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처當處】
【당처當處】
일식홀평침一息忽平沈하면,
한 생각 문득 일어났다 꺼지면,
만사萬死가 종두기從頭起니라,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일만 죽음이 여기로 좇아 일어나느니라.
생사윤회生死輪廻다, 육도윤회六道輪廻다,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다. 이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지옥地獄, 어디로 좇아 일어나느냐 하면은 숨 한번 쉬는데,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는 데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그거거든.
당처불회모當處不回眸허면,
당처當處,
당처라 하는 것은,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자최없이 한 생각이 문득 일어날 때, 일어나서 일초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일어날 그 찰나가 바로 당처當處거든.
뭘 보면, ‘아! 저것이 무슨 물건이다. 빛깔은 무엇이다. 모냥은 무엇이다.’하고 생각이 여러가지 생각으로 이렇게 둘째 셋째 넷째번 생각으로 자꾸 이렇게 번져서 갈라져가지고 이상한데로 끌고, 끌려가거든?
그게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이전에, 시간은 일초에 백분의 일도 시간이 지내가기 전에, 바로 그게 당처當處거든.
당처當處에 눈동자를 돌리지 아니하면, -이 눈동자는 마음의 눈동자거든- 탁! 눈동자를 자기의 본참공안本叅公案,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바로 당처當處를 말헐 것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은, 참선을 허고있는 분상分上에는 자기의 본참공안本叅公安으로 생각을 돌릴 수 밖에 없어. 자기 본참공안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심, 순일무잡純一無雜한 의심疑心, 그 공안公案의 의심당처疑心當處로 생각을 돌이키지 아니하면,
조정祖庭에 공측이空側耳니라.
조사祖師의 뜰에서 공연히 귀를 기울이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다. 바로 조사의 방에 바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저 뜨락 가장자리에 와가지고 이래- 저래 귀를 기울이고 ‘행여나 뭔 좋은 얘기꺼리가 없나’ 하고 귀를 기울이고 끼웃 끼웃허고 일생을 그러다 마는 것 밲에는 안된다 이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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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선사가 백장선사를 떠억 찾아가서, 회상에 찾아가서 뵈웁고 절을 떠억 하고 묻기를,
“학인學人이 부처를 알고자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떻게 허면 부처를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백장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치 소를 타고 소를 찾는거와 같구나.”
대안선사가 다시 말하기를,
“안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백장스님이 말씀허시기를,
“소를 탔으면 집으로 돌아갈 지니라.”
이것이 바로 참선叅禪의 모냥을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문답問答을 헌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58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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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離當處】
“又云 有一物 於上柱天下柱地
先天地而無其始 後天地而無其終
歷千劫而不古 恒萬歲而長今
常在變用中收不得者
萬相之中 獨露者 不離當處”
또 말하였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친다.
천지보다 먼저지만 시작이 없고,
천지보다 이후지만 그 끝이 없다.
천겁을 지나왔지만 옛이 아니요,
만세를 걸쳐도 긴 지금이다.
변용變用하는(변화하고 쓰는) 가운데 있으되 거두어 얻지 못하는 것,
만상萬相의 가운데 홀로 드러난 것으로
당처當處를 여의지 않는다.
- 蒙山德異、《達摩大師歸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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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中一箇物 無奇無特 無頭無尾 明如日黑似漆 常在諸人動用中 動用中收不得 山僧今日 等閑收得來 拈向諸人面前
汝等諸人 還會這个麽。
집안의 이 한 물건은 신기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고,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나, 밝기는 해와 같고, 어둡기는 칠흑과 같습니다.
항상 여러분이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나 동용하는 가운데 거두어 얻을 수 없습니다.
산승이 오늘 무심코 그것을 붙잡아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아십니까?
- 『나옹화상어록』 懶翁和尙語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