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助長、설파說破】
【설파說破】
아까 조실스님 말씀 가운데,
“선지식이 설파說破를 해서, 설파를 해줄까 두려워 해야 한다.”
설파說破라 하는 것은, 그런 힌트를 주고 이렇게 이렇게 따져서 그것을 가리켜 주고 고치고 해준 것은 오랫동안 공력을...
중환자가, 끙끙 앓고 있었던 중환자가 겨우 어떻게 해서 간신히 간신히 일어설려고 허는데 갖다가 그사람을 꼿꼿하게 일어서게 해가지고는 막 걸음마를 시켜가지고는 너무 무리를 해가지고 털썩 주저앉게 맨들아버린거나 같은 것이다.
또 봄에 모를 심어가지고 그렇게 여러달 동안 공력 딜여서 키워가지고 인자 그 모갱이가 팰려고(필려고) 허는, 축순蓄筍을 헐랴고 허는 데에 까지 이르렀는데, 그놈을 빨리 모갱이가 패가지고 곡식이 익게 허기를 기대하는 나머지, 그 모갱이를 때도 없이 좀 나올라 하며는 낱낱이 다 손으로 쭈욱 쭉 뽑아서 이만큼 밖으로 뽑아 올려 놨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제 힘으로 지가 모갱이가 쭈욱 올라와서 꽃이 피고 그 꽃이 또 떨어지고 해서 흙물이 잡혀가지고 그놈이 차츰 차츰 여물어가지고 모갱이가 그 물을 대야 곡식을 먹는 것이지, 모갱이가 겨우 조금 나올라 한 놈을 쭈욱 쭉 뽑아 놨으니 그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 농사는 완전히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도 어챘튼지 활구참선을 해서 자기의 힘으로, 그 알 수 없는 그 공안을 갖다가 타파를 해서 참 나를 깨달라야지, 설파를 해주어 가지고 알것게 맨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중국에 어떤 도인은, 처음에 어떤 한 선지식 밑에서 오랜 세월을 정진을 허는데 도저히 공부가 열리지를 안해.
해갈수롹 가슴이 답답하고 알 수가 없고, 여러가지 그 밑에서 참 위법망구적으로 정진을 했는데 도저히 공부가 진취가 있는것 같지도 않고 해 갈수롹 가슴만 답답하고 하도 못견다니까 그 회상을 떠나갔다 그말이여.
떠나가지고 어떤 다른 선지식 밑에 가서 정진을 허는데, 그 선지식 밑에 가 이 공부를 허다가 깨달랐다.
그런데 먼저 선지식도 그 여러해 동안을 정말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시고 채찍을 해주시고 그렇게 해서 참 자기에, 자기 공부해 나가는데그 은혜를 갖다가 잊어버릴 수가 없고,
또 두번째 선지식도 그렇게 자기를 보살펴 주시고, 더군다나 그 선지식 밑에서 공부를 허다가 깨달랐는데, 두 선지식 다 그 법의 은혜가 두터워서 어느 선지식에 법을 이어받을 것인가, 어느 선지식에 건당식을 해야할 것인가, 두 가지... 이러자니, 이러자니 저 선지식 은혜가 지중하고, 저 선지식한테 허자니 이 선지식이 은혜가 지중하고 그렇다 그말이여.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은 먼저 그 선지식이 열반에 드셨다 그말이여.
그 열반헌 디에 가서 향을 떠억 사르고 절을 허기를,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이요 불위아설파不為我說破ㅂ니다, 설팝니다.
큰 스님의 도덕이 중해서 스님을 존경허고, 존중한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저를 위해서 설파를 해 주지 아니한 그것 때문에 저는 큰스님을 존경합니다.
내가 큰스님 밑에 공부헐 때에, 내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야를 닳고 미어질 듯 할때 한마디만 이렇게 살짝 긁어주고 그 힌트만 주어도 내가 한소식을 했을런지 몰랐을런지도 모르는데, 그렇게도 매정하고 무정허게, 쌀쌀하고 독하게 한 마디를 일러주시지 않고... 허셨기 때문에 내가 오늘날 이렇게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감회感悔를 했다 이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세등 3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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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참선을 지도(指導)한다 해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그러헌 의리선(義理禪), 사구선(死句禪)을 가지고 신도(信徒)들을 지도하고 있는 그러헌 분들이 가끔 여기서 저기서 있는 것을 저는 간접적으로 듣고 알고 있습니다.
무슨 공안(公案)은 이러이러이러헌 것이다.
마삼근(麻三斤)은 바로 이러이러헌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는 이러이러헌 것이다.
낱낱이 화두(話頭)를 따져서 설파(說破)해가지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해가 가도록 그렇게 지도하고 있는 그러헌 거사님, 그러헌 큰스님들도 간혹 계신 거 같습니다.
