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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등法燈 (9주기 추모재)】

이 뭣고? 2019. 9. 10. 13:40

【9주기 추모재】



오늘 계해년 12월 2일, 조실스님의 9주기 추모재追慕齋를 맞이해서 원근각지遠近各地에서 사부대중 여러분께서 설한풍雪寒風에도 불구하시고 참예參預해 주신대 대해 문도를 대표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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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에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헌 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出家하셔서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 끝에 생사없는 도리를 깨달라서 대 자비심으로 중생을 위해서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셔서 무량중생을 제도하시고 80세를 일기로 열반涅槃을 보이셨습니다.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은 가섭존자迦葉尊者에 전해지고 가섭존자로부터 28대 달마조사達磨祖師에 이르기까지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수되았고, 그 달마대사는 140년간을 오천축五天竺을 두루 다니시면서 정법을 선양하시고 중국에 건너오셨습니다.

그래가지고 9년 동안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허시면서 기다리시다가 마침내 혜가대사慧可大師를 만나 법을 전하시고 혜가대사로부터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에까지 전해내려 왔습니다.
육조혜능 선사는 부처님으로부터 33대 조사가 되십니다.

육조스님 이후로 오종가풍五宗家風이 벌어지고 우리나라에는 1346년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중국에 들어가셔서 석옥청공石屋淸珙 선사로부터 법을 이어 가지고 해동海東에 초조初祖가 되셔서 돌아오셨습니다.

그 태고보우 선사로부터 등등상속해서 법이 전해 내려 오다가 경허鏡虛 큰시님까지 75대 까지 내려왔습니다.

경허鏡虛 선사는 소시少時에 대 강사가 되어서 충남 계룡산 동학사東鶴寺에서 많은 학자를 경經을 가르치고 계시다가 발심을 허셔서 불철주야 용맹정진을 하신 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경허선사는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 스님으로 한국 선풍이 일시一時 침체沈滯했을 때 태양처럼 출세出世 하셔가지고 한국 선종에 중흥조中興祖가 되셨습니다.

그 경허스님으로부터 만공滿空 스님께 법이 전해지고,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강田岡 대종사 조실스님께 77대의 법등이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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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스님은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전남全南 곡성군谷城郡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때는 1898년 11월 16일 이셨습니다.
어려서 십 육세에 해인사海印寺에 출가하셔서 20세까지 경經을 보시고 20세에 직지사直旨寺로 가셔서 재산스님 밑에 참선을 허시다가 너무 용맹정진을 하신 끝에 피가 코로 입으로 넘어오고 머리 뒤에 상기上氣로 인해서 머리가 터져서, 터질 정도로 그렇게 무서운 정진을 허셨습니다.

경허스님께서도 정진허실 때에 밤에 잠이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잠을 깨우시고, 또 칼을 갖다가 턱 밑에다가 괴아놓고 졸다가는 턱이 찔려서 눈을 깨도록 이렇게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용맹정진을 하셔서 도를 얻으셨던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대도大道를 이룰 때에는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오면서 그러한 피나는 각고刻苦의 정진精進의 결과로 대도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리는 부처님의 본생담本生譚이나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뒤 설산에서 얼마나 피나는 고행을 허셨는가를 더듬어 보면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직지사에서 용맹정진 허시다가 거기서 나오셔 가지고 다시 선지식을 찾아서 만공滿空스님 회상에까지 왔다가 거기서 또 정진을 좀 허시다가 거기서 또 나와 가지고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다가 그 개천을 건너시면서 ‘조사서래의’ 에 대한 공안을 타파를 하셨던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묻거든,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이 소견이 터지면서 일체공안一切公案에 걸림이 없는 지혜智慧의 눈을 뜨셨습니다.
그 길로 태안사泰安寺에 들어가셔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으시고, 그 뒤로 팔도八道에 선지식善知識을 두루 찾으시면서, 특히 그 당시當時 육대六大 선지식善知識을 차례 차례로 참방叅訪을 해서 법거량法擧揚을 하시고 모다 인가印可를 받으셨습니다.

마지막에 경, 만공 큰스님이 계신 덕숭산德崇山 정혜사定慧寺에 가셔서 탁마琢磨를 하시고 만공 스님의 인가印可를 받았습니다.

이십삼세, 25세에 만공스님으로부터 77대의 법등法燈을 이어받으셨습니다.

그 뒤 삼십 삼세에 통도사通度寺 보광선원普光禪院 조실祖室로 추대되시고 법주사 복천선원, 경북 수도선원, 망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지내신 뒤 63세에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개설을 허셨습니다.

그래가지고 열반에 드실, 77대, 77세에 열반에 드실 때 까지 15년간을 이 용화선원에서 학자를 재접하시고 정법을 선양을 허셨습니다.

그동안에 대구 동화사桐華寺 선원이라든지 또는 경남 범어사梵魚寺 선원 또는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선원에 조실을 지내시고, 또 용주사龍珠寺에 72세 때에 중앙선원中央禪院을 개설을 하셔서 거기서 또 학자를 재접을 하셨습니다.

33세의 새파란 청년 시기에 불보 종찰 통도사 조실을 역림 허신 것을 비롯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큰 선원에 조실로 추대 되어서 많은 학자를 재접을 하시고 마침내 이 용화선원龍華禪院에, 이 중안, 주안 염전 갯벌 가에다가 이 조그마한 용화선원을 개설을 하시고 이 토굴에서 여생을 마치셨습니다.


그동안에 전국에 많은 선객들이 와서 모다 정진을 하시고 또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와서 많은 그 법문을 들으시고 정법의 종자를 모다 마음 속에 깊이 심게 되셨습니다.

옛날에 조실스님이 계시던 그 집과 법당은 이미 헐리고 없지만 조실스님의 법문은 우리는 녹음을 통해서 생생하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원래 생사生死없는 도리道理를 내 몸에 구현具現하는 것이므로, 부처님께서 설사 80세를 일기一期로 열반涅槃에 드셨다고 하나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지끔도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고 계십니다.

조실스님이 10년 전에 열반에 드셨지만 우리의 신심 여하에 따라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그리고 우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조실스님은 살아계신 것이며 조실스님의 법문은 언제나 우리는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온 법계에 상주설법을 하고 계시는 도리, 조실스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언제나 살아계신다고 그렇게 믿고 우리가 정진을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금생에 도업을 성취하고 부처님의 진리를 체달을 헐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날씨는 춥고 눈이 쌓여서 교통도 모다 불편하시고 그런데 이렇게 원근에서 참석을 해주신 여러 사부대중 여러분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이 법요식이 끝난 다음에는 간략히 공양과 다과가 준비가 되았으니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공양을 들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인사의 말씀을 이만 맺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