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낱 가운데 한없는 맑은 맛】
【箇中無限淸意味】
악인수작죄수초惡因誰作罪誰招리오
진성여공부동요眞性如空不動搖로구나.
광겁무명구탕진曠劫無明俱蕩盡헌디
선천후기적요요先天後地寂寥寥로구나.
악인수작죄수초惡因誰作罪誰招며,
악惡한 인연因緣을 누가 지어서 그 죄과罪果를 또 누가 받느냐 그말이여.
죄罪를 지은 것은 무엇이 죄를 지었으며, 죄罪를 받는 자는 또 누가 죄를 받는 것이냐 그말이여.
진성여공부동요眞性如空不動搖로구나.
참된 성품性品은 허공虛空과 같애서 동요動搖가 없드라 그말이여.
광겁무명曠劫無明을 구탕진俱蕩盡하면,
광겁曠劫에 무명無明을 함께 다 탕진蕩盡해 버리면,
선천후기적요요先天後地寂寥寥라.
선천先天, 하늘 하늘이 생겨나기 이전, 이 땅이 또 없어진 뒤에, 하늘이 생겨나기 저 무량겁無量劫 이전, 무량억겁無量億劫이전부터서 무량겁 이후, 한량없이 이 세계世界가 생겨나기 이전부터서 이 세계가 없어진 뒤 까지 본래本來부터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한 적멸寂滅한 상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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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갑자년甲子年 정월正月 십칠일 동안거冬安居 해제일解制日입니다.
이 자리에는 세등선원 안거 대중과 군산 흥천사 반야선원에 안거 대중과 그밖에 윤필암, 전국에 선원에서 정진精進한 비구니 선객禪客들이 이 자리에 운집雲集을 했고, 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운집을 해서 해제解制 법요식法要式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부대중四部大衆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宇宙法界에 한량없이 많은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와, 은진 송씨 진영 영가와, 진주 유씨 승희 영가, 또 이 자리에 이 법요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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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띵이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라고 그러고, 몸띵이를 버리면 ‘영가靈駕’라 그러는데, 그 본성本性자리에 있어서는 몸띵이를 가지고 있을 때나 몸띵이를 버릴 때나, 짐승의 몸을 받았거나 천상에 있거나 지옥에 있거나 어떠헌 모습을 가지고 있건 간에 그 본성本性자리에 있어서는 더헐 것도 없고 덜헐 것도 없어.
심지어 중생衆生의 상태에 있거나 불보살佛菩薩의 경계境界에 있다 하드라도,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 그 본성本性자리에 있어서는 추호도 차별差別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난 석달 동안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허는 것도 이 생사生死없는 자기自己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기 위해서 천신만고千辛萬苦를 겪으면서 수행修行을 하는 것입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天下에 모든 납자衲子들이 출몰出沒하는 것도 또한 이 일대사一大事 인연因緣을 위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금방 조실스님의 법문도 오직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구체적이고 자상하게 그 공부해 나가는 방법方法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수행인修行人에게는 그보다 더 자상하고 뼈에 사무치는 법문法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사生死없는 그 본성本性에 입각立脚해서 보면 닦을 것이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버려야 할 악惡도 없고 지어야 할 선善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사生死가 본래 없건마는 무슨 까닭으로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우리는 육도六道를 윤회輪廻하면서 가진 고락苦樂을 겪으면서 금생今生에 까지 이렇게 왔으니, 왜 생사生死가 본래本來 없는데 이렇게 생사를 받으면서 오늘날까지 왔으며, 왜 본래 생사가 없는데 그 생사를 해탈解脫하기 위해서 고행수도苦行修道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소승小乘은 생사生死가 있다고 분명히 생사,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다고 인정을 하고 그 생로병사를 벗을랴고 노력을 하는 것이 소승에 수행修行이고, 이 대승법大乘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설사 내가 이 세상에 이 몸띵이를 받아나서 병들어서 늙어서 죽고 또 태어나서 병들어서 늙어서 죽고, 현실적으로 이렇게 받고 있다 하드라도 ‘생사生死는 본래本來 없는 것이다’고 허는 철저한 신信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를 받으면서 어떻게 생사가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생사生死는 깨닫기 전에도 없는 것이며, 깨달은 뒤에도 생사는 없는 것입니다.
다맛 생사生死가 있다고 착각錯覺을 하고, 벗어야 할 생사가 있다고 착각錯覺을 하고, 증득證得을 해야 할 열반涅槃이 있다고 착각錯覺을 허는디에서 우리는 벗어야 할 생사가 있고, 증득을 해야 할 열반이 있는 것 뿐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삼천년 전에 인도印度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태자로 탄생하셔서 출가出家하셔 가지고 설산雪山에 육년 고행苦行을 하시고,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撤大悟를 허셔서 사십구년 동안 고구정녕苦口丁寧한 미묘법微妙法을 설하셨습니다만, 무슨 목적目的으로 허셨느냐.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허시기 위해서 출현出現을 허셨다.’
중생을 어떻게 제도를 허느냐.
‘벗어야 할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증득을 해야 할 열반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 생사열반生死涅槃의 그 소견所見을 제도濟度허시기 위해서 출현出現하신 것이여.’
