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뭣고? 2020. 6. 3. 06:00

【소】

마빡에 뿔이 돋아나고 몸띵이에는 털가죽을 쓴 저 소, 소를 봐라 그말여.
그 소가 무엇이 소가 된 줄을 아느냐?
전생前生에 시주施主것 함부로 먹고, 도道의 눈을 뜨지 못한 그 중이 저 소가 된 것이다 그말여.
중이 소를 보고, 발보리심發菩提心허라. 발보리심發菩提心허라.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니라.

소를 보면 스님네는 다 소한테 대고 ‘발보리심發菩提心해라.’ 그런 축원을 허고 지내 가는데, 그 소란 놈이 눈을 멀그머니 꺼먹꺼먹 뜨고서 스님한테 허는 소리가 뭐라고 허냐 하면은, “너는?” 그렇다는 거여.

“너야말로 참말로 발보리심發菩提心해라. 나도 전생前生에 중노릇헐 때에 시주施主것 함부로 먹고 도통道通을 못해 가지고 이 꼬라지가 되얐다.
‘너야말로 정신精神을 채려라!’”

아 소란 놈이 눈을 꺼먹꺼먹 그렇다는겨.
그 말을 내가 듣고 소를 보고는 영 쳐다보면은 눈을 꺼먹꺼먹 뜨고 허는 소리가 영낙없이 그 소리를 허는 것 같거든.

전생에 중이 시주것을 먹고 도를 통허지를 못하고 그럭저럭 지낸 그 과보果報로 소 몸띵이를 받어 가지고는 평생동안 먹기는 짚이나 풀 같은거 맛있는 음식이라고는 도무지 꼴도 못보고, 먹는 것이라고는 풀허고 짚 밲에는 못먹어. 그 풀허고 짚 밖에는 못먹는데 일은 죽어라고 허거든.

잘헌다고 칭찬 한마디는 못듣고 조금 천천히 가면은 그 후려치면서 막 몰아대는데, 죽어라고 그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논을 갈고 밭을 갈고, 또 이 달구지를 끄는데 그 무거운 짐, 쌀이다 나락이다 잔뜩 짐을 싣고서 그 가파른 언덕을 가는데 있는 힘을, 생똥을 싸면서 그 올라가는데 그래도 휘초리로 후려갈기면서 막 몰아대는데, 세상에 그렇게 매정하고 무도한 그 농부나 구루마 달구지 끗는 사람의 꼴을 보라 그말여.
어떻게 짐이 무겁고 올라가다가 더꺽더꺽 무릎을 꿇어도 그럴수록에 더욱 사정없이 몰아댄다 그말여. 그러다가 잘못해서 구루마가 넘어지고 소가 넘어지고 해도 용서가 없습니다.

그렇게 뼈빠지고 일을 하다가 늙어서 힘을 못쓰게 되면은 도살창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도살창에다가 팔아 넘기는데, 도살장으로 갔을 때 어떻게 되느냐? 물을 두 바께쓰 세 바께쓰 잔뜩 배가 터지도록 멕여 가지고는 몽둥이로 엉덩이 배때기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뚜드러, 뚜들겨 가지고는 몸이 붓게 맨듭니다. 몸이 집 덩어리, 집 덩어리만큼 부으면 그때사 마즈막에 도끼로 이마빡을 갖다가 급소를 쳐서 죽어 꺼꾸려뜨린 것입니다.
물을 잔뜩 먹여 가지고 몽둥이로 두드려 팼으니, 소가 이백근 밖에 안나가는 소가 한 오백근이나 나가게 붓거든. 그놈을 잡아 가지고는 소를 팔아 넘긴다 그말여.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 그말여?
시주것 먹고 함부로 시주것 좋아라고 먹고 도 안 닦은 중이 소가 되야 가지고 시주 은혜를 갚는다 그말여.
일을 해서, 피땀 흘려서 일을 해서 갚고, 나중에는 고기로 갚고, 똥은 거름으로 갚고, 가죽은 베껴서 구두도 맨들어 신고 잠바도 맨들고 가방도 맨들고 해서 허고, 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나도 버릴 것이 없어.

