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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동할 것이 없어】

이 뭣고? 2017. 7. 24. 22:08


【不動相】

제35 [제법부동적정문諸法不動寂靜門]인디,
35에 가서 제법諸法이 부동不動혀 적정문寂靜門이 있는디, 적정문寂靜門 가운데에 문問이라.

문(問)은 물어 이르되, 누가 이르되, 이건 물어 이른 건 혜가 스님이 물었지, 그랬지 잉?
물어 가로되, “어떤 것이 여래혜일如來慧日이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이닛고? 어떤 것이 여래혜일如來慧日이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입니까?”
여래혜일如來慧日이, 여래혜일如來慧日은 부처님 그 혜일慧日, 우리도 견성하면 혜일慧日, 우리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 우리 본분납승本分衲僧, 우리도 다 본래 그 본래각本來覺이 있거든. 미迷해서 그렇지 본래 있거든.

왜 본래 있는 생사生死 없는 지금 우리 혜일慧日을 찾을라고 한 거 아녀? 참선해서 지금 나 찾을라는 거 아녀?
그 나 찾을라고 하는 혜일慧日, 내 본래 갖춰져 있는 혜일慧日이, 왜 이렇게 미迷했습니까?
잠몰어유지潛沒於有地입니까?
이 유지有地에 가서 미迷했읍니까? 왜 이 유취有趣에 가서 모두 지옥취地獄趣 아귀취餓鬼趣 생사취生死趣에 가서 미迷했습니까?
그말이여.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여.

제법부동적정문諸法不動寂靜門이라고 봐.
글로 좀 보란 말이여. 내가 새겨 줄께 잉?
“어째서 우리 본래 갖춰져 있는 이 혜일慧日이 이렇게 유지有地에 가 잠복潛伏되아 가지고 생사生死를 받습니까?” 그말이여.

답왈答曰, 비유견유非有見有기 따문에 혜일慧日이 몰어유지沒於有地니라.
유有가 아닌디 어디 유有냐? 유有가 아닌디, 혜일慧日에는 유有가 아니여.
그 무슨 있는 것, 유상有相 무상無相 비무상非無相 비유상非有相 뭔 막 일체가 도무지 다 붙여 봤던들 아니여.
혜일慧日에는 그런 것이 없어.
유有니, 지옥취地獄趣니, 아귀취餓鬼趣니 본래 아무것도 붙어 있는 게 없어.

그런 것이 없는데 아! 유상有相으로 집착을 딱 한다.
내 몸뚱이도 유상有相 집착하고, 내 코빼기도 유상有相 집착하고, 내 눈, 내 코, 내 입, 내 몸뚱이, 내 팔, 내 다리, 맨 이놈의 내 것, 내 아상我相 아소심我所心 아집我執 꽉 이놈을 집착해 가지고 있다.
한시도, 내가 이놈이 낸 줄 알고 한시도 이 집착이 떨어진 법이 없어. 유취有趣가 딱 집착되어 가지고 있어.
그놈의 것 때문에, 어디 인냐? 네 몸뚱이 다 불태워 버리면 본래, 나기 전이나 불태워 버린 뒤에 봐라, 있나?
아무것도 없는데, 너 왜 그렇게 유취有趣에 가 집執해 가지고 있냔 말이여?

요것 때문에 비유견유非有見有, 유有가 아닌데 유有를 보기 따문에, 그만 그거 그 혜일慧日은 절대 그 무슨 유취有趣 비취非趣 비무취非無趣가 뭐 일물一物도 뭣이 거그 때꼽재기가 없는데, 아! 이래 가지고 받는구나. 고렇게 알아 주면, 해 주면 알아듣겠제이?

