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此生 차생】

이 뭣고? 2018. 10. 24. 08:08

【’일생一生’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백개천방지위신百計千方只爲身이요 부지신시진중진不知身是塵中塵이로구나.나무아미타불.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하라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개천방지위신百計千方只爲身이요 부지신시진중진不知身是塵中塵이다.
백 가지 계획과 천 가지 방편이 다못 이 몸을 위하는 것이여.
일생동안, 어려서부터서 자라 가지고 공부하고 그래가지고 취직도하고 사업도하고 각 직업에 따라서 참 열심히 사는데, 육체와 정신과 온갖 두뇌를 써서 최선을 다해서 일생을 열심히 사는데 그것이 무엇을 위하냐 허냐면 몸을 위해서 허는것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몸이란것이 무엇이냐. 수 천억개의 띠끌이 모여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지.

막언백발무언어莫言白髮無言語하라.
흰 머리가 말을, 말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라.

차시황천전어인此是黃泉傳語人이다.
이 흰 머리라 허는것은 황천黃泉에서 ‘얼마 안있으면 너를 잡으러 간다’ 그, 허는 그 소식消息을 전해오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흰 머리가 나며는 꺼멓게 물을 들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몇 개 안날 때는 뽑아 버리기도 하고 많이 나오면 다 뽑을 수가 없으니까 거먹물을 들이기도 하고 될 수 있으면 늙지, 늙게 않 보이기 위해서 노력을 허는데, 그 흰 머리는 ‘머지않해서 너를 데리러 간다고허는 염라대왕으로부터서 소식이 전해온 것이다.’ 이런, 향엄선사香嚴禪師라고 허는 큰 선지식께서 읊으신 게송입니다.

———

오늘 산승이 신묘년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 심지어는 깐난, 금방 난 어린 애기까지 모다 안고 업고해서 데리고 모다 참석을 허셨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도반이요 어머니요 아버지요 형이요 동생이요 정법을 믿는 도반道伴으로서 이렇게 멀고 가까운 데에서 이렇게 참석을 허신 여러분을 보고 대단히 감동을 했습니다.

조실스님 녹음 법문이야 각기 자기 있는 절에서, 선방에서, 자기 있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을 텐데 이렇게 일부러 이 법회法會에 참석허신 그 뜻을 생각해 볼 때에 우리 도반이 한 법당에 모여서 조실스님의 법문을 같이 듣고 그러기 위해서, 들음으로해서 더욱 신심信心을 내고 분심憤心을 내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그러헌 감동感動을 갖기 위해서 이 자리에 여러분이 참석허신걸로 압니다.

우리는 신묘년辛卯年, 서기 2011년의 신묘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우리는 죽비를 치고 정진을 하고 열심히 수행을 하게 되는데, 정말 그 석 달이라고 허는 것이 길다고 허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짜른 시간이나, 그 시간이 어떻게 해서 시간이 백일, 구십일 동안의 시간이라는게 무엇이냐하면, 하루 이십 사 시간이 구십 번 모인 것이 석달입니다.
그런데 하루 수물 네 시간이라 하는것은 일초 일초가 모여서 수물 네시간을 하루가 되고 또 그 일초 일초가 모여서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그러다보면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석 달이 지내서 낸년, 임진년壬辰年 정월正月 십 오일에 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마는, ‘그 석달 동안을 어떻게 우리가 지내느냐, 어떻게 생활을 하며 어떻게 정진을 허느냐’ 허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 석달 동안을 알뜰히 잘 정진을 해 나갈랴면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오층 십층 짜리 집도 한 장 한 장에 벽돌, 한 줌 한 줌의 모래 씨멘트 모다 그런 것들이 모여 가지고 십 층도 되고 이십 층도 되는데, 그 한 장 한 장의 벽돌이 제자리에 놓여있지 않고 삐딱허니 쪼끔씩 쪼끔씩 삐뚤어지기 시작허면 그 건물은 삐딱헌 건물이 되아가지고 오래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석달 동안의 정진,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허고 잡두리를 허고 화두를 거각舉却해나가느냐 하는것은 우리가 석달을 어떻게 잘 지내느냐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불법을 믿는 목적을 달성허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

방금 우리는 한 시간에 걸쳐서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생전에 모시고 살았던 산승으로서 오늘 조실스님의 법문을 들음, 듣는데 처음 들은 것 처럼 그렇게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역시 여러분도 그러셨으리라 믿습니다.