그렇게 허고 죽은 다음에 다행히 다시 사람이 되야서 되면 좋지만은, 다시 또 소가 되야.
그 시주 것 다 갚을 때까지 몇천 만번을 소가 되야가지고 갚고 그리고 난 다음에 겨우 사람이 되야 가지고는 또 머슴이 되야 가지고 또 일을 하고, 그래가지고도 또 몇번을 해 가지고 사람이 되야.
세상에 이러헌 놈에 꼬라지가 있느냐 그말여.
그러니 시주 것을 먹기를 독약이라 생각을 해라 그랬습니다. 독약이지 그것이 맛있는 음식이 아녀.

이 말을 듣고, ‘에이 빌어먹을 놈의 것, 나 중노릇 안한다’고 옷을 벗어버린 사람이 나온다면은, 이 말씀을 까꾸로 알아 들은거여.
더 이를 갈아부치고 도를 닦을 생각을 해야지, ‘에이 그런 빌어먹을 놈의 중노릇 안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게 귀 구녁이 뚫어진 것이 아니라, 귀가 맥히고 소, 쇠코만도 못한 놈의 귀구녁이다 그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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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 님】

내가 삼년전에 꿈을 꿨는데, ‘용화사에 그 용화사 선방 있는데로 어 어디 절에 나한, 나한전이 부서져 가지고 그 나한님, 흙으로 만든 나한상을 임시 이 절에다가 좀 맡기자’고. 그리고 ‘법당을 잘 지은 다음에는 그 나한님을 다시 모셔 가겠다’고. ‘그 좋다’고 ‘우리 지금 그 선방 그 수리를 하고 있으니까 빈 데가 있으니까 거기다 갖다 모시라’고.

그래서 아, 거 나한님을, 나한상을 갖다가 모셔다가 놨는데 꿈에, -이것도 역시 꿈에 얘기여- 그런데 가만히 그 나한상을 모셔놓은 그 선방 주변을 지내가다 보니까 속에서 뭔 말을 두런두런 두런두런 말소리가 난다 그말여.
그래서 가서 보면은 그 다른 절에서 임시로 갖다 모셔논 맡겨논 나한상 밖에는 없는데 그 말소리가 나고.
‘그 이상하다’고 허면서 돌아와서 또 밖에 나와서 들어보면 또 말소리가 나고. 그래서 가만 가만 가서 보니까, 그래가지고 문 구녁으로 가만히 내다보니까, 그 아! 흙으로 빚어놓은 나한님이 흙으로 빚어놓은 것이 아니라 진짜 나한, 진짜 살아있는 나한님이라 그말여.
아 그러니 그게 다른게 아니라 우리 용화사 선방 스님네들이다 그말여.

그래서, 그래가지고는 꿈을 깨고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아 선방에 참선하는 스님네가 이런 보통 스님들이 아니라, 아 그 부처님 당시에 아 그 나한, 성현들이드라 그말여. 그 꿈을 꾸고는 내가 원장으로서 어쨌던지 선방스님네를 어쨌던지 외호를 하고, 어쨌던지 조실스님 법문도 잘 듣고, 나도 법회때 마다 어쨌던지 공부 잘하시라고 경책에 말씀도 하고, 어 그렇게 해서 -내가 외호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지만- 그 꿈을 꾸고 나서는 ‘이게 보통일이 아니고 진짜 살아있는 나한님들이로구나!’ 헌 것을 내가 그때 깨달랐거든요.
그제부터서는 각별히 스님네를 마음으로 존경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리 절에 이 ‘살아있는 참 십육나한들이 오셨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러헌 마음을 갖게 되았습니다.

