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림자와 꿈]
問:「諸法無體,從緣幻生;眾緣無依,還從法起。緣法無性,必竟俱虛;無主無人,無生無滅。如何廣論無常之事相,復說虛妄之果報乎?」
묻되, 모든 법法은 체體가 없어 연緣을 좇아 환幻이 생生함이요, 온갖 연緣에 의지함이 없으면 도리어 법法 일어남을 좇는다. 연緣과 법法은 성性이 없어서 필경에 함께 허虛하며, 주인도 사람도 없어서 생生하고 멸滅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무상無常한 사상事相을 널리 논論하는가?
答:「以真心不守自性,隨緣成諸有;雖似有即空,乃體虛成事。猶如樹影雖虛,而有陰覆之義;還同昏夢不實,亦生憂喜之情。雖無作者之能為,不失因緣之果報。
답하되, 진심真心(참 마음)은 자성自性을 지키지 아니함으로써 연緣을 따라 모든 유有를 이루고, 비록 유有인듯 하나 곧 공空하니, 이에 체體가 비었으되 사事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나무 그림자가 비록 허虛하다고는 하나 그늘로 덮어주는 그 뜻이 있고, 도리어 흐릿한 꿈이 실답지 못하다고는 하나 또한 근심과 기쁨의 정情을 생生하게 함과 같은 것이다. 비록 짓는 자의 능위(能為)는 없다고 하나, 그 인연因緣의 과보果報는 잃어버리지 않는다.
故《淨名經》云:『無我、無造、無受者,善惡之業亦不亡。』又教所明空,以不可得故,無實性故;不是斷滅之無,何起龜毛兔角之心,作蛇足鹽香之見?」
그러한 까닭에 <정명경淨名經>에서 이르기를, “나라는 것이 없고 지음도 없으며 받는 자도 없으나, 선善과 악惡의 업業은 또한 없어지지 않는다.” 하였으며,
또 교教에서 공空을 밝힌 바는, ‘가히 얻지 못하는 까닭’이요 ‘실實한 성性이 없는 까닭’인 것이지, 단멸斷滅의 무無가 아니언마는, 어찌 거북 털과 토끼 뿔의 마음으로 뱀 다리(蛇足)와 소금 향(鹽香)의 견해를 짓느냐?
- [만선동귀집] 영명지각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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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의 그림자가 헛되다고는 하나 그 시원함은 얻을 수가 있음이요, 꾸는 꿈이 실답지 못하다고는 하나 그 속에서 기쁘고 슬프며 두려워하는 감정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선과 악을 짓는 그 사람의 실다운 자성은 없다고는 하나, 그 실답지 못한 가운데서 선과 악의 일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작은 선善이라 해서 짓지 않을 수가 있으며, 어찌 작은 악惡이라 해서 쉽게 지을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