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하는 사람이 일용중日用中에 점검點檢해야 할 중대한 도리道理】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네 가지 은혜(恩惠)가 깊고 두터운 것을 도리어 아느냐?」
‘네 가지 은혜’라 하는 것은 나라에 은혜, 부모(父母)에 은혜, 스승에 은혜, 시주(施主)에 은혜, 이렇게 네 가지 은혠데, 우리가 나라가 없다며는 이 몸을 어디에다가 의지해서 살 수가 있느냐? 대한민국 우리에 조국(祖國) 이 나라가 아니면 우리가 어디다가 이 몸을 의탁(依託)해서 살아갈 수가 있느냐? 만약에 우리가 북한이나 중공 같은 공산국가(共産國家)에 태어났으면 우리가 이러헌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참선헌다고 헐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다행히 대한민국(大韓民國)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나서 출가(出家)해가지고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허게 된 것이다 그 말이여.
나라에서 불교를 잘 보호를 해주시고 나라에서 우리가 도(道)를 닦을 수 있도록 모든 해결을 해주고 보호를 해주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도를 닦을 수가 있는 것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공산정책(共産政策)으로 불, 종교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이조(李朝) 때처럼 불교를 탄압하고 이러헌 국가에, 그러헌 시대에 태어났다며는 우리가 어떻게 마음 놓고 우리가 도를 닦을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 나라에 은혜가 깊고 두텁고 중(重)한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부모(父母)의 은혜(恩惠). 부모가 아니며는 우리 몸띵이가 어디서 태어났어. 우리가 우리의 부모 아니고 다른 부모라도, ‘나를 길른, 나를 낳아준 부모 그 무엇이 그렇게 중할 것이냐?’ 이리 생각헐는지 모르지마는, 설사 그 부모가 나를 어려서 버렸다 하더라도, 부모가 존경헐 수 없을만헌 그러헌 부모였다 할지라도, 그 부모가 아니면 이 몸띵이는 태어나지 못했어.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부모가 어려서 나를 버렸다고 해서 그 부모를 원망하고 어려서 나를 잘 가리켜주지 못했다 해서 그 부모를 원망하고, 나를 잘, 그 ‘부자로 돈 많이 있는 부모가 아니어서 나를 잘 키워서 결혼을 시키지도 못하고 나를 갖다가 절에다 던져부렀다. 그러니 그런 부모는 원수다.’ 이러헌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내가 가끔 만나서, 부모를 원망허는 사람을 내가 가끔 보는데 그건 아주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여.
가난했건, 부모가 무슨 몹쓸 병이 있건, 무식하건, 나를 매정하게 버리고 시집을 갔건,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따질 것이 없는 것이여. 무조건(無條件)하고 그 부모가 아니며는 이 몸띵이가 태어나지 못했고, 이 몸띵이가 태어나지 못했으면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도를 닦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父母)는 무조건 그 은혜(恩惠)가 중(重)한 것이여. 그러헌 좋은 부모가 되았건 나쁜 부모가 되았건 그 부모를 만날 수 밲에 없도록 내가 지어서 그 부모를 만난 것이기 때문에 부모 탓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고 다못 고마울 뿐인 것이여. 전생(前生)에 도(道)를 닦다가 그 부모를, 그러헌 부모를 만나야 내가 또 출가(出家)를 해서 도를 닦을 수 있기 때문에 전생에 나 자신의 원력(願力)에 의해서 그 부모를 만나게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떠헌 부모라도 우리는 그 은혜가 중한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 되고,