우리가 당장에라도 ‘벗어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증득證得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다’고 하는 도리道理에 계합契合해 버리면 장부일대사丈夫一大事를 요달了達헌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광겁무명曠劫無明을 탕진蕩盡을 해버리고 선천후지先天後地에 적요요寂寥寥한 도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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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단전밀의심直指單傳密意深하면
본래비불역비심本來非佛亦非心이니라.
분명불수연등기分明不受燃燈記라
자유영광요고금自由靈光耀古今이니라.
(직지단전밀의심直指單傳密意深하면)
부처님으로부터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단전單傳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 깊은 밀의密意를 바로 봐버리면,
본래비불本來非佛이요 역비심亦非心이니라.
본래 부처도 아니고 또한 마음도 아니니.
분명불수연등기分明不受燃燈記하면,
서가모니부처님께서 연등불께 수기受記를 받아서 부처를 이룬 것이 아니라고 허는 도리道理를 분명히 안다면,
(자유영광요고금自由靈光耀古今이니라)
우리 모든 대중도, 육도법계六道法界의 모든 중생衆生도, 금일 은진 송씨 진영 영가, 진주 유씨 승희 영가도 스스로 신령스러운 광명, 스스로 갖춘 신령神靈한 광명光明이 예와 이제에 빛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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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馬祖스님이 원상圓相을 떡 그려놓고,
‘이 속에 들어가도 치고, 이 속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니 일러라!’ 했습니다.
한 스님이 그 원상圓相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떡 앉았어.
마조스님이 주장자柱杖子로 여지없이 한 방맹이를 쳤습니다.
치니까 그 원상 안에 떡 들어가서 앉은 스님이,
‘스님이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스님이 입을 딱 다물고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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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동안거三冬安居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수행을 헌 대중이 지혜智慧의 눈을 뜬 자가 있거든,
이 원상圓相을 그려놓고, ‘이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안해도 친다.’
그 승僧이 들어갔다.
마조스님이 여지없이 방棒을 내리는데,
‘스님이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왜 쳤는데 스님이 저를 치지 못했다고 헌 도리道理가 무엇이여.
눈을 갖춘 자가 있으면 한마디 일러.
이 많은 대중이 용맹정진을 그렇게 했으니, 어찌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이 하나 둘 뿐이리요만은, 체면을 너무 지키느라고 묵언默言으로서 이른 것을 나는 알겠습니다.
( 주장자 한 번 내려치심)
오늘 해제解制를 하고 앞으로 석달 동안 산철인데,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제結制 중이라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해제라고 해서 어찌 산만히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석달 동안 춥도 덥지도 않는 이런 정진허기 좋은 계절에 어쨌던지 시간을 아껴서 더욱 알뜰히 정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원래 정진精進이라 하는 것은,
‘닦을 것 없는 곳을 향해서 닦아야 하고,
깨달을 것 없는 곳을 향해서 확철대오를 해라.’
이것입니다.
오늘 백일기도 회향回向이며 이 세등선원에 천일기도가 오늘로서 회향을 보게 되았습니다.
수행도 해제를 했다고 해서 공부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듯이, 해제를 허고서 더욱 정진을 알뜰히 해야 함과 마찬가지로 다시 오늘부터 또 천일기도를 시작을 허게 되았습니다.
신남신녀께서 또 이 천일기도에 모다 동참同參을 허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이 낱낱이 다 성취가 되시고, 무량겁 업이 다 소멸이 되고, 현실적으로는 여러분 가정에 모든 소원을 성취하시고 출세간적出世間的으로는 승속僧俗이 없습니다.
스님이라고 해서 견성을, 견성도통見性道通을 허고 속가俗家에 계신다고 못허라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투철透徹한 신심信心으로 그 생활 속에서 일초일초 일념일념을 단속을 해서 알뜰히 정진精進을 해 간다면 오히려 여러분이 더 크게, 더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참선叅禪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알아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라, 비약적인 것이어서 한 생각 사무쳐 버리면 확철대오헐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다음날 이 자리에 만날 때까지 알뜰히 정진하시고 기도하시기를 부탁을 하고 해제 법어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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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운수강상만雨過雲收江上晩한디
수봉창취접천하數峰蒼翠接天霞로구나.
계중무한청의미箇中無限淸意味를
강상일구도설파江上一鷗都說破로구나.
(우광운수강상만雨過雲收江上晩한디)
해제를 하고 걸망을 짊어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선지식을 찾고 도반道伴을 찾으며 행각行脚을 허다 보면, 비를 만나서 비가 지난 뒤에는 구름이 걷히고 강상江上에는 해가 넘어가고,
(수봉창취접천하數峰蒼翠接天霞로구나)
몇 봉오리 푸른 산봉오리는 안개가 끼어서 하늘에 접接하고 접한디,
(계중무한청의미箇中無限淸意味를)
그 가운데에 한없는 맑은 맛을 어떻게 표현을 헐 것인가.
이 그림과 같은, 비가 갠 뒤에 구름이 걷히고 강 위에는 석양이 되야서 그 푸른 봉우리는 안개 끼어 가지고 하늘에 접했는데, 그 아름다운 그 경계를 뭐라고 표현을 헐 것인가.
(강상일구도설파江上一鷗都說破로구나)
강상江上에 이리 나르고 저리 나르는 흰 백구가, 백구의 울음소리가 그 아름다운 경계를 여지없이 일렀드라.
(주장자 내려치심)
- 송담선사 법문 세등 48번.
* 애월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