스님네가 조금 무엇을 잘못허드라도 그것이 허물로 보이지를 않고, 또 이 무엇을 허시는 것이 다 그냥 감사하게만 느껴지고 그러는데, 역시 이 세등선원에 모이신 선객스님들도 그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던 천이백 아라한들이, 들 가운데에 일부 그 나한님들이 우리 세등선원에도 오신 것이다 그말여. 설사 잠을 자거나 규칙을 좀 어기거나 그러드라도 외호하는 스님네는 진짜 살아 계신 그 십육나한들이 오신 줄 그렇게 믿고, 성의를, 그 동안에도 성의를 다 안한 것은 아니나, 더욱 신심을 내서 외호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세든 4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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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常 항상 하는것이 없다】


가끔 수행하는 수좌首座들이 와서,

‘아무리 정신精神을 채리고 정진精進을 좀 애써서 헐랴고 해도 간절懇切하지를 못합니다.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이 나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이 나게 되겠습니까?’

이러헌 말을 어 의논해 온 분이 적지 아니 있었습니다.
간절한 의심이 나야 하겠는데, 화두는 들면은 들을 때뿐이고 금방 끊어져버리고, 의심을 들어도 그냥 염화두念話頭로 ‘이뭣고’허면 ‘이뭣고’ 그것 뿐이지, ‘이뭣고’헌 뒤에도 그 간절懇切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를 해야겠는데 그 간절한 의심이 안나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참 그 말을 듣고,
장군죽비로 등어리를 몇번을 쳐 대줘야 할는지, 뺨다구를 몇대를 왼뺨 오른뺨을 쳐서 정신을 좀 채리게 해야 할 것인지, 엎드려 바쳐를 해서 궁뎅이를 주장자로 몇대를 때려서 정신을 채리게 해야 할는지, 달음박질을 한 십리쯤 달음박질을 해보라고 할 것인지,
참 그런 말을 문의를 해오면 자신으로서는 오직 답답하고 이렇게 흐리멍덩허니 허송세월허기가 너무너무 안되야서 일부러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와서 의논議論을 허는 말이겠지만, 내가 듣기에는 안타깝기가 그지없는 말이었습니다.

간절懇切한 마음이 왜 안나냐 그말여.
간절한 마음 하나만 나면 거기에서 신심信心도 돈발頓發하게 되고, 거기에서 분심憤心도 돈발頓發하게 되고, 거기에서 의심疑心도 돈발頓發하게 될텐데, 그 간절懇切한 마음이 왜 안나냐 그말여.

무상無常한 줄도 알고 있고, 참선을 꼭 해야겄다는 마음도 있는데, 제절로 간절한 마음이 속에서 우러나야 헐텐데, 무상한 줄도 알고 참선도 해야 하는 줄도 알아서 화두를 들라고 애는 쓰는데, 간절한 마음이 없으니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고인古人네는 그래서 공동묘지에 가서 -중국이나 인도에 공동묘지는 땅 속에다가 묻지를 않고, 시체를 그냥 노출시켜서 그것이 비바람에 살이 썩고 난 다음에는 뼈가 앙상하게 들어나서 어 뼈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대부분 그렇게 되야 있는데- 그래서 처음부터서 송장, 생 송장 놔둔 것부터서 매일 그 옆에서 정진을 허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놈이 썩어서 해골이 들어나 가지고 앙상하게 될 때까지 그놈을 계속 정진을 허는데, 그것을 백골관이라 그러는데, 그러헌, 그렇게 수행을 해나가는 그러헌 그 수행승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무상無常한 줄 깨닫고, 그 이 무상한 그 시체를 앞에다 놓고 정진을 하는데 어떻게 편안하게 잠을 자며, 일분 일초도 어 방심放心을 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전에, 그 도살창屠殺場에를 한번 관람을 간 일이 있습니다.
종정宗正을 지내신 고암古庵 대선사와 또 열반하신 이 조실祖室스님 두 큰스님을 모시고 제가 도살창屠殺場에를 한번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소를 갖다가 수 백마리가 늘어섰는데, 그 소를 끌고 들어가는데 그 소가 눈을 끔벅끔벅 눈을 감었다 떴다 하는데 그 눈에는 참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한 마리 한 마리씩 끌려 들어가는데, 끌려 들어가 가지고 그 이 도끼로 뿔과 뿔 사이 그 이 뇌를 갖다가, 뒤통수를 갖다가 치니까 그냥 툭 쓰러지고 이 비명悲鳴을 지르면서 툭 쓰러지고 툭 쓰러지고 허는데, 그 쓰러진 소를 갖다가 껍데기를 베껴 가지고 살을 갖다가 도려내는데, 번개같이 그 살이 뼉다구로부터서 분리되는 광경을 봤습니다.