스승의 은혜(恩惠). 아무리 좋은 나라에 태어나고 나 부모를 만나서 내가 출가 했다하더라도 스승을 만나지 못했으며는, 못하며는 제가 아무리 중이 되고 싶어도 은사(恩師)스님을 만나지 못하며는 출가헐 수가 없는 것이여. 그 스승이 존경헐 만한 스승이건 존경할 수 없을 스승이건 간에 어떠헌 스승이라도 일단은 스승을 의지해야 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일단은 부모를 의지해야 이 몸을 받아나는 거와 똑같은 것이여. 그 스승이 어떠헌, 내 도 닦는 것을 방해를 허는 스승이라도 일단은 그 스승이 아니었으면 내가 출가할 수 없는 것이여. 그래서 출가시켜준 그 은혜는 나 이 몸띵이를 낳아준 부모의 은혜와 똑같은 것이여.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스승은 존경해야 되는 것이여. 은사(恩師)스님, 또 수계(授戒)스님, 나의 법을 가르켜 주는 법사(法師)스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나라에 은혜, 부모에 은혜, 스승에 은혜는 우리는 무조건 존경허고 그래야 그것이 참 수행인(修行人)이고,
넷째에 가서는 시주(施主)에 은혜(恩惠). 우리가 시주의 은혜가 아니며는 무엇을 입고 살며 무엇을 먹고 살며 어디에 이 몸을 의택할 주택이 있느냐 그 말이여. 어떤 사람은 ‘부모로부터서 돈을 얻어다 쓰고 부모로부터서 옷을 해다 입고 부모한테 약을 갖다먹으니까 나는 시주 빚 없다’고 이러헌 말을 허는 사람이 있는데, 일단 중이 되며는 친정도 시주(施主)여 내나. 친정어머니가 돈을 주건, 친정, 친가(親家)에 아버지가 돈을 주건, 자기의 오빠나 형제간이 돈을 준다 해서 쓴다하더라도, 내나 그분들도 중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에는 시주여. 우리가 먹고 입고 쓰고 허는 것이 전체 시주(施主) 것 아닌 것이 없는 거여. 어떤 이는 자기가 ‘탁발(托鉢)을 했으니까’, 또는 ‘부전(副殿)팔이를 했으니까 이건 시주 것이 아니다.’ 또는 ‘은사스님이 준 돈이기 때문에 시주것이 아니다.’ 이런 말 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시주 것이여. 시주 것 아닌 것이 없는 것이여. 그래서 시주의 은혜가 아니며는 우리는 하루도 이틀도 살 수가 없어. 먹고 입고 쓰는 것이 전판 시주 거여. 그래서 시주에 은혜가 아니며는 우리는 도를 닦을 수가 없어. 이렇게 도를 닦을 수 있는 것이 전부가 다 시주에 은혜여.
나라에 은혜, 부모에 은혜, 스승에 은혜, 그리고 시주에 은혜, 이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텁고 그리고 중한 줄을 잠시도 잊지 아니한 사람, 언제나 감사한 마음,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지낼 때 어찌 잠시도 해태(懈怠)할 수 있으며 찰나(刹那) 간인들 방일(放逸)할 수가 있는가.
「사대가, 사대(四大) 이 더러운 몸띵이가 생각 생각이 쇠퇴(衰退)해가지고 무너져간 것을 도리어 알겠느냐?」
‘사대’라고 허는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어머니의 피한방울과 아버지의 피한방울이 뭉쳐서 이 몸띵이가 되았는데 이 몸 안에 피는 물기운이고, 몸 안에 뼉다귀는 이것은 땅 기운이고 흙 기운이고, 몸이 뜨뜻한 그 기운은 불기운이고, 두 콧구멍으로 들락날락한 그것은 바람 기운이고, 해서 흙 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 기운 이런 것이, 이것이 네 가지의 큰 것인데, 이 사대 이 네 가지 기운으로 뭉친 이 몸띵이는 더러운 몸띵이, 추한 것이여. 왜 추하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과 그러헌 것이 가뜩 들은 가죽주머니에 지내지 못해. 그래가지고 아홉 구멍으로부터서 쉴 새 없이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말이여. 우리는 날마다 목욕을 하고 씻고 닦고 허지마는 쉴 새 없이 더러운 것은 팔만사천 모공(毛孔)은 말할 것도 없고 아홉 구멍으로부터서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며는 이 몸띵이 안에는 더러운 것으로 가뜩 차있다고 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어. 이 몸띵이가 하루만 안 씻어 보지. 얼마나 냄새가 날 것이며 자기 스스로 자기 몸띵이가 자기 냄새를 맡을 수 없을 만큼 더러운 냄새가 나는데, 그러헌 더러운 것이 잠시도 쉴 새 없이 늙어가고 있다.
