버리고 나는 화두(話頭)만을 터억 들거든.

‘이 무엇고?’

망상(妄想)이 일어나면 또 화두(話頭)를 들고, 번뇌(煩惱)가 일어나면 나는 화두(話頭)만을 들거든.
화두만을 들어요.
들며는 망상은 저절로 자최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어도 그 망상이 안 없어지면 또 화두를 드는 것뿐이지, 망상이 안 없어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망상 물리치는 묘방(妙方)은, ‘일어나는 망상 그냥 고대로 놓아버리고 화두만을 떠억 챙겨.’
숨을 터억 들어 마셨다가 내 쉬면서 ‘이 뭣고?’
그것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 무엇고?... ’
했을 때 그 <여운(餘韻)으로 남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의심疑心을 관觀하는 것>이여.

‘이 뭣고?’ 자꾸 챙기라고 허니까 뭐던(뭐 어떤) 분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를 뭐 한 시간에 이천 번을 했느니 삼천 번 했느니 그 횟수를... 횟수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은, 그 하루에 오만 번이나 또는 십만 번 이렇게 염주念珠를 가지고 새면서 하루에 일과를 정해놓고 그렇게 하는... 헐 수도 있습니다마는, 이 화두는 그런 횟수를 많이 허고 작게 허고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가끔 가끔 챙길 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의심’만을 터억 관觀해야지,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렇게 챙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그 의심이 없어졌을 때나, 또는 딴 생각이 들어왔을 때에 그때 화두를 한번 씩 챙기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疑心)만을 묵묵히 관(觀) 하는거여. 그래서 그것을 ‘의관(疑觀)’이라 그래요, 의심(疑心)의 관(觀)이다.
‘알 수 없어.’
‘아하 이것이로구나.’ 그런 그... 그런 생각이 있으면 안 돼.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야지,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하고 알아지는 것이 있고, 떠억 요렇게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으면 아니 된 것입니다.


———


오욕해자갈(五欲海自渴)이요
아인산자도(我人山自倒)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음낙처운자산(圓音落處雲自散)하면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니라.

나무아미타불.




오욕해자갈(五欲海自渴)이요,
아인산자도(我人山自倒).
이렇게 정진(精進)을 알뜰히 짬지게 해 나가면 거기에 무슨 오욕(五欲)이 일어날 것인가. 무슨 탐심(貪心)이 있으며 무슨 진심(瞋心)이 있어. 탐심(貪心)이 없으며는 오욕(五欲)은 거기에서... 오욕의 바다는 말라버리는 것이고, 진심(瞋心)이 없으면 아인의, 아상(我相) 인산의... 인상(人相)의 그 아인(我人), 인아상(人我相), 인아(人我)에 그 높은 산이 스스로 넘어져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석 달 동안을 스님네나 이 보살님네들이 이렇게 결제(結制)를 허시는데, 중간에 어떠헌 장애(障礙)가 일어나는 것은 그 오욕(五欲)의 바다에 파도가 치고 아인(我人)의 산이 우쭐대기 때문에 거기에서 장애(障礙)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욕의 근본인 그... 이... 탐심이 없어.
화두(話頭)를 들고 그 열심히 해 나가는데 무슨 탐심(貪心)이 거기에 있으며 무슨 거기에 진심(瞋心)이 일어날 것이냐 그말이여.

한 사람 한사람이 정말 이 일대사(一大事)를 향해서 알뜰히 정진을 해 가면, 거기에는 불평불만도 있을 것이 없고, 니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뭣이 좋고 나쁘고 헌 일체시비(一切是非)가 거기에 붙덜 못하는 것입니다.
시비(是非)가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발동(發動)을 헌 것이고, 모든 장애가 일어나는 것은 무명(無明)의 그 탐심(貪心)을 안고 살기 때문에 그러헌 시비와 장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음낙처운자산圓音落處雲自散이요.
원음(圓音) 떨어진 곳에 구름이 흩... 스스로 흩어져버리면,