그것을 보니 참 이 저런 소들이 과거에 소 전신前身은 대부분 다 출가한 스님네들이 시주施主 것을 먹고 그것을 그 값어치를 못하고 도道를 철저히 닦아서 도를 이루지 못해서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소가 되야 가지고 평생 동안 몸, 일을 해 가지고 그 노동력으로서 보답을 하고, 똥을 누어 가지고서는 비료로서 보답을 하고, 죽어 가지고서는 피도 살고기도 거기서 나온 지방도 껍데기도, 그 또 껍데기 위에 붙은 살까지라도 소는 한가지도 버릴 것이 없이 다 사람들을 위해서 그 빚으로서 그것을 제공허게 되야 있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몇백근 나가는 그 큰몸뚱이가 뭘 먹고사느냐 하면, 영양가가 풍부한 식물성 동물성을 많이 섭취허고 그렇게 살이 쪄가지고 그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풀을 먹고서 풀만 먹고서 그렇게 그 큰 몸띵이를 지탱을 허고, 그 무서운 노동을 허고 그 살과 모든 것을 갖다 전신을 갖다가 사람들을 위해서 제공을 허는 것입니다.
비싼 영양가 있는 것을 잔뜩 먹게 되면 그것도 수지가 안맞는 일이기 때문에 풀만 먹고, 제일 헐값에, 헐값이요, 아무데나 있는 그 풀을, 풀만 먹어야 자기는 먹는 것은 값이 적게 들고, 제공하는 힘과 살고기는 비싸게 팔려야 빚을 빨리 갚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

그래서 이 소를 보면은, 어디를 가다 이 소를 보면은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스님네는 지내가다가 소를 보면은 옛날 도반道伴을 만난 것처럼,

“어서 발보리심發菩提心 해라. 발보리심 해라.”

이렇게 지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발보리심 해라 그러면은 소가 우두커니 그 스님을 쳐다보면서,

“너도—!”

그렇다는군요.

참 이 말을 허고 있는 자신도 참 이 이 말이 여기에 모이신 스님네와 사부대중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송담 이 자신에게도 지금, 자신에게 하는 말이 좀 커지다 보니 여러분 귀에 들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이 해태심懈怠心을 부릴 사람은 한사람도 없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쨌던지 밥이 되거나 질거나, 반찬이 짜거나 싱겁거나, 소가 그 제일 헐한 풀만 먹고 그 무서운 힘을 쓰듯이, 어쨌던지 시주 은혜가 적은 방향으로 먹고, 어 그리고서 철저하게 무상無常한 마음을 발發해서 분심, 신심을 발해서 대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어쨌던지 금생今生에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한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의 힘을 발해 가지고 도업성취 허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

간절懇切한 마음은,
무상無常한 마음을 느끼는 데에서 간절懇切한 마음이 나는 것입니다.
이 몸띠이가 생각 생각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허는 사실을 잊지 아니헌다면, 간절 아니헐라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몸띠이가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십년도 살고 앞으로 이십년 삼십년도 더 살리라’
그렇게 뒷날, 살 날을 생각허기 때문에 무상無常을 느끼지를 못하고 무상無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간절懇切한 마음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세등 5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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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白丁의 남은 오백마리 소】

<아육왕비유경阿育王譬喩經>에 참 재미있는 법문法門이 있어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비유경譬喩經에,
옛날에 백정白丁이 있었는데 그 백정은 소를 천마리를 잘- 길렀습니다.
길러가지고 매일 한마리씩을 잡어가지고 그것을 팔았습니다. 그런것이 오백 마리를, 천 마리 중에 오백 마리를 잡어서, 잡아서 팔았는데, 나머지기 오백 마리가, 오백마리들이,