지끔 이 몸띵이를 생각해보며는, 십 년(10년) 전, 이십 년(20년) 전의 자기 몸띵이를 생각해봐. 오늘 같지 않거든. 십 년 전, 이십 년 전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허리가 아프지도 않고 어깨가 아프지도 않고 주름, 이마에 주름살도 없고 눈이 이렇게 침침허지도 않고 몸이 이렇게 무겁지도 안했을 것이다 그 말이여. 해를 보며는 움직인 것 같지 않지마는 그늘을 땅에 그림에다가 선을 그려놓고 오 분(5분)만 있다 보란 말이여. 그림자가 벌써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가. 잠시도 가만있는... 있지 아니헌데 우리 눈에는 해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 시간을 보며는 초침이 똑딱 똑딱 똑딱 똑 초침이 지내가고 있는 걸 보며는 해도 그만큼 잠시 가만히 안 있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이 몸띵이가 생각 생각이 일 초 일초 늙어가고 있고 늙어가고 있다고 허는 것은 우리의 사행... 사형집행, 사형집행일(死刑執行日) 날짜가 그렇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렇게 생각 생각이 이 몸띵이가 늙어가고 있고 일초 일초 사형날짜가 다가오고 있다고 허는 사실을 명심(銘心)을 헌다면 어찌 방일하고 해태하고 시비 속을, 시비(是非)로 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느냐.
「사람 목숨이 한 호흡(呼吸) 사이에 있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에 나와가지고 이 몸띵이를 받아가지고 불조(佛祖)를, 부처님과 조사를 만나 뵈었느냐?」
「만나 뵈아가지고 무상법(無上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들어가지고 희유심(稀有心)을 냈느냐?」
희유심을 냈다고 허는 것은, 정말 마음으로 믿고 그 법문이 뼛속에 사무치지 않고서는 희유심(稀有心)이 날 수가 없는 것이여.
「승당(僧堂)을 여의지 아니하고 절개(節槪)를, 계행(戒行)을 잘 지켰느냐?」
「이웃과 젙에(곁에) 사람과 잡담,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
「니가 옳고 내가 옳고, 시비(是非)를 따지고 있지는 않느냐?」
「열 두 때 가운데에 화두(話頭)가 명명(明明)해서, 또록또록 해서 매(昧)하지 않느냐?」
「사람을 대해서 말할 때에 화두가 간단(間斷)없이 들리고 있느냐?」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할 때에 화두(話頭)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느냐.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엇을 깨닫거나 무엇을 알거나 견문각지시(見聞覺知時)에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느냐?」
「자기(自己)를 반관(返觀)해가지고 돌이켜 봐가지고 불조(佛祖)에 허물을 잡아 패(敗)했느냐?」
우리는 화두를 타파(打破)허게 되며는 나를 깨닫고 동시에 부처에 사람 미워헌 곳, 불조에 허물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금생(今生)에 결정코 불조에 혜명(慧命)을 이었느냐?」
내가 나를 깨달라야 그래야 부처님의 지혜목숨을 상속(相續)받는 것이여, 이어 받는 것이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중이 되았다고 해서 부처님에 지혜목숨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여. 반드시 자기를 깨닫고, 깨달라야만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 것이 되는 것이여.
「섰다 앉었다 한 이러헌 일상(日常), 이렇게 편할 때, 일어섰다 앉아섰다(앉았다) 아무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을 때에 도리어 지옥고(地獄苦)를 생각하느냐?」
하루하루를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고 하루하루를 재미스럽게 이렇게 살고 있을 때에 정말 지옥고가 무섭다고 허는 것을 생각허느냐? 인간(人間)에 육십 겁(60劫)이 지옥(地獄)에 하루여. 지옥에 있어서의 하루 동안의 시간이 인간에 있어서는 육십겁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지옥세계에 하루가 얼마나 길고 긴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지옥에 한 번 빠져 놓며는 불 훨훨 타는 불구뎅이에 들어가서 태와 죽이고, 돌 맷돌로 갈아서 죽이고, 칼로 썰고, 큰 돌로 납작허게 눌러서 죽이고, 펄펄 끓는 구루쇠 물을 입에 넣고, 칼로 된 산에다가 굴리고 끌고 다니고, 도대체 그 지옥에 괴로움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는 다 표현을 헐 수가 없는데 그 지옥세계에 하루의, 하루하루라고 허는 기간이 인간에 있어서의 육십 겁에 해당이 된다 그 말이여. 그러니 그 무서운 지옥에 고(苦) 받을 일을 생각해보면 이 인간세상에서 이 도 닦고 있는, 이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에, 그렇다고 허며는 어떻게 방일하고 해태헐 수가 있겠느냐.