원음(圓音)은, 아까 ‘부처님께서 무언(無言) 속에 한량없는 법문(法門)의 바도가... 법문의 바다에 파도가 치고, 그 부처님의 끝없는 설법교해(說法敎海) 속에 말 없는 진리(眞理)가 드러난 도리(道理)’, 바로 그것이 부처님의 원음(圓音)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원음... 원음은, 보살(菩薩)이 들으며는 보살도(菩薩道)요, 연각(緣覺)이 들으며는 인연법(因緣法)이요, 성문(聲聞)이 들으며는 사제법(四諦法)이요, 중생(衆生)이 들으며는 중생에 차별(差別)이요, 일체 축생(畜生)과 산천초목(山川草木)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들으며는 자기 나름대로 다 가서 계합(契合)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원음설법(圓音說法)이, 현재 우리 눈으로써 볼 수 있는 모든 현상, 귀로써 들을 수 있는 온갖 소리,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냄새, 혀로 맛 볼 수 있는 온갖 맛,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차웁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러운 모든 그 촉감, 우리의 생각으로써 느낄 수 있는 모든 현상이, 다 부처님 원음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어. 그래서 그 원음의 그 본성(本性)을 바로 봐 버리면 무명(無明)의 구름이 다 흩어져 없어져버려서,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여.
한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우리의 진리(眞理)의 고향(故鄕), 우리의 마음에 고향에 도달허게 되는 것입니다.

.......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서 세수하고, 양취하고, 예불 젓숩고, 그리고 정진하고, 또 아침 공양을 하시고, 또 오전 정진을 하고, 또 사시공양을 하시고 오후 정진, 그리고 저녁공양을 하고 밤 정진, 그리고 취침을 허시고, 그 하나하나가 스스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그 선방에 어떤...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지 말자’, ‘특별한 허가(許可)가 없이는 외출(外出)을 허지 말자’, ‘큰 방에서 잡담(雜談)을 허지 말자.’ 뭐 그 이... 여러 가지 선방(禪房)에 규칙(規則)이 있겠습니다마는, 그런 규칙에 얽매어 가지고 그 마지못해서 허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나갈테면...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 ‘뭐 얼마든지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라.’ 그러헌... 그런다 하더라도, 스스로 터억 자기가 자기규칙(自己規則)을 세워서 알뜰히 정진(精進)을 해. 그래서 나갈 겨를도 없고, 떠들 일도 없고, 시비(是非)헐 건덕지도 없고, 저절로 한 분 한분이 그러헌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헐 때에, 규칙을 특별히 맨들지 안 해도 제절로 규칙이 서서, 한철을 정말 일생일대(一生一大)에, ‘그때 참 정진(精進)다웁게 했다.’ ‘그 한철이야말로 나에게 일생을 결정짓는 정말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상적인 그런 한철이었었다.’ 그러헌 한철이 되도록 그렇게 정진을 허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분 한분이 지낼 때에 그 가운데 정진이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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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해산사도비력(入海算沙徒費力)이요
구구미면주홍진(區區未免走紅塵)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쟁여운출가진보(爭如運出家珍寶)하면
고목생화별시춘(枯木生花別是春)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입해산사도비력(入海算沙徒費力)이요,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알을 세는 것은 공연히 쓸데없이 힘만 허비헌 것이요,


