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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友 좋은 벗、도반道伴】

이 뭣고? 2021. 8. 17. 17:24

【善友 좋은 벗】


與善人居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即與之化矣
與不善人居如入鮑魚之肆(肄)
久而不聞其臭亦與之化矣
君子謹其所與處
(원문: 丹之所藏者赤漆之所藏者黒
是以君子必慎其所與處者焉)

- [孔子家語] <六本篇>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것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도록 있으매 그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와 함께 동화되기 때문이다.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절인 생선이 버려진 곳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도록 있으매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붉은 단丹을 간직한 자는 붉어지고, 검정 옻을 간직한 자는 검어지게 되니, 이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더불어 있는 곳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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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문自警文]에 보면,
모중지목茅中之木은 미면삼척未免三尺이요,
떼 풀 속에 있는 나무는 삼척을 면허지 못한다.
떼 풀속에 풀속에 얽혀가지고는 나무가 제대로 쑥쑥 뻗어나가지를 못하고,

송리지갈松裏之葛은 직용천심直聳千尋이다.
소나무에 속에 있는 칡넝쿨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그 소나무가 올라간 데 까지는 천 길을 똑바로 공중으로 솟아올러, 올라갈 수가 있다.
그러헌 법문이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바른 스승과 바른 도반을 만나면 바르게, 그리고 공부를 성취헐수가 있다고 허는 말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헌 것입니다.
바른 스승을 못만나고 좋은 벗 좋은 도반과 같이 수행을 아니허면 그 공부를 올바르게 헐 수가 없고 목적을 달수, 달성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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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인古人이 말씀허시기를,
지란지실芝蘭之室에,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에 들어가서 있으면, 있다가 나오면은 그 옷과 몸에 그 그윽한 난초의 향내가 몸에 배이고, 비린내 나는 생선가게에 가서 오래 있다가 나오면 자기의 몸과 옷에서는 비린내, 생선 비린내가 몸에 밴거와 마찬가지로, 좋은 스승과 바른 스승과 좋은 도반道伴과 같이 수행을 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른 신심信心과 올바른 수행修行으로 목적을 달성 헐 수가 있다고 허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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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 비유경에 이러헌 말씀이 있는데,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길을 가시는데 길에 종이쪼가리가 하나가 있어.
근께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저 종이를 줏어라"
그 제자가 그 종이를 줏었습니다.
"그 종이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가 한 번 맡어봐라"
"냄새를 맡어 보니까 이 종이는 향香을, 향을 쌋던 종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종이에서는 좋은 향내가 납니다"
또 얼만큼 걸어가니까 새끼 토막이 있었습니다.
"그 새끼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봐라."
그 제자가 그 새끼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무슨 냄새가 나는고?"
제자가 냄새를 맡아보니까, "이 새끼 토막에서는 비린내가 납니다. 생선을 묶었던 새끼토막인 것 같습니다"

이러헌 부처님의 제자들을 가르키시는 경전에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이것도 바로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을 만나서 같이 생활하고 같이 도를 닦으면 좋은 스승과 좋은 도반에 좋은 사상과 신심과 좋은 점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본 받게 되고 그렇게 해서 올바르게 수행을 헐 수가 있다고 허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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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란존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선우善友',
'좋은 벗을 만나서 좋은 벗과 같이 수행을 하는 것은, 도道를 반半은 성취헌 것이나 다름이 없겠구나.'
그러헌 생각이 떠 올랐어.
틀림없이 나는 그렇게 생각허지만 부처님께 이것을 여쭈어 가지고 그 생각이 옳은가에 대해서 확실한 인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선우를 만나는 것은 도를 반은 성취허나 다름없이, 없다고 생각이 되는데 제 생각이 옳습니까?"그렇게 여쭈어 봤습니다.
부처님께서 의연毅然히 말씀허시기를,
"니 생각이 틀렸느니라!"
아란존자는 그 말씀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야! 반半까지 성취했다고 헌 것은 너무헌 생각이고 약간의 영향을 받을지언정 어찌 반까지 성취했다고 헐 수가 있겠느냐' 이런 말씀으로 부처님께서 틀렸다고 허신줄 알았는데, 부처님께서 다시 이어서 말씀허시기를,
"좋은 벗을 만나서 같이 수행하는 것은 공부에 반半을 성취헌 것이 아니라 전부全部를 성취헌 것이나 같으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그 끝에 부처님께서 법문法門을 이어서 하시기를,

