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처(當處)、참선의 모냥】
당처불회모(當處不回眸)하면,
당처(當處), ‘당처’라 하는 것은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자최 없이 한 생각이 문득 일어날 때, 일어나서 일초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일어날 그 찰나(刹那)가 바로 ‘당처(當處)’거든. 뭘 보면 ‘아 저것이 무슨 물견이다’, ‘빛깔은 무엇이다’, ‘모냥이 무엇이다’ 하고 생각이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이렇게 둘째 셋째 넷째 번 생각으로 자꾸 요렇게 번져서 갈라져가지고 이상한 데로 끌고, 끌려가거든. 그게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이전에, 시간은 일 초(1초)에 백 분에 일(1/100)도 시간이 지내가기 전에 바로 그게 ‘당처’거든. 당처에서 눈동자를 돌리지 아니하면, 이 눈동자는 마음에 눈동자거든. 탁 눈동자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바로 당처를 말헐 것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은 참선(參禪)을 하고 있는 분상(分上)에는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생각을 돌릴 수밲에 없어. 본첨, 본, 자기 본참공안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심, 순일무잡(純一無雜)한 의심(疑心), 그 공안(公案)의 의심당처(疑心當處)로 생각을 돌이키지 아니하면,
조정(祖庭)에 공측이(空側耳)니라.
조사(祖師)의 뜰에서 공연히 귀를 기울이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이다. 바로 조사(祖師)의 방(房)에 바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저 뜨락 가장자리에 와가지고 이래저래 귀를 기울이고 행여나 뭔 좋은 얘깃거리가 없나하고 귀를 기울이고 기웃기웃허고 일생을 그러다 마는 것 밲에는 안 된다 이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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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선사(大安禪師)가 백장선사(百丈禪師)를 떠억 찾어가서, 회상(會上)에 찾어가서 뵈웁고 절을 떠억 하고 묻기를,
“학인이 부처를 알고자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떻게 허면 부처를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백장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거와 같구나.”
대안선사가 다시 말하기를, “안 다음에는 어떻게 허게... 해야겠습니까?” 백장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소를 탔으면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禮問百丈曰:「學人欲求識佛,如何是佛?」百丈云:「太似騎牛覓牛。」師云:「識得後如何?」百丈云:「如人騎牛至家。」
이것이 바로 참선의 모냥을 이해하기 쉽게, 간결하게 문답(問答)을 한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58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