주로 법문의 내용이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화두에 대한 법문이 주 법문이었습니다.

화두...

여러분은 이미 화두를 타서 이뭣고(是甚麽) 화두나 무자無字화두나 판치생모版齒生毛화두, 그런 화두話頭를 이미 타가지고 참 정진精進을 허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마는, 우리는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끝없이 밖에 경계를 받아들이면서 살고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있으니 밖을, 밖에 것이 안볼수가 없고 귀도 있으니 무슨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사람 말소리도 들려오고 새 소리도 들려오고 바람소리도 들려오고 자동차나 기차의 그런 교통수단의 소리도 듣습니다마는, 예사로 살면 그냥 스쳐 지나가고 그, 그것에 따라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또 딴 생각을 허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우리 참선叅禪허는 사람은 밖에서 들어오는 소리, 밖에서 들어오는 어떠헌 빨갛고 노랗고 무슨 색상色相이 들어올 때,

‘어떻게 그것에 대응對應해 나가느냐’

그것이 정말 발심發心해서 정진精進허는 사람과 발심을 못하고 그럭 저럭 사는 사람과의 차이가 그 찰라 찰라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가 들어(려)도 왜 그 저 소리 듣는데로 쫓아가지 말고, 귀야 열려 있으니 들리기는 들리나 그 들린 찰라에

‘이뭣고?’

어떤 색상色相이 눈에 들어오면 ‘어, 저 어린애로구나. 어린애가 코가 흘리는구나. 어린애가 옷을 잘못입었구나.’ 그 보는 그리 쫓아가지 말고 척! 보자말자

‘이뭣고?’

판치생모版齒生毛 화두를 허는 이는,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해서 천 생각 천 만상千萬想이 나에게 접수接受되는 그 순간, 될 수 있으면 그 동시同時에 ‘이뭣고?’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 사람이 정말 정진精進을 옳게 해 나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누가 와서 나를 칭찬한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누가 나를 비방하고 욕을 헌다고해서 그리 쫓아가서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최상승법을 믿고 정진허는 사람은 그 찰나에,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고 ‘한 시간 한 시간을 그렇게 단속’해 나가고 그렇게 해 나가면 나중에는 꿈에도 그러헌 정진하는 꿈을 꾸게 될,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에게 산승山僧이 이 자리에 올라와서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릴 말씀은 이 한마디 밲에 없습니다.

경전에 있는 말씀,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장황허게 여러분에게 얘기헐 겨를도 없습니다.
산승도 이미 늙어서 귀도 잘 안들리고 눈도 잘 안보이고 음식을 먹어도 별 맛을 모릅니다.
내가 머지 않아서, 흰 머리가 이렇게 많이 난 것으로 보면 머지 않아서 나도 저승에 가게되나, 그때 까지는 산승은 여러분께 이 말씀을 간절히 해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조실스님을 믿고 조실스님 상좌가 되어가지고 오늘날까지 내가 나름대로 정진精進해온 결과結果 여러분에게 정말 간곡히 여쭙고 싶은 말은,

《‘다못 이 찰라 찰라를 어떻게 단속해 나가느냐.’》

계행戒行을 지키고 뭐 그런것은 이, 저- 먼 얘기고, 정말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 데에는 ‘이뭣고’하나 단속, 한 생각 단속하면 저절로 그 속에 계행도 지켜지는거고 여러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