《"너희들은 얼마나 좋으냐! 나와 같은 선우善友를 가졌으니 너희들은 얼마나 좋으냐!
너희들이 도道를 닦아가고 수행修行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나와 같은 벗과 같이 생활을 허며 같이 걸식乞食을 허며 같이 수행修行을 하고 법문法門을 듣고 공부허다가 의심 나는 것이 있으면 물을 수가 있고 그렇게 해서 잘못된 것을 곤쳐 나가며 목적을 향해서 도道를 닦아가니 너희들은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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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처님을 감히 우러러 보기도 엄섬하고 가까이 모시기도 대단히 엄섬하고 그럴 것 같이 생각이 되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도반처럼 그렇게 생각허셨습니다.

항상 넘치는 뜨거운 자비慈悲로써 제자들을 보살펴 주시고 당신이 '스승이다'고 허는 생각을 갖지 아니하시고 그 제자들의 '착한 벗'이라고 그렇게 스스로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이 '선우善友'라고 번역이 되아있지만 원래 그 인도말을 '선지식善知識'이라고도 변역하고 '선우'라고도 번역헐 수가 있는 범어가 있습니다.
선우, '좋은 벗이다' 이렇게 같은 단어지만은, 선우善友라고도 번역허고 또 선지식善知識이라고도 번역헐 수가 있는데, 한 한문으로 번역할 때 그 역자가 때로는 선지식이라고 번역허기도 허고 때로는 착할 선善자 벗 우友자 선우善友라고도 번역헐 수가 있어서, 우리는 부처님을 대선지식大善知識이라 이렇게도 우러러 보고 그러고 존경허고 공부를 해오고 있습니다마는, 착한 벗을, 선우善友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항상 부처님을 마음속에 가까이 모시고 우리의 생활 속에 부처님을 착한 벗으로 알고 가까이 그리고 다정허게 그렇게 부처님을 우러러 보고 생각허고 그러고 생활을 허면서 도를 닦는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자비한 마음에 부합이 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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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존자와 부처님과의 대화라던지, 법구경 비유, 법구비유경에 있는 향 싸고 생선을 쌌던 새끼에 관한 그런 말씀이던지, 이것은 우리가 항상 존경하는 도반, 존경하는 선지식으로서 부처님을 우러러 존경하고 또 우리와 같이 도 닦는 선배 여러분에 대해서던지 같이 수행하러, 해나가는 동료가 되았건 자기의 보다 늦게 발심하고 나이가 어린 후배가 되았던지, 널리 생각해보면 다 벗이요 도반인 것입니다.
함께 먼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여행을 하고 있을 때 다 같이 가는 길 벗이라고 생각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앞서 가는 사람은 앞길을 잘 보면서 올바르게 앞장서서 가며 뒷사람을 이끌어 주고, 뒤에 가는 사람은 정신 차려서 앞사람 가는 길을 놓치지 않도록 뒤에서 밀면서 따라가는 그러헌, 그래서 이것을 같이 수행하는 사람을 선배가 되았건 동료가 되았건 후배가 되았건 훨씬 앞서 가고 위대한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선지식善知識'이라 하고 '선우善友'라고 헌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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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바르게 발심發心을 못허고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면 아무리 자기와, 자기의 앞에 좋은 도반道伴이 있고 선배가 있다고 하더라도 따라잡지를 못하고 자기는 뒤쳐져 버릴 수백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한 거, 부지런헌 것에 반대는 해탠데, 해태懈怠요 방일放逸인데, 게을러 빠지고 방일放逸헌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부처님이 계시고 선지식이 계시고 좋은 도반이 있다하더라도 결국은 자기는 한눈 팔고 게으름 부리다가 뒤떨어져 버린 수 백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방禪房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봄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새벽 세시면 일제히 일어나서 세수허고 양치질허고 예불허고 그리고 부처님께 축원하고 참회하고 그리고서 하루에 일과를 시작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행여나 해태懈怠에 빠질까 행여나 방일放逸허게 될까 그래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늦게 밥을 공양도 제 시간에 허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하루에 일과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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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이 처음에 절에 와 가지고 한 철을 조실스님과 고암스님을 모시고 지내다가 어떤 생각이 들어서,