「이 한 몸띵이로, 이 한 몸띵이로써 결정코 윤회(輪廻)를 벗겠느냐?」
「팔풍경계(八風境界)를 당해서 마음이 동(動)치 않느냐?」
팔풍경계라 하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 그런 역순경계(逆順境界). 내 마음에 맞는 일, 또 내 마음에 거, 거슬르는 일, 여러 가지 종류에 역순경계를 ‘팔풍경계’라고 해. 기쁜 일, 슬픈 일, 썽나는 일, 즐거운 일, 남이 나를 칭찬하고, 남이 나를 비방(誹謗)하고, 누가 나를 내 뜻에 순종(順從)해주거나 내 뜻을 사사건건(事事件件)히 어기거나, 역순경계, 한마디로 말하면, 그 역순경계를 당해서 마음이 동(動)하지 않느냐. 나를 잘한다고 칭찬해주며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내 뜻을 거슬르고 나에 험담(險談)을 하고 나에 의견에 반대를 허고 하며는 진심(瞋心)이 나가지고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참선 헌다고 앉았어도 계속 속에서 주먹 같은 놈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이런 게 모다 역순경계(逆順境界)를 당해서 마음이 동(動)하는 증상(症狀)이거든.
발심(發心)을 해서 이 몸띵이가 무상(無常)한 줄 알고, 네 가지 은혜(恩惠)가 중(重)한 줄 알고, 이 네 가지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추한 몸띵이가 생각 생각이 썩어 무너져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느끼고... 앞에 말한 쭈욱 그러헌 것을 참으로 깊이 느끼고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까짓 나를 칭찬했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좋아할 것이 있으며, 나에 뜻에 어긋나는 일을 당하고 누가 나를 쪼끔 험담헌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배창시(창자)로부터서 뒤집어지면서 속이 터질 까닭이 있느냐 그 말이여.
공자(孔子)님 말씀에도 “나를 칭찬헌 것을 좋아하고 나의 단점을 충고해주는 것을 싫어허는 사람허고는 절대로 친구를 허지 말아라.” 그러헌 사람은 끝끝내 소인(小人) 밲에는 되지 못하고 정말 바른 인격을 완성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칭찬허는 말은 황송하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나를 꾸짖어 주고 단점을 들어서 직접적으로 충고해준 사람, 참으로 그 사람을 고맙게 생각하고 스스로 반성헐 줄 아는 사람은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그 사람은 발전해가기 때문에 반드시 인격을 완성헐 날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칭찬헌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친구를 허지 말아라.” 또 고인(古人)이 말씀허기를, “나를 칭찬해준 사람은 도적놈이고 나의 단점을 들어서 충고해준 사람은 정말 은인(恩人)이라, 정말 훌륭한 스승이요 은인이다.” 이렇게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팔풍경계, 팔풍경계를 당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느냐?
