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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變함은 변치 않는 진여眞如에서】

이 뭣고? 2019. 10. 15. 05:06

【변치 않는 진여는 변함에서】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이요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인고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를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인고.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이요,
시냇물 소리는 문득 이 부처님의 광장설廣長舌 법문이요.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가.
산 빛이 어찌 청정한 부처님의 몸이 아니리요.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를,
밤으로부터 옴으로 팔만사천가지나 된 진리의 노래를,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인고.
다른날에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보일 것인가.




이 시는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이면서 거사로써 확철대오廓撤大悟한 소동파蘇東坡의, 도道를 깨닫고 읊은 게송입니다.

......

우리의 육체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세계,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우리 육체肉体는 부모를 인연因緣해서 태어나고 탄생을 하면 늙어서 병들어서 언젠가는 죽고 마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이 일어났다하면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가지고 결국은 그 생각이 꺼져 버립니다.
우리의 몸 밖에 있는 태양이나 달이나 하늘 나라의 모든 별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나 그 지구에 있는 산천초목山川草木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가 있으면 잠시동안 머물러 있다가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도 이 세상에 영원불멸永遠不滅한 것은 없습니다.
무상無常하고 믿지 못할 것들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경전에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이 세상에 모든 유위법이,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 이슬과 같고, 번개불과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확실히 무상無常한 줄 요달了達을 하면 우리의 중생들의 고통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이 몸뚱이나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멀고 가까운 모든 세계와 모든 일과 모든 물건이 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없어진 것을 향해서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해가고 있고 무상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그러헌 가운데에 정말 영원永遠한 것이 있습니다.
무상無常한 가운데 영원永遠한 것이 있어.
그 영원한 것을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고 하고 진여眞如라고도 하고 여러가지 말로 표현을 하셨습니다마는, 그 영원한 것이 우리의 육체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육체속에도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 육체肉体는 한 피부 속에는 피와 오줌과 고름과 대소변 그런것들로 꽉 차 있지만, 그 육체속에 영원불변한 진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참 나, 그것을 깨달으면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 영원한 열반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동파는 그 진리를 깨닫고서,
“흘러가는 시냇물소리가, 물이 돌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가, 소리지만, 그 물 흘러가는 소리가 바로 저것이 비로자나毘盧遮那부처님의 설법說法소리다. 산이 푸르고 꽃이 피고 단풍이 지는 저 산 빛 같은 저것이 비로자나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의 몸띵이다.”
이렇게 표현을 한것입니다.


영가께서 73세를 일기로 이승을 하직하셨습니다마는,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돌아가셨다’ ‘사망했다’ 하고 모두가 슬퍼합니다.
분명히 우리 중생의 눈에는 다시는 그 모습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 할 수가 없으니까 돌아가셨다고 말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마는, 진리眞理의 눈으로 보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인연因緣 따라서 나타났다가 인연因緣 따라서 사라지는 것 뿐이지 생사生死는 본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변變한 가운데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어.
그러면 ​모든 것이 변變하는 것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며는 변하지 않는 진여眞如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여.
모든 것이 변하고 있지만은 변하는 가운데에 영원한 것이 그 속에 있다고 하는 진리가 바로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신 그 법문의 요지要旨가 바로 그것인것입니다.


‘지금은 말세다. 말세는 투쟁, 도처에서 투쟁을 하는 세대다.’ 이렇게 말들 하지만 진리의 입각에서 보면 정법시대나 상법시대나 말법시대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변화하는 것뿐이지 그 변화하는 그 속에 영원한 진리를 찾고 보면 말세도 우리는 진리가 엄연히 살아서 있는 것입니다.



———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이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기지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세에 가서 당연히 한이 만단이나 될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죽음을 향해 가고있는 것입니다.
이 육체를 가지고 영원히 산 사람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한사람도 없습니다.
결국은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또 다른 생生을 맞게 되는데, 금생今生에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음생에 각기 몸을 받아 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벼슬이 높고 권리가 높고 재산이 많고 해도, 그래도 결국은 다 버리고 이승을 하직下直하게 됩니다.
염라대왕앞에 결국은 다가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재산이 많다 명예가 높다 권리가 많다 그런다고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금생今生에 살아 있을 때 ‘마음씨를 어떻게 썼느냐’ ‘말을 어떻게 했느냐’ ‘행동을 어떻게 했느냐’ 그것으로써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말과 행동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마음씨를 어떻게 갖느냐’ 에 따라서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그 마음먹은대로 표현이 되는 거고, 우리의 육체를 통해서 하는 모든 행위도 우리의 마음에 표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동을 바로 잡고 언어를 바로 잡을라면 근본인 우리의 마음씨를 바로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씨를 바로 잡는 법이 바로 불교의 참선법叅禪法입니다.

‘참선법叅禪法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고 스님네들만 하는 것이다, 불교신자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불교를 믿건 안 믿건 종교가 있건 없건 지식이 있건 없건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다 ‘마음’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부터 모든 생각이 일어나요.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생각이 일어날 때 즉각卽刻 이것이, ‘이 놈이 무엇인가?’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일어나는 생각으로 그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 일어나는 그 뿌리를 찾는거여.

그렇게 어떠한 것을 보거나 듣거나 어디서 무엇을 하거나 간에 항상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고?’
그것을 줄여서 ‘이 뭐꼬?’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뭐꼬?’
항상 그것을 되풀이해서 하다보면 성이 난 마음도 가라앉고 분한 마음도 가라앉고 원망스럽고 미운 마음도 가라앉고 근심걱정도 거기서 다 가라앉게 되는 거여.

일구월심日久月深 ‘이 뭐꼬’ ‘이 뭐꼬’ 하다보면 나중에는 할라고 안해도 항상 저절로 ‘이 뭐꼬?’ 가 타악 현전現前해 갖고 번뇌망상煩惱妄想이 붙지를 못하는 거고 일체외부경계에 동요함을 받지 않게 되는 거야.
그래가지고 일년 이태 삼년 일생동안 꾸준히 하다보면 오매불망寤寐不忘으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한 경지에 이르르면 일조一朝에 툭 터져서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선법인데 누구든지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51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