'산중에 가서 혼자 토굴에 가서 생식을 허면서 허면은 실컷 정진을 헐 수가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여름철이 지난 다음에는 겨울철에는 산중에 가서 혼자 생식을 허면서 있었는데, 대중과 같이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서 입 방선허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산중에 토굴에 가서 있으니까 새벽에 일어나기가 대단히 힘이 들고 일어나서도 추우니까 홑이불로 머리를 두집어 쓰고 앉았으니까 금방 졸음이 오고, 졸음이 오니까 참고 참다가 그냥 드러눕고 싶고 이렇게 해서, 생식을 허니까 밥허고 국 끊일 것도 없고 쌀만 물에다 담가서 한 보새기를 이렇게 먹으면 그만이고 해서 일은 전혀 없으나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고 대중과 같이 죽비를 치고 정진헐 때는 분위기가 엄수, 엄섬허고 혼자 해태에 빠질 수가 없었는데 혼자 있으니까 큰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추위도 이겨내기가 어렵고 시간 맞춰서 정진허기도 어려운 것을 느껴서,
'진짜 참선을 헐랴면은 대중과 같이 정진을 허는 것이 옳다'
이렇게 철저히 깨닫고서 결국은,
'중이 되되 일체 다른 스님네의 허물을 보지 말으리라.
그래 가지고 이 세상에 안태어난 셈치고 일생을 벙어리로서 오즉 이 일대사만을 위해서 생을 맞추리라'
이런 생각을 허고 중이 되자마자 묵언默言을 시작했는데 묵언한다고 해서 공부가 꼭 잘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군축대해서 둘씩 셋씩 모여서 잡담허고 그럭저럭 지내는 일은 제절로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보새기: 전라남도에서 [사기그릇](대접)을 일컫는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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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내가 지나간 얘기를 허게 됐냐 허면은, 지금 아까 게송에도 그렇고 선우善友! 좋은 벗을 만나서 같이 공부허는 것은 '도반들이 내 공부를 반이상 해준다'. 선방에 내려오는 속담입니다.
선방에서 참선허면 자기가 자기 공부허지 어째서 도반이 해줄 수 반을 해준단 말인가.
여러분도 선방에서 지내보신 분은 다 그 말뜻을 아실 것입니다.
대중과 같이 생활허게 되며는 공양으로 부터서 아침 일어나고 잠자는 것허며 일상생활이 제절로 법도에 맞고 규칙적이 되고 분위기가 엄섬하고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해태헐 수가 없고 방일헐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대중처소에서 같이 지내는 것은 도반이 바로 내 공부를 반을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뜻이 되겠고, 아란존자가 부처님께 여쭌 좋은 도반을 만나서 같이 수행을 허면 공부를 반은 벌써 성취해놓은 것이나 다름 없다고 헌 그런 말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반만이 아니라 전부를 성취헌 것이나 같다고 허신 말씀에, 허다 보니까 처음에 절에 들어왔을 때 일이 생각이 되아서 그에 첨부를 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선방에서 정진허신 스님에 수좌스님네드나 또는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에서 정진허시는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같이 수행허는, 같은 목적을 향해서 공부해 나가고 같은 스승의 법문에 의해서 지도에 의해서 수행허는 사람들은 마을에 친형제간보다도 더 지중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같이 한 방에서 공부를 하고 한 솥밥을 먹고 공부를 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반은 서로 나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항상 조심을 해야 하는거고, 피해라고 허는 것이 꼭 몽둥이나 발길로 차야만이 아니라, 내가 허는 모든 행위는 말 한마디라도 잘못허면 상대방에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이고 내가 기거 동작을 허는데 조심을 안허면 본의 아니게 다른 옆에 도반들에게 또 혐오감을 주고 피해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닫는데도 항상 조심해서 조용히 해야 하는거고 걸어가고 걸어오는 데에도 발자죽 소리도 안나도록 조심을 허는 것이고 지대방에서 차를 마실 때에도 너무 큰 소리로 웃고 잡담을 허지 말라 하는 것도 다른 사람 공부허는 데에 피해가 갈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특히 시민 선방이나 보살선방에서 공부하시는 여러분도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허실 때 또 몸을 씻을 때 이를 닦을 때 또 방선 시간에 항상 엄숙한 마음으로 오늘 여러분께 말씀한 그 내용을 깊이 명심을 해가지고 자기로 인해서 다른 도반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을 허셔야 헐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65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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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雜阿含經》 第726經.