구구미면주홍진(區區未免走紅塵)이다.
구구히 그 띠끌 속을 향해서 이리저리 치닫는 것을 면치를 못한다.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알을 신다고(센다고) 허는 것은, 부처님께서 중생(衆生)의 근기(根機) 따라서 설하신 그 방편법(方便法), 그러헌 방편법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거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방편(方便)이라 하는 것은 ‘그때’, ‘그 자리’에서, ‘그 상대’에게 해당이 되는, 임시적(臨時的)인 편법(便法)을 ‘방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내거나, 장소가 옮겨지거나, 또는 그 상대의 그 사람이 바뀌어지면, 그것은 이미 적당한 법이 아니라 그것은 해당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 이미 해당이 되지 아니한 것을, 그것을 끝까지 그것을 버리지를 못하고 거기에 집착(執著)을 해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바다 속에 들어가서 모래알을 세는 거와 같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그 팔만사천묘법(八萬四千妙法),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말씀이 하나도 버려야 할 법은 없습니다. 한 구절(句節) 한 구절, 한 자(字), 한 토(吐)가 다 소중한 법문(法門)이지만, 그 법에 ‘뜻’을 취하지 아니하고 그 ‘글에 집착’을 허면 바로 그것이 바다 속에 가서 모래알을 세고 있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죽을 때 까지 시어도(세어도) 끝이 없는 것이고, 몇 억 만 개... 그 천문학적 숫자로... 숫자에 이르도록 시고(세고) 있었던 들 거기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만날 시어봤자 거기는 모래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불법(佛法)을 밖에서 구(求)해.
밖에서 어떤 것을 구허고, 밖에서 무엇을 얻고, 밖에서 무엇을 알랴고 허는 그러헌 그 수행을 지양(止揚)을 하고, 자기 안에서,


쟁여운출가진보(爭如運出家珍寶)이여.
자기 안에 있는 보배를 끌어내는거지.
그놈을 끌어내가지고 그놈을 활용(活用)해야 되거든.



그러며는 그것이,
고목생화별시춘(枯木生花別是春)이여.
고목(枯木)에서, 다 말라죽은 그 고목에서 꽃이 피어.
그래가지고 새 봄을 맞이허게 된다.


우리 이 몸띵이는 무량겁(無量劫)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허다 금생에 와가지고, 벌써 금생(今生)에 와서 십년 이십년, 또 삼십세 사십세 오십 육십 칠십세 이렇게 해가지고 벌써 반평생(半平生)을 살고, 얼마 안 가며는 이승을 하직(下直) 헐 나이에 이르렀다 그 말이여.
그러니 나무에다가 비유를 헌다며는 이미 이 고목, 고목이 되았다고 말할 수가 있는데, 이 고목이 되았지만 정말 ‘이 얼마 안가면 썩어 문드러질 이 고목 속에 영원히 쓰고도 남을 보배가 들어있어.’
허니 그 보배를 찾는 것이 바로 ‘이 뭣고?’ 거든.

‘이 뭣고?’

정말 뒤로 미룰 수 없고, 정말 일분일초도 미룰 수가 없는 이 정진(精進).
한 생각 탁! 터지며는 바로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니, 연세가 많다고 해서 그럭저럭 지내실 일이 아니고, 또 아직은 젊다고 해서 뒤로 미룰 일도 아닌 것입니다. 이 공부는 남녀(男女)와 노소(老少)가 없어. 마지막 숨이 딱 떨어진 그 찰나(刹那)에도 이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죽을 때 깨달라도 그것도 늦은 것이 아니고, 마지막 죽을 때 정말 이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바로 깨닫고 이 죽었다 하면, 이 몸띠이... 이 숨을 거뒀다 하면 그 사람은 이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랐기 때문에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여. 금방 또 새 몸을 받아서 태어날 것이고, 그 사람이 극락(極樂)에 가기를 원헌다면 극락, 천당(天堂)에 가기를 원헌다면 천당, 바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해서 이 생에 못다한 정진(精進)을 더 철저히 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증득(證得)을 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써서, 쓸 수 있게 까지 되아가지고 한량없는 인연(因緣)있는 중생을 제도(濟度)해야 하는 것입니다.

