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此珠】 《能自護心念耳》
【차주此珠 이 구슬】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
주야광음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
멱사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蹤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한데
주야광음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로구나.
우리에게는 이 몸, 이 몸을 부모한테 의탁依托해서 이 몸띠이를 타고 났는데, 이 몸띠이 속에는 해보다도 더 밝고 달 보다도 더 밝은 그러한 묘-한 보배 구슬이 들어있다 그말이여.
그러나 그 보배 구슬은 해부를 해도 오장육부 속에 찾어볼 수는 없어. 이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가 없으나 그 보배 구슬은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설사 이 몸이 죽어서 썩어 문드러 진다 해도 이 몸띵이 속에 들어있던 그 보배 구슬은 썩는 법도 없고, 이 몸띵이가 죽은 뒤에도 그 보배 구슬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여.
그러한 묘한 보배 구슬은 크기로는 우주 보다도 더 큰데 그래서 클 것도 없고, 바늘로 찌를랴고 해도 찌를 수가 없을 만큼 더 작어. 보일 수가 없어. 원자 현미경을 놓고 보아도 보이지를 않기 때문에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여.
밤과 낮이 없이 그 광명은 온 우주 법계를 환-히 다 비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보배 구슬은,
멱시무물覓時無物이요 우무종又無蹤이여.
아무리 찾아봐도 한 물견도 없어. 아무리 찾어봐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것을 알랴고 해도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자최도 없다 그말이여.
형상도 없고 자최도 없어.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다.
그런데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고 앉을 때는 같이 앉고 누워도 같이 눕고 일을 해도 같이 일허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항-상 요요了了하고 명명明明하다 그말이여.
그게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생각해도 알 수도 없는 그러한 건데, 눈을 통해 모든 것을 볼 수도 있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들을 수도 있고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을 수가 있고 혀를 통해서 온갖 맛도 볼 줄도 안다 그말이여.
부르면 대답 할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정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알고 그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묘한 보배 구슬이더라.
- 송담선사 법문 복전암 3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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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영지空寂靈知하는 청정한 심체心体】
曰此是諸佛諸祖壽命 更莫疑也 旣無相貌 還有大小麽 旣無大小 還有邊際麽 無邊際故無內外 無內外故無遠近 無遠近故無彼此 無彼此則無往來 無往來則無生死 無生死則無古今 無古今則無迷悟 無迷悟則無凡聖 無凡聖則無染淨 無染淨則無是非 無是非則一切名言 俱不可得 旣*揔無如是一切根境 一切妄念 乃至種種相貌 種種名言 俱不可得 此豈非本來空寂本來無物也 然諸法皆空之處 *靈知不昧 不同無情 性自神解 此是汝空寂*靈知淸淨心體
[용성선사]
가로되 이것이 제각제조(諸佛諸祖)의 수명壽命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미 상모相貌가 없을진대 도리여 대소大小가 있느냐.
이미 대소大小가 없을진대는 도리어 갓과 지경(邊際)이 있느냐. 갓과 지경이 없는고로 피차彼此가 없나니 피차가 없은즉 왕내往來가 없고 왕내가 없은즉 생사生死가 없고 생사가 없은즉 고금古今이 없고 고금이 없은즉 미迷하고 깨친것(悟)없고 미하고 깨친것이 없은즉 범부(凡)와 성현(聖)이 없고 범성이 없은즉 더럽고(染) 깨끗한(淨)것이 없고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은즉 시비是非가 없고 시비가 없은즉 일체 일홈(名)과 말(言)을 한가지 얻을수 없나니라.
이미 다 이와같을 진대는 일체 근경根境과 일체 망념妄念과 내지 가지가지 상모相貌와 가지가지 명언名言을 한가지 얻을수 없으니 이것이 어찌 본래공적本來空寂한것이 아니며 본래 물건없는 것(無物)이 아니리오.
그러나 모든 법이다 공空한곧에 영지靈知가 어둡지 아니하야 무정無情과 같지 아니하야 성니性理가 스사로 신그러이 아나니 이것이 네의 공적영지空寂靈知에 청정심체淸淨心體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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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본 해설]
이르되,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의 목숨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으면 또 크고 적음이 있겠느냐?
이미 크고 적음이 없으면 또 끝(한계)이 있겠느냐?
끝이 없는 까닭으로 안팎(內外)이 없고, 안팎이 없는 까닭으로 멀고 가까움(遠近)이 없고, 멀고 가까움이 없는 까닭으로 ‘저곳과 이곳(彼此)이 없고, 저곳과 이곳이 없으면 가고 옴이 없고(往來), 가고 옴이 없으면 생사(生死)가 없고,
생사가 없으면 고금(古今 옛과 이제)이 없고, 고금이 없으면 모름(迷)과 앎(悟)이 없고, 모름과 앎이 없으면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면 물듦(染)과 깨끗함(淨)이 없다.