如是我聞: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佛住王舍城夾谷精舍。爾時,尊者阿難亦在彼住。 한 때에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협곡 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에 존자 아난도 또한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時,尊者阿難獨一靜處禪思思惟,作如是念:「半梵行者,所謂善知識、善伴黨、善隨從,非惡知識、惡伴黨、惡隨從。」
그 때 존자 아난은 홀로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禪思를 사유思惟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아! ‘범행梵行을 닦음에 있어서(도道를 닦음에 있어서) 그 반半’(절반)은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요 ‘좋은 도반들’이요 ‘잘 보살펴 주는 이’며, 이는 악지식이 아니요 악한 도반들이 아니요 악하게 보살펴주는 이가 아니로구나. 」

時,尊者阿難從禪覺,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獨一靜處禪思思惟,作是念:『半梵行者,所謂善知識、善伴黨、善隨從,非惡知識、惡伴黨、惡隨從。』」

그때 존자 아난은 선각禪覺을 좇아 부처님 처소로 가서 그곳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를 올리고서 물러나 한쪽 편에 앉아 부처님께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홀로 한 고요한 곳에서 선사禪思를 사유思惟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 ’범행梵行을 닦음에 그 반(半)’은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요 ‘좋은 도반들’이요 ‘잘 보살펴 주는 이’며, 이는 악지식이 아니요 악한 도반들이 아니요 악하게 보살펴주는 이가 아니로구나.』」

佛告阿難:「莫作是言:『半梵行者,謂善知識、善伴黨、善隨從,非惡知識、惡伴黨、惡隨從。』所以者何?純一滿淨,梵行清白,所謂善知識、善伴黨、善隨從,非惡知識、惡伴黨、惡隨從。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범행梵行을 닦음에 그 반(半)’이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요 ‘좋은 도반들’이요 ‘잘 보살펴 주는 이’며, 이는 악지식이 아니요 악한 도반이 아니요 악하게 보살펴주는 이가 아니로구나.』」하는 이러한 말을 하지 말아라. 왜 그런가 하면, 순일純一해서 깨끗하고 원만하여 범행梵行이 청백清白(청렴결백)한 것을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요 ‘좋은 도반들’이요 ‘잘 보살펴 주는 이’며, 이는 악지식이 아니요 악한 도반들이 아니요 악하게 보살펴주는 이가 아닌 것」 이라 하느니라.

我為善知識故,有眾生於我所取念覺分,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如是擇法覺分,精進、喜、猗、定、捨覺分,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

나는 선지식善知識이 되는 까닭으로 중생들은 내게서 염각분念覺分(수행자가 항상 잘 생각하여 마음을 한 곳에 두어 관조하는 일)를 취取해서 멀리 여의는 것에 의존하고 · 욕심 없음에 의존하며 · 사라짐에 의존하고 · 소멸에 의존하며· 여의어 버림[捨]으로 향하느니라(열반으로 회향하느니라).

이와 같이, 택법각분擇法覺分 · 정진각분精進覺分 · 희각분喜覺分 · 의각분猗覺分 · 정각분定覺分 · 사각분捨覺分도 멀리 여읨에 의존하고 · 욕심 없음에 의존하며· 사라짐에 의존하고 · 소멸에 의존하며 · 여의어 버림으로 향하느니라(열반으로 회향하느니라.)