학자(學者)의 입장에서는 학... 콱 맥혀서 가슴이 답답하고 대관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가, 그러헌 자기가 존경하는 큰스님이 이리저리 따져서 “이러헌 것은 이러헌 뜻이니라” 이렇게 가리켜 주시니까, 가뭄에 비를 만난 것처럼, 지옥(地獄)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만난 것처럼, 목마른데 물을 마신 것처럼 그렇게 반갑고 가슴속이 후련허고 시원헐런지 모르지마는, 그것은 잠깐동안 그러헌 것을 느꼈을 뿐 돌아서면 도로 깜깜허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화두를 그러헌 식으로 해서 의리로, 의리(義理)로 이론적(理論的)으로 따져서 설파(說破)를 해주게 되며는, 그 사람은 아주 영원히 깨달을 기회(機會)를 갖지 못하도록 여지없이 발로 짓밟아서 짓이겨버린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 사람이 꽉 맥혀서 화두를 들고 애를 쓰고 있는 동안은, 진흙 구뎅이에 빠졌던 사람이 간신히 일어서가지고 한걸음한걸음 그 수랑 구녕으로부터서 벗어날랴고 노력하고 있고,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에 한걸음씩 한 걸음씩 겨우 걸어서 수랑구녁 없는 곳으로 나가고 있는 그러헌 경우를... 라고 헌다며는,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 디다가 명색이 선지식(善知識)으로서 화두를, 공안을 설파해주어 가지고 잠꽌 동안 시원허게 맨들아 준 것은 뭣과 같으냐 하며는, 그이를 빨리 벗어날 수 있게 한답시고 헌 것이 결국은 구렁텅이에다가 아주 발길로 차서 미틀어 넣어가지고 이제는 기진맥진(氣盡脈盡)해가지고 다시는 나올 수 없게 맨들아버린거와 같은 것입니다.
농사 짓는데 어떤 사람이 논에를 나가보니까 다른 사람 논에 벼는 벌써 이삭이 패 가지고... 팼는데, 자기집 논에 벼는 이삭이 패지를 안았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와서 발을 벗어부치고 논에 들어가가지고 나락 벼 모갱이를 쑤욱 쑥 뽑아서 전부 밖으로 이삭이 나오도록 맨들아 놓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아, 내가 오늘 참 논에 가서 일을 많이 하고 왔다.”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벼가 아즉(아직) 이삭이 안 펴서 그걸 모다 뽑아서 전부다 패서 패도록 해 놨으니 우리 농사가 옆 집 농사보다도 적어도 한 달은 먼저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랑을 했다고 허는 이야기가 유교(儒敎)에 <맹자>라고 허는 책에 나와 있습니다... 경전에 있습니다.
마치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에 공안(公案)을 설파(說破)해가지고, 빨리 깨닫게 해준답시고 공안을 설파해주는 그러헌 분이 계신다며는 이것과 똑같은 경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알 수 없이 맥힐수록 크게 맥혀서 큰 의심(疑心)이 날수록 그분은 크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고, 맥힌 것이 약하... 약해서 의심이 크지를 못한 사람은 깨달는다 하더라도 크게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꽉 맥혀서 가습이 답답헌 것, 그것은 크게 깨달을 수 있는 조짐(兆朕)이지 그것이 공부를 잘 못해가지고 깨닫지 못할 그러헌 조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꽉 맥혀서 가슴이 답답할수록 더욱 간절(懇切)하게 화두(話頭)를 들고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갈지언정 그것을 못 참아가지고 이 책을 떠들어보고 저 책을 떠들어보고, 여기에 가서 법문을 듣고 저기에 가서 법문을 들어가지고, ‘어떻게 했이믄 그... 그 답답하고 그러헌 심정이 좀 후련해지까’ 그래가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분을 종종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설파해주어서 대단히 그이를 빨리 깨닫게 자비(慈悲)를 베풀어주어서 대단히 감사한 선지식인 것 같지마는, 벼 모갱이를 뽑아가지고 빨리 수확을 거둘랴고 허는 그러헌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그러헌 것을 우리가 이해한다고 허며는, 우리는 좀 더 태산(泰山)과 같은 무거운, 바다와 같은 그러헌 깊은 신심(信心)과 지조(志操)와 절개(節槪)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애써나간다고 하며는, 반드시 그분이야말로 금생(今生)에 결정코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영원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5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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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不重先師道德佛法、祇重他不為我說破]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의 도덕道德을 중重히 여긴게 아닙니다.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다못 저를 위해 설파說破해 주시지 아니한 것을 중히 여깁니다.”
- 오등회원五燈會元-宋-普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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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묘조장揠苗助長】
必有事焉而勿正야(며) 心勿忘며 勿助長也야 無若宋人然이어다(이니) 宋人이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ㅣ러니 芒芒然歸야 謂其人曰 今日[에] 病矣와라(라) 予[ㅣ] 助苗長矣와라야(라야) 其子ㅣ 趨而往視之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ㅣ 寡矣니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ㅣ오 助之長者 揠苗者也ㅣ니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반드시 의로운 일을 많이 행하기를 일삼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며, 조장(助長)하지도 말아서, 송(宋)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벼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뽑아놓은[揠苗助長] 자가 있었네.
그가 돌아와서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내가 매우 피곤하다. 내가 벼싹이 자라도록 도와주었다.’고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았더니 벼싹이 말라 죽어 있었네. 이처럼 천하에는 벼싹이 자라도록 돕지 않는 자가 적네.
무익하다고 해서 버려두는 자는 비유하면 벼싹을 김매지 않는 것과 같고, 억지로 조장하는 자는 비유하면 벼싹을 뽑는 것과 같으니, 조장하면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게 되네.”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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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에 한 농부가 벼를 심었다. 싹이 더디 자라자 어떻게 하면 빨리 자라게 할까 궁리하다 모의 싹을 뽑아 올렸다.
집에 돌아와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고[얼묘조장揠苗助長]왔다”고 자랑했다.
가족이 급히 논에 달려가보니 이미 벼들은 모두 말라죽어 있었다.
여기서 ‘억지로 잘 자라게 도와준다’는 의미의 조장助長이 생겨났다.
- [한문의 이해] -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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