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개정절(三箇程節)】
• 제일개정절第一箇程節 -[氣肅風淸하야 動靜境界 如秋天相似時가 是第一箇程節이니 便宜乘時進步이니라]
화두(話頭)를 자꾸 관조(觀照)해 나가며는 마음 경계가 고요해지고, 고요한 경지가 계속되며는 정(定)에 들게 돼. 딱 안정(安定)이 되어서 일어서거나 앉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 간에 일여(一如)해서 몸과 마음이 그 가볍고 맑기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는데 일체처(一切處)에 할려고 아니해도 되어진단 말이여.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화두가 의단(疑團)이 아주 독로(獨露)해서 공부가 처음과 끝이, 입선(入禪)을 하거나 방선(放禪)을 하거나 포행(布行)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고요하고 깨끗한 그 경지(境地) 그것이 조끔도 떠나지를 안 혀. 그래서 「나의 기분이 엄숙(嚴肅)하고 그 깨끗해서 움직이고 고요한 동정경계(動靜境界)에 마치 가을 하늘처럼, 깨끗하고 시원하게 툭 트인 가을하늘처럼 그런 경지가 되면 그것이 첫 번째 단계여 그것이. 공부해나가는 제일개정절(第一箇程節)이여. 」
• 제이개정절第二箇程節 -[ 如澄秋野水하며 如古廟裏香爐相似하야 寂寂惺惺하야 心路不行時에 亦不知有幻身이 在人間하고 但見箇話頭綿綿不絕하리니 到這裏하얀 塵將息而光將發하리니 是第二箇程節이니라 於斯에 若生知覺心하면 則斷純一之妙하리니 大害也이니라]
그러한 때가 오며는 그때를 놓치지 말고 그러한 때를 타서 계속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정진을 지어나가. 그러며는 「그 시원한 맑은 가을에 들물처럼, 농사 지으면 여름철에는 흙탕물이 모다 내려가고 틉틉 하다가 농사를 다 지어버리고 추수(秋收) 다해버리고 하며는 가을에 그 도랑물이란 게 기가 막히게 맑은 것이여. 또 고요하기는 무엇과 같으냐 하며는 옛 사당에 향로(香爐)처럼. 그 옛 사당에 향로가 사람도 드나들지도 아니하고, 그 놓아둔 향로가 무슨 동요(動搖)가 있을 것이냐 그 말이여. 고요하게 그러한 경지가 되는데 그럴 때에 적적성성(寂寂惺惺)하거든. 고요하고 깨끗하고 깨끗하면서 고요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적적성성(寂寂惺惺)해서 마음길이 끊어져. 이 생각 일어났다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나는 그런 마음길이 끊어진단 말이여.
그래가지고 이 몸뚱이가 이 지금 이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몰라. 그래가지고 다만 화두 하나만이 면면(綿綿)해서 끊어지지 아니한단 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그래가지고 그러한 경지가 도달(到達)하면 일체번뇌망상(一切煩惱妄想)이 끊을랴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번뇌망상이 다 끊어져버리고, 번뇌망상이 다 끊어지자 다만 그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된 그것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깨끗한 경지에 들어간다. 이것이 인자 둘째 번째 경계란 말이여. 여기에서 조끔도 거기에 알음알이를 일으키면 아니 되는 것이여. 무슨 다른 공안(公案)에 대해서 이리저리 따져본다든지, 무슨 ‘이런 디에서 내가 빨리 깨달았으면...’한 그러한 지각심(知覺心) 그런 것을 내서는 아니 돼. 그런 알음알이를 내며는 순일지묘(純一之妙)를 단절(斷切)해서 큰 해(害)가 있는 것이니까. 」
• 제삼개정절第三箇程節 -[無此過者는 動靜에 一如하고 寤寐에 惺惺하야 話頭가 現前호대 如透水月華하야 在灘浪中하야 活潑潑하야 觸하야도 不散하며 蕩하야도 不失時에 中寂不搖하며 外撼不動矣리니 是第三箇程節이니 疑團이 破하야 正眼開가 近矣리라]
「동정(動靜)이 일여(一如)하게. 잠을 잘 때나 잠을 깼을 때나, 섰을 때나 앉았을 때나, 동정이 일여하게 성성(惺惺)하게 잡도리를 해나가는 거여.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話頭)가 떠억 현전(現前)하는데, 마치 경지가 무엇과 같으냐하며는, 환하니 밝은 달이 맑은 물에 비추어서 그 잔잔한 파도 위에 달빛이 비추되 그 물결에 달이 그 활발하게 달빛이 논단 말이여. 놀되 흩어지지 아니하고 활발(活潑)해서 그 물을 통해서 저 밑에 그 달빛 그림자가 떠억 달이 비추는데, 흔들어도, 아무리 그 사람 주변에 복잡하고 시끄러워도 조금도 화두가 동요(動搖)함이 없고, 아무리 그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딴 생각을 할려고 해도 딴 생각이 일어나지를 아니하고 계속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잘 들리고 의단이 독로해서 조금도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단 말이지.