‘옛날에 우리 식구들이 천 마리였었는데 매일 한 마리씩을 잡어다가 저러니, 우리도 한 마리씩 한 마리씩 허다보면 앞으로 오백 일이 되면 우리도 다 저 백정한테 도끼로 머리를 맞아 가지고 죽어서 고기로 팔려나갈텐데 우리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 죽기전에 우리도 한번 오백 마리가 뜻을 모아 가지고 대모를 허자!’

해가지고 그 오백 마리가 서로 머리를 치받고 뛰고 소리를 지르면서 야단 법석을 허면서 대모를,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마침 그때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고을에 와서 그 오백 마리의 소가 울부짖고 날뛰고 허는 거동을 보시고서, 제자들에게

“여러 비구들아! 저것을 보아라.
저 말도 못한 짐승들도 차례 차례 백정白丁헌테 맞아죽어서, 맞아가지고 죽게되는것을 보고서 저 난동을 부리니, 저것이 어찌 저런 짐승들도 맞어 죽는것을 저렇게 통탄痛歎을 하고 난동亂動을 부리니 우리 사람인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냐.
우리도 한사람 한사람 여기서 죽고 저기서 죽고 도처到處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나가는데 우린들 어찌 죽음을 면免할수가 있겠느냐.

우리야, 병病이 들어 죽거나 오다 가다 넘어져서 죽거나 결국은 죽어가는데, 일반에는 염라대왕이 사자를 보내서 잡아간다고 허나, 우리도 어떠헌 형식으로 죽던지 죽는것은 사실이여. 그러니 어떻게 해야 우리는 죽어갈 수 밲에 없는 이 목숨이지마는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허는 길을 알고서 등한等閑히 지낼 수가 있느냐.

우리 한 목숨 뿐만이 아니라 우리 말고도 무량 중생이 있는데 그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해탈生死解脫허는 길을 가리켜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저 날뛰는 소를, 저렇게 난동을 부리는 소를 보고 우리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고 헐 수가 있겠느냐.”

이러헌 간곡한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허고있고, 우리나라도 남북南北으로 갈려서 통일統一이 아직 되지 못한 상태에서 여당 야당이 갈려가지고 서로 부정선거를 했느니 부정선거 자금을 주고 받았느니 하고 이렇게 참 날이면 날마다 뉴스에 그거 내놓고는 얘기가 없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도처到處에서 여기서 김, 김서방이 죽고 저그서 박서방이 죽고, 날이면 날마다 여기서 죽고 저기서 죽어가서 매장을 하고 화장을 하고 울고 불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그것을 면헐수가 있느냐. 생사를 면헐수는 없습니다.
오늘 어떻게 될지 내일 어떻게 될지 그건 아무도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죽음은 찾아오고 말 것입니다마는, 진정코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닫고 이만끔 숨쉬고 살아있을 때에 부지런히 ‘이뭣고’를 해서 생사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허는 길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 그럭저럭 지낼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덕담德談으로써 이말씀을 해드리는 것은,
이 속에서 무상無常을 깨닫고 ‘이뭣고’를 열심히 험으로써 사람으로 태어난,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난 우리 여러 도반들에게 열심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精進을 헌것만이 생사生死속에서 생사를 해탈解脫허고 영원한 생사 없는 깨달음을 얻게 되기를 우리는 다같이 다짐하면서 이것을 덕담으로써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요,
생사 해탈허는 것이 그것이 그렇게 간단허고 쉬운일이 아니여.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승두繩頭를 꽉 붙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해야 헐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한번 그 추위가 뻣골에 사무치치 않는다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까보냐.