「위에 말한, 쭈욱 말한 이 낱낱 이 조항들은 참선하는 사람이 일용중(日用中)에 일상생활(日常生活) 속에 점검(點檢)해야 할 중대한 도리(道理)니라.」
「고인이 이르기를, 이 몸을 금생(今生)을 향해서 제도(濟度)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을 제도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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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간절히 드는 가운데에 언제나 말했지마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해나가며는 더워도 더운 줄을 모르고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르고 배가 고파도 배가 고픈 줄을 모르고, 이 호흡조절(呼吸調節)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여. 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정신의 안정과 정신을 맑게 가지는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말을 들으니 여러분들은 요가(yoga)를 헌다고. 참 좋은 일이여. 요가는 ‘정신(精神)의 자유(自由)’, ‘육체(肉體)의 자유(自由)’를 위해서 이 요가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이여. 꼭 몸의 건강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精神)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허는 데에도 오히려 육체보다는 그쪽에 더 중대한 목적을 두는 것이여. 그래서 요가는 앉아서 누워서 엎드려서 백여 가지, 여러 가지 단련법(鍛鍊法)이 있지마는, 그러헌 가운데에 이 호흡, 호흡(呼吸)이 거기에 수반(隨伴)되아야 하고 정신(精神)의 통일(統一)이 거기에 수반이 되아야 진짜 요가지, ‘정신(精神)의 집중’과 ‘호흡(呼吸)의 조절’이 없이 몸띵이만 오므렸다 꼬부렸다 피었다 뒤집어졌다 거기에만 그쳐서는 그것은 껍데기 요가인 것이여. 진짜 요가는 정신의 집중과 호흡의, 호흡을 잘 조절해나감으로 해서 명실공(名實共)히 요가에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는 것이여.
- 송담선사 법문 세등 1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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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이 몸띵이를 금생(今生)에 제도(濟度)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제도할 것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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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자란, 늘 자신을 살피고 점검하는 사람.
[大抵參禪者는 還知四恩이 深厚麼아]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네 가지 은혜(恩惠)가 깊고 두터운 것을 도리어 아느냐?
[還知四大醜身이 念念衰朽麼]
사대가, 사대(四大) 이 더러운 몸띵이가 생각 생각이 쇠퇴(衰退)해가지고 무너져간 것을 도리어 알겠느냐?
[還知人命이 在呼吸麼아 生來値遇佛祖麼아]
사람 목숨이 한 호흡(呼吸) 사이에 있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해야 한다.
[生來値遇佛祖麼아]
이 세상에 나와가지고 이 몸뚱이를 받아가지고 불조(佛祖)를, 부처님과 조사를 만나 뵈었느냐?
[及聞無上法하고 生希有心麼아]
만나 뵈어가지고 무상법(無上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들어가지고 희유심(稀有心)을 냈느냐?
[不離僧堂하고 守節麼아]
승당(僧堂)을 여의지 아니하고 절개(節槪)를, 계행(戒行)을 잘 지켰느냐?
[不與隣單으로 雜話麼아]
이웃과, 곁에 사람과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
[切忌鼓扇是非麼아]
니가 옳고 내가 옳고, 시비(是非)를 따지고 있지는 않느냐?
[話頭가 十二時中에 明明不昧麼아]
열 두 때 가운데에 화두(話頭)가 명명(明明)해서, 또록또록 해서 매(昧)하지 않느냐?
[對人接話時에 無間斷麼아]
사람을 대해서 말할 때에 화두가 간단(間斷)없이 들리고 있느냐?
[見聞覺知時에 打成一片麼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할 때에 화두(話頭)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느냐?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엇을 깨닫거나 무엇을 알거나 견문각지시(見聞覺知時)에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느냐?
[返觀自己하야 捉敗佛祖麼아]
자기(自己)를 반관(返觀)해가지고, 돌이켜 봐가지고 불조(佛祖)에 허물을 잡아 패(敗)했느냐?
[今生에 決定續佛慧命麼아]
금생(今生)에 결정코 불조에 혜명(慧命)을 이었느냐?
[起坐便宜時에 還思地獄苦麼아]
섰다 앉었다 한 이러헌 일상(日常), 이렇게 편할 때, 일어섰다 앉았다 아무 불편 없이 잘 지내고 있을 때에 도리어 지옥고(地獄苦)를 생각하느냐?
[此一報身이 定脫輪㢠麼아]
이 한 몸뚱이로써 결정코 윤회(輪廻)를 벗겠느냐?
[當八風境하야 心不動麼아]
팔풍경계(八風境界)를 당해서 마음이 동(動)치 않느냐?
[此是參禪人의 日用中點檢