물듦과 깨끗함이 없으면 옳고(是) 그름(非)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면 모든 이름 지어 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할 것이니, 이미 모두 없어져서 이런 일체의 근根과 경境, 일체의 망념妄念과 갖가지 모양과 갖가지의 이름을 지어 말하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어찌 공적空寂하고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無物)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空한 곳에 영지靈知의 어둡지 않음이 무정無情한 것과는 같지 않아 성품이 스스로 신기롭게 안다. 이것이 바로 너의 공적영지空寂靈知하는 청정한 심체心体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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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自護心念耳、능히 스스로 그 마음(心念)을 호지護持할 따름.】
而此淸淨空寂之心 是三世諸佛第八張勝淨明心 亦是衆生本源覺性 悟此而守之者 坐一如而不動解 脫迷此而背之者 往六趣而長劫輪廻 故云迷一心而往六趣者 去也動也 悟法界而復一心者 來也靜也 雖迷悟之有殊 乃本源則一也 所以云所言法者 謂衆生心而此空寂之心 在聖而不增 在凡而不減 故在聖智而不耀 隱凡心而不昧 旣不增於聖 不少於凡 佛祖奚以異於人 而所以異於人者 能自護心念耳
[용성선사]
이 청정淸淨하야 비이고 요요한 마음이 삼세제각(三世諸佛)의 승정명심勝淨明心(승하여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라)이며 또한 중생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이니 이것을 깨어 직히는(守)자는 한결같아야 동動함이 없어 해탈하고, 이것을 미迷하야 등지는자는 육취에 가서 기리 겁에 윤회하나니라.
그런고로 말삼하사되 일심一心을 미迷하야 육취六趣에 가는자는 마음이 경게를 따라가는 것이며 동動하는것이오, 법게를 깨처 일심一心으로 회복(復)하는자는 오는 것(來)이라(거래없는 본분고향에 온것이라) 고요한 것(靜)이라하니, 비록 미迷하고 깨치는(悟) 것은 있을지라도 본대 근원根源은 하나이니라.
소이所以로 말하되 법法이라 하는것은 중생의 마음(衆生心)이라 하시니 이 공적空寂한 마음은 성인聖人에 있어 더하지 아니하고 범부凡夫에 있어 감減하지 아니하는고로 말삼하사대 성인의 지헤에 있어 빛나지 아니하며 범부의 마음에 숨었으나 어둡지 아니하다 하니라.
이미 성인에 있어 더하지 아니하며 범부에 있어 적지아니할진대 각조가 어찌 사람에 다르리요.
쓴바 사람보다 달으다하는것은 능히 마음에 생각을 잘 두호斗護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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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본 해설]
이 청정淸淨하고 공적空寂한 마음이 삼세 모든 부처님의 가장 깨끗하고 밝은 마음(勝淨明心)이시며, 또한 이것이 중생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이다. 이것을 알아 가지고(守)있는 이는 한결같이 앉아(坐一如)움직이지 아니하야 해탈하고, 이것을 몰라 배반(背)한 이는 육취六趣에 가서 오랜 겁劫 동안 윤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 한 마음(一心)을 몰라 육도에 가는 사람은 가며(去) 움직이는(動) 것이고, 법계法界를 알아 한 마음(一心)으로 돌아가는(復) 사람은 오는 것(來)이고 고요한(靜) 것이다.’ 라고 하시었다.”
비록 모름(迷)과 앎(悟)이 다름이 있지만 그 본래本來의 근원根源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르시길 ‘말한 법法은 중생의 마음(衆生心)이라고 하신 것이니, 이 공적空寂한 마음이 성인聖人에 있어서도 더하지 아니하며, 범부凡夫에 있어서도 덜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성인의 지혜智慧에 있어서도 밝지 아니하며 凡夫의 마음에 숨어서도 어둡지 아니한다’ 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성인께 더하지 아니하며 범부에게 적어지지 아니하니, 부처님과 조사祖師가 어찌 사람과 다르겠는가?
사람과 다른 것은, 능히 스스로 그 마음(心念)을 호지護持하실 따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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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眞正見解 진실하고 정正한 견해見解를 일으켜】
汝若信得及疑情頓息 出丈夫之志 發眞正見解 親嘗其味 自到自肯之地則是爲修心2) 之人 解悟處也 更無階級次第 故云頓也 如云於信因中 契諸佛果德 分毫不殊 方成信也
[용성선사]
네가 만일 믿음을 얻으면 의정疑情을 몰녹 쉬리니 장부의 뜻을 내이며 진정한 소견을 발發하야 친親이 그 맛을 보와 스사로 즐거워 하는지경에 있을것이니 곧 이것이 마음닦는 사람의 깨처 아는곧이라 다시 게급차제階級次第가 없는고로 돈頓이라하니라.
저이르되 믿는가운대 제각(諸佛)의 과덕果德에 게합하야 분호分毫도 달으지아니하야사 바야흐로 믿음을 이룬다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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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해본 해설]
“네가 만약에 믿음에 미치면(信得及) 의심하는 뜻이 문득 그쳐 대장부의 뜻을 내어 진실하고 정正한 견해見解(보고 앎)를 일으켜 친히 그 맛을 맛보고 자기가 스스로 즐기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마음을 닦는 사람의 아는 곳이다.
다시 계급階級과 차제次第가 없으므로 돈頓(몰록, 갑자기)이라고 말한다.
말한 ‘믿음의 인(信因)’중에서 모든 부처의 과덕과 맞아(계합하여)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아야만 믿음이 이루어진다(成信)’고 한 말과 같으니라.”
- 『목우자수심결』 牧牛子修心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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