방부(房付)를 딜이지(들이지) 아니한 스님네나 방부를 딜이지(들이지) 아니한 신도님네들도, 각기 자기가 있는 처소(處所)에서 꼭 방부 딜이는(들이는) 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알뜰히 그리고 경건(敬虔)하게 생활을 허시면서 분(分) 따라서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백일기도(百日祈禱)에 동참(同參)하신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들도 바로 이 결제(結制)허시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항상 탐심(貪心) · 진심(瞋心) · 치심(癡心) 이 삼독심(三毒心)을 삼가하고, 그 일어나는... 그 생활... 세속에서 생활을 허다보면 탐심도 나고 진심도 나고 또 어리석은 생각도 나겠지만, 그 일어난 그 생각을 탁 발판으로 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또 화두를 챙기고 해서, 방부를 딜인(들인) 분들 못지않게 그 가정에서, 그 생활(生活) 속에서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궁극(窮極)에 가서는 이 참선(參禪)은 생활... 생활(生活) 속에서 이 참선이 되아야 그것이 참 올바른 정진(精進)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저 깊은 산중에 선방(禪房)에서만 그 이... 죽비를 치고 참선을 해야만 그것이 참선이고 세속에 나오면 정진이 안 된다면 그건 훌륭한 정진이라고 헐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아까 처음에, ‘불법(佛法)은 세간(世間) 속에, 세속을 여의지 아니하고 이 불법이 있다’ 고 헌 이 말씀을 했습니다는, 정말 이 생활(生活) 속에서 정진(精進)이 되아가도록 잡두리 헐 때에 정말 살아있는, 활발(活潑)하게 살아있는 정진이라야 정말 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헐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헌 정진 속에서 참으로 깨달라야 그 깨달음이 정말 훌륭한 것입니다.
조용헌 디서는(곳에서는) 되고, 쪼끔 시끄럽고 복잡허면 안 되아 가지고 진심(瞋心)을 내고 이리 해가지고는, 그러헌 정진은 그건 썩 훌륭한 정진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실 때 백일기도에 그 기도도 정말 성취가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가운데에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들께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소원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분의 그 학교 입... 합격 문제라든지, 취직 문제라든지, 또는 결혼 문제라든지, 사업에 문제라든지, 또는 그 이... 관공서나 회사에 모다 여러 가지 문제들, 사회 국가문제, 여러 가지의 크고 작은 소원이 있으실 것입니다마는, 그러헌 소원도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에 그 이... 참마음 찾는 수행이 밑받침이 되아야, 그래야 그러헌 소원들도 결국은 성취가 되고 우리의 목적도 달성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 날씨가 차츰 추워지게 됩니다. 모두다 몸조심 하시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병도 마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중심(中心)을 잃고 감정에 흐르고 그렇게 되면, 그것이 모든 병(病)에 원인(原因)이 되는 것입니다.
당뇨병도 되게 속을 썩은 뒤에 흔히 터지고, 모든 무서운 그 암 병도 너무너무 속을 썩고 신경을 씀으로 해서 그래서 그런 무서운 암 병도 생기게 되고, 혈압이 올라가는 중풍이라든지 온갖 심장병이라든지 모든 병이... 심지어는 눈병, 기관지 병, 모든 사지백체와 오장육부에 갖인 병이, 그 마음이 중심을 잃고 속을 끓인 디에서(데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순경계(順境界)와 역경계(逆境界)를 당해서 화두(話頭)를 챙겨서 자기근본(自己根本)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병(病)을 미연에 방지(防止)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심을 내서 철저히 정진을 해 보신 분이면 다 경험을 허실 수 있는 일이니만치, 부디 이 공부, 한 생각 잘 챙겨서 몸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평(和平)하고 여러분의 이 모든 크고 작은 원(願)을 성취하고 나아가서는 생사해탈(生死解脫)까지 헐 수 있다면, 이 사업(事業)보다도 더 급하고도 중요한 사업은 다시는 없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내가 여쭙고 싶은 말씀, 당부허고자 하는 말이 한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주장자 내리치심. 쿵!)


- 송담선사 법문 31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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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在世間、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恰如求兔角。

불법佛法는 세간世間에 있으니 세간世間 각覺함을 여의지 않는다.
세간世間을 떠나서 보리菩提를 찾으면, 흡사 토끼의 뿔을 구함과 같다.

- 육조대사六祖大師 [법보단경法寶壇經]


* 사업事業: “舉而錯之天下之民謂之事業、謂之事業”
행함으로 해서 모든 천하의 백성들에게 도움과 해택을 줄 수 있는 것을 일러서 ‘사업’이라 한다.

舉而錯之天下之民謂之事業

- [주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