무상견상無相見相도 또한 그러니라. 본래 일체 상相이 다 뭐 상相, 이러 저녀러 상相을 보냐? 상相으로 보지마는 어디 그 상相이냐?
그까짓 것 무슨 상相 그녀러 것, 상相도 그놈이 본래 상相이 아니고, 상相 떼놓고 보면 또 무상無相이고, 무상無相도 그 또 무상無相이 아니고,
유상有相 무상無相도 아니고, 유무무상有無無相 다 떼고 여읠 것도 없고, 본래 거가 무슨 뭣이 붙어 있고 떨어진 것이 없다.
상相이 없는데, 본래 모냥이 없는데 그만 상相에 착着한 것도 그런 것이다. 그 모두 이렇게 중생이 그만 모두 얽혀지는구나. 상相에 떨어지고 집착에 떨어지고.


“그 운하명부동상云何名不動相입니까? 그 어떤 것이 동動치 않은 상相입니까?”
답왈答曰, 대답을, 부득어유에유不得於有有有니, 부득어유유유不得於有有有, 유有가 석 자여. 시러금 저 유有가 유有가 아니다. 본래 근본 당처當處 들어가서 유有가 유有가 아니다. 이름은 유有라고 하지마는 그게 유有가 아니여.
어떤 걸 유有락 하냐? 어떤 걸 유상有相이락 하고?
어디 유有냐? 유有라고 하지만 유有가 아니고, 유有가 유有가 아니다. 본래 유有가 아니여.

무, 그러니 무유가동無有可動이며, 그 가히 동動할 것이 있음이 없으며, 뭐 동動할 것이냐? 유有가 유有가 아닌데, 무슨 동動이 거가 동動이 있냐?
생사 동動이 뭐 있으며, 생사 빠질 것 있으며, 무간지옥에 빠질 것이 어디 있으며, 무슨 동動이 있냐?

부득어 무무 무무무不得於無無無無니, 이건 또 넉 자네!
저 유有가 시러금 저 유有가 유有, 저 무無가 무無가 아니다. 저 무無가 무無가 아니다.
무無라고 해놨지마는 이것 또 무無가 아니여.
그 무슨 무無에 동動할 게 있냐? 무상無相에 가서 왜 동動하냐?
무無가 무無가 아니다. 하니 무無가 가히 동動할 것이 있음이 없다.

무無가 뭐 동動할 것이 있나? 무無에가 왜 동動해?
유有에도 동動이 본래 없고, 무無에도 동動이 없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니 무無가 가可히 동動할 것이 있음이 없다. 부동상不動相이란 게 그런 거다.

즉심무심卽心無心이라, 그러니 곧 마음이 마음이 없어.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게 마음이냐? 입으로 마음이라 했지? 그 무슨 마음이냐?
뭔 마음? 마음이 어떤 게 마음이여? 입으로 마음이라고 해 놨지, 무슨 마음이여?

심무유가동心無有可動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히 동動할 것이 있음이 없다.

즉상卽相이 무상無相이여. 곧 상相이 상相이 없어. 곧 상相이 상相이 아니여.
상相이 아니여. 상相이 도무지 상相도 상相이라 해야 상相이 아니여.

그러니 상무유가동相無有可動이여. 상相이 가히 동動할 것이 없어. 상相도 동動할 것이 있음이 없어. 고故로 명부동상名不動相이니라. 부동상不動相이 그런 것이니라.

약작여시증자若作如是證者는 만약 요렇게 또 증證한 자는, 요렇게 아는 자는 시명자광혹是名自誑惑이다. 이게 제가 제대로 속는 것이다. 자광혹自誑惑한 거다.

상래上來를 미해未解니, 상래上來를 알들 못했으니, 해시解時에는 무법가해無法可解니라. 알 때에는 법을 가히 앎이 없느니라.

부동상不動相 내가 새겨 놨어. 이 글을 좀 봐. 가만히 봐. 그대로 해놨어.
이 달마 스님은 그 당시에 관법이고 화두법이 없어서 막 해 놨어. 하지만 이렇게 밝게 해 놓을 도리가 없다 그말이여. 내 오늘 아침에 부동상不動相 한 번 새겨서 대중에 들렸어.

- 전강선사 법문 27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