이것은 황벽선사께서 우리 후래後來 제자들을 위해서 이 게송을 항상 염두念頭에 두고 가슴에 새겨서 시간을 아껴서 정진精進을 허라고 허는 그런 게송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81번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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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만 먹고도】

참 중重허지 않는가! 생사대사生死大事라니.
없는디 왜 있냐 그말이여.
깨달지 못하면은 생사生死가 있어서 그 생사 죄고罪苦를 받니라고 그 삼악도三惡道에 악도에 떨어져서...

세상에, 내 어저깬가 저 아랫역 갔다가 차를 타고 올라온디, 그 소 실는 차가 있는디, 소를 한 여남은 마리나 모가지를 밖으로 내 놓고, 차 밖으로 내놓고 몸띵이는 안으로 모도 실어 놨는데 그놈이 더워서 쎄를 빼물고 ‘허, 허- 허, 허-’ 침을 흘리고 있는디 죽으러 간 놈이여.

세상에 그걸 보고, 저렇게 살 찐 놈이,
‘이놈아 그렇게 오음성고五陰盛苦해서 그렇게 풀만 먹고도 먹을것 먹지 못허고 모도 풀 겉은거 영양 없는거만 퍼먹고도 아 저런놈어 살이 쩠구나.
네 그 큰 몸띠이, 거그 그속에 에? 이놈 니 그 큰 몸띠이 내 버리고 사형 무대에서 이? 네 그 사형 선고를 받을 때 어쩔 것이냐.
그몸띵이는 또 죽는닼 하드래도 니가 다갚지 모더고 네 지은 업을 다갚지 모더고 또가서 소가 된다든지 응? 또 그런 업보業報를 받을 터이니 어처케 헐것이냐.’

내가 내의 내 업보業報는 생각지 않고 소 업보부텀, 소 업 받을것 부텀 생각이 나네.
그게 뭐 내지 뭐, 소 그놈이 낱낱이 내지. 나는 그러헌 소 보報를 안받았으며 지끔 금생今生 당시當時에 이렇게 시주施主거, 시은施恩 먹고 이렇게 살고 있으니 여가 나 저가 나 해준 밥 먹고 따뜻한 방에, 그 좋은 방사에 시주施主, 시주 모도 돈 들여서 해준 방에, 옷도 모도 그 이 시주가 해준 그놈 입고 맨 시은施恩, 시은으로써 안팎 장엄莊嚴을 허고 있으니 그 죄는 얼마겄냐.
나도 너겉은 몸띵이를 받아가지고 너같이 이렇게 죽으로 도살창屠殺場으로 가는 길이다, 참 다를배 없구나.

내 그걸 보고 참, 한—참 생각해 보았네.
차 안에서 옴서 그, 아 그놈 그 큰 놈이 죽으로 가는데, 참 도살창屠殺場 간다고 다 그려. 그 다음에 실고 가면서 다 그려. 하 이런놈으...
나는 또 몰랐는데 그놈으말을 허길래 알았지.

본분本分 공안公案을 의지해서 마땡히 참구叅究를 해야 한다.
그 본참참구本叅叅究라는것이 깨끗헌 참구다.
일체망념一切妄念이 으이? 없는 곳이다.
일어났다 멸했다, 있는놈으로 말헐게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여.
그러면 본참상本叅上에서 바로 해나가는 방법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때기 이빨이에, 판자 이빨에 털났느니라.’

그게 세상에 무슨 도리냔 말이여.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켔는고?’
다맛 ‘알수없는 놈 하나’ 그놈이 그 의단疑團이다. 의심疑心이여.
의심 그놈 아니며는 도道는 응?
닦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허는 법法이 없어.
도道는 그게 도道여. 알 수 없구나.
말, 처음에 들으며는 어찌 알 수 없는게 의심인고?
알수없는 의심 그까짓거 무엇인고 싶지. 허망하고 우습지.
인제 한번 혀, 두번 혀, 열번 혀, 백번 혀, 천번 펴, 만번 혀, 구구입처久久入處다. 오래오래 해 봐라. 오래오래 하며는 쑥—!들어가는 곳이 있어. 입처入處가 있어.


- 전강선사 법문 307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