이렇게 해서 아침에부터서 낮, 낮에서 저녁, 저녁에 잘 때도 누워서도 들며는 누워서도 화두를 새로 들지 아니해도 환해. 화두를 드는 가운데 잠자도 잠 가운데서도 화두가 환해.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떠도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잘 때 들던 화두가 고대로 떠억 들어져 갖고 있는데, 안으로나 밖으로나 어떠한 주변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그렇게 맑게 들어져 가는 그것이 셋째 번째 단계다 그 말이여. 그러한 경지에 들어서며는 아무리 늦어도 7일이며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여. 그렇게 해서 의단(疑團)이 파(破)하고 의단이 파하면서 결국은 떠억 정안(正眼)이 열리는 것인데,」
• [忽然築着磕着에 啐地絕하며 爆地斷하야 洞明自己하야 捉敗佛祖의 得人憎處하야든 又宜見大宗匠하야 求煅煉하야 成大法器언정 不可得少爲足하리라. 悟後에 若不見人하면 未免不了後事하리니 其害非一이니라]
「정안(正眼)이 열릴 때에는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난다든지, 문이 털크덩! 문 여는 소리가 난다든지, 또는 걸어가다가 발을 삐끗한다든지, 그러한 경지에서 홀연(忽然)히 맷돌 맞듯 대쪽 맞듯. 맷돌을 씻어가지고 윗짝을 아래짝에다 맞출 때에 잘 안 맞거든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니까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하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하다보면 철크덕! 아래짝과 윗짝이 맞게 되듯이. 또 대쪽, 댓도롱을 쪼개가지고 맞출려고 이리저리 저리 잘 안 맞다가도 어쩌다 보며는 그냥 철크덩! 맞으며는 조금도 그 흠집이 없이 두 조각 대가 한 댓도롱으로 부합(附合)한 것처럼. 또 닭이 알을 품으며는 21일 간을 품으며는 병아리가 딱 깨어 나오는데, 벌써 20일쯤 되며는 완전히 속에서 병아리가 다 생기는 것이여. 그래가지고 21일이 되며는 병아리란 놈이 안에서 뚫고 나올려고 좃고 애미는 벌써 그 병아리가 속에서 다 된 것을 알고서 밖에서 좃고, 그래서 안과 밖에서 딱 그 동시(同時)에 좃아가지고 껍데기가 딱! 뚤리면서 병아리가 나오듯이, 이렇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며는 불조(佛祖)의 사람 미워한 곳을 착패(捉敗)하는 거여. 부처님과 조사(祖師)에게는 그 사람에게 사람 미움을 받은, ‘사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큰 허물이 하나가 있어. 화두를 타파해서 확철대오를 하게 되며는 부처님과 조사의 허물처를, 패궐처(敗闕處)를 갖다가 확연(確然)히 알게 되는 것이여. 그 불조의 허물을 알게 되면 반드시 대종장(大宗匠), 선지식을 찾아가서 자기가 화두를 타파(打破)한 그 경지(境地)를 가서 점검(點檢)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경지에서 선지식을 찾질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대로 지내가며는 반드시 그 사람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飜成毒藥)이라.’ 그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에 맛있는 음식인데, 그것을 관리를 잘 못함으로 해서 그것이 아주 독한 음식으로 변질(變質)이 되어버린 거여. 그 애를 써서 얻은 그 경지가 선지식을 만나서 점검을 받지 못함으로 해서 오히려 큰 외도(外道)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좋은 고비에 도달한 것을 살려나가지를 못하고 조그만큼 얻은 것으로써 만족(滿足)함을 삼아가지고 자기의 그 아주 큰 대도사(大度師)가 되어가지고 한량없는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할 수 있는 그러한 힘을 가진 사람이 결국은 아깝게도 중도에서 멈춰버리는 그러한 안타까움을 받게 되는 것이니,
반드시 공부, 진실(眞實)한 공부인(工夫人)은 처음에 공부를 시작할 때에도 바른 선지식(善知識)의 지도(指導)를 받아가지고 공부를 해야 하고, 공부해나가는 도중에도 항시 선지식을 의지해서 지도를 받아야 하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타파해가지고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에도 반드시 선지식의 점검(點檢)을 받아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나, 그것이 확철대오가 아니라 공부해나가는 중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시적(一時的)인 현상이냐,’ 이런 것에 대해서 분명히 점검(點檢)을 받고, 그것이 확철대오를 했으며는 깨달은 뒤에 공부, 오후보림(悟後保任)해나가는 공부에 대한 지시(指示)도 알뜰히 받아서 잘 해나가야만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다. 그래 자기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한량없는 중생(衆生)도 제도(濟度)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 송담선사 법문 세등 16번.
* 삼개정절(三箇程節) -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