以是故當知,阿難,純一滿淨,梵行清白,謂善知識、善伴黨、善隨從,非惡知識、非惡伴黨、非惡隨從。」

이러한 까닭으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아난아! (염각분念覺分이)순일純一해서 깨끗하고 원만하여 범행梵行이 청렴결백한 것이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요 · ‘좋은 도반들’이요 · ‘잘 보살펴 주는 이’며, 악지식이 아니요 · 악한 도반이 아니요 ·악하게 보살펴주는 이가 아닌 것이니라."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를 듣고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염각분念覺分이 순일純一하도록 관조觀照함]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선지식으로부터 받아 받들어 행하게 되는 ‘화두話頭’라 할 수가 있겠다.

•염각분念覺分: 염각지念覺支. 지혜를 동반한 마음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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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東晉罽賓三藏瞿曇僧伽提婆 譯
동진 계빈 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 김월운 번역.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爾時阿,難白世尊言所謂善知識者卽是,半梵行之人也:將引善道以至,無爲

그때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란 곧 범행(梵行)을 행하는 사람의 절반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길로 인도해 함이 없는 곳[無爲]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佛告阿難:勿作是言 言善知識者卽是半梵行之人所以然者夫善知識之人卽是全梵行之人與共從事將視好道我亦由善知識,成無上正眞等正覺以成道果度脫衆生不可稱計皆悉免生老病死以此方便知夫善知識之人全梵行之人也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은 곧 범행을 행하는 사람의 절반이라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무릇 선지식이란 범행을 행하는 사람의 전부이기 때문이니라. 그는 함께 종사(從事)하면 그를 인도해 좋은 길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무상정진등정각(無上正眞等正覺)을 이루었고, 그 도의 결과를 이룸으로써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모두들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을 면하게 한 것이니라. 이 사실로 보면 선지식은 범행을 행하는 사람의 전부임을 알 수 있느니라.

復,次阿難若善男子善女人與善知識共,從事,者信根增益聞施慧德皆悉備具猶如,月欲盛滿,光明漸增,倍於常時此亦如是若有,善男子善,女人親近善知識信,聞念施慧皆悉增益以此方便知,其善知識者,卽是全梵行之人也

또 아난아,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선지식과 함께 종사한다면, 그는 신근(信根)이 더욱 튼튼해지고 들음ㆍ보시ㆍ지혜의 덕이 모두 갖추어지리라. 마치 달이 차려고 할 때면 그 광명이 보통 때보다 차츰 더하는 것처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선지식을 가까이 한다면 믿음ㆍ들음ㆍ기억ㆍ보시ㆍ지혜가 모두 늘어날 것이다.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선지식은 곧 범행을 행하는 사람의 전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느니라.

若我昔日不與善知識從事,終不爲燈光佛所見授決也以與善知識從事故,得爲與提和竭羅佛所,見授決以此方便,知其善知識者,卽是全梵行之人也

만일 내가 옛날에 선지식과 함께 종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끝내 등광불(燈光佛)의 수기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선지식과 함께 종사하였기 때문에 제화갈라불(提和竭羅佛)로부터 수기를 받은 것이니라. 이런 사실로 보더라도 선지식은 범행을 행하는 사람의 전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느니라.

若當阿難,世閒無善知識者,則無有尊卑之敍,父母師長兄弟宗親,則與彼豬犬之屬,與共一類,造諸惡緣,種地獄罪緣有善知識故,便別有父母師長兄弟宗親

아난아, 만일 이 세상에 선지식이 없었다면 높고 낮은 차례도 없고, 부모ㆍ스승ㆍ형제ㆍ종친의 구별도 없었을 것이니, 저 돼지나 개와 똑같은 무리가 되어 온갖 나쁜 인연을 짓고 지옥으로 갈 죄의 종자를 심었을 것이다. 선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ㆍ스승ㆍ형제ㆍ종친의 구별이 있게 된 것이니라.”

是時,世尊便說此偈:善知識非惡,親法非爲食,將導於善路,此親最尊說

이때 세존께서 곧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선지식은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의 법은 물질을 위함 아니네.
그는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나니
그 친구의 말이 가장 높은 말이다.

是故阿難,勿復更說言善知識者,是半梵行之人也

“그러므로 아난아, 다시는 ‘선지식은 범행을 행하는 사람의 절반이다’라고 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