【今生】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이라.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劫歷微塵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하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고. 나무아미타불.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이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는 마치 무엇과 같으냐하며는, 우, 샘 물을 품는 두레박과 같은 것이다.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劫歷微塵이다.
백천만겁百千萬劫동안 수없이 미진수 세계를 우리가 겪어, 그렇게 해서 겪어왔어.
타레박이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 내려가고 하나를 또 품어 올리면 빈 타레박은 내려가고 무량겁 동안을 우리는 그렇게 탐진치貪瞋痴 속에서, 그렇게 탐진치 속에서 그렇게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금생에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어.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이 몸을 금생今生에 제도허지 아니허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고,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가지고 이 몸을 제도헐 것이냐.

———

《이 차생此生이라고 허는 것은, ‘금생今生이다’, 생生 자字가 우리가 칠십년 팔십년 내지 구십년 그 사는것을 일一 생生 이라고 그러는데,
산승은 이 생生을 앞으로 이 육체가 끝나서 죽을 때 까지를 일생一生이라고 보지 않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진것이 그것이 생生·사死입니다.’

그 생사生死가 소중헌 줄 알고 그 생사를 알뜰히 단속헌 사람은, 그렇게 해서 일초 일초가 지내고 한 생각 한 생각이 지내가지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서 ‘일생一生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정말 그사람은 발심發心헌 사람이고 생사가 중요한 것이고 무서운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생사生死를 철저하게 단속을 한 사람이라야 정말 우리가 진정한 도반道伴이라고 생각을 헙니다.》

앞으로 석달 후에 다시 만날때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747번.

—————————

【覺行大師

僧兼山水三知己 
鶴與雲松一世間
虛寂本心如不識 
此生安得此身閒

- 청허 淸虛.

(승겸산수삼지기僧兼山水三知己)
스님네와 산과 물은 세 가지의 친구다 이것입니다.
스님네는 주로 산수간山水間에서 수행을 허기 때문에 지기知己는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상대방은 내 마음을 아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지기知己라고 그러는데,
스님네와 산과 물은 바로 삼지기三知己요,

학여운송일세간鶴與雲松一世間이다.
하늘을 날아댕이는 학과 하늘을 날아댕이는 구름과 그리고 학이 깃들고 있는 산에 푸른 소나무, 이것은 한 세간이다 ‘일세간一世間이다’ 그말은 ‘삼지기三知己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학이 하늘을 날아댕이매 구름 사이를 날아댕기고 학이 머물러서 쉴라며는 소나무에 앉어야 편안허고 제격이다 그말인데,

스님네와 산과 물, 학과 구름과 소나무는 다 서로 이 짝이 맞은 삼합三合관계다 그말인데 그러헌 속에서,

허적본심虛寂本心을 여불식如不識이면,
허虛, 진真, 아- 무 오염됨이 없는 맑고 청정한, 그리고 적정寂靜한, 우리가 부모한테 태어나기 이전부터서 무량겁 우주세계가 생겨나기 전 부터서 소소영영한 자기의 본심本心자리를 만약 아지를 못하면, 깨닫지를 못하면,

차생此生에 안득차신한安得此身閒리오.
금생今生에 어떻게 이몸에 한가함을 얻을수가 있으리오.
이 몸이 한가하다고 허는 것은 생사에 구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59번.
​​




———————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이 생生에 만약 이 말(斯語)을 따르지 아니하면
후 세世를 당하여 한恨이 만단이나 되리라.



———



今生不踏曺溪路
擡脚還鄕豈有年

- 逍遙 소요

“지금 생生에 조계의 길 밟지 아니하면,
다리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해(年)가 어찌 있으리오.”


———


不行芳草路
難至落花村

- 淸虛 청허

“방초芳草길을 행行치 아니하면,
낙화촌落花村을 가덜 못혀.

그 좋은 꽃 떨어진 촌村에 가서 열마(實)가 결실이 있는건데, 방초길, 방초길을 터억 행해야사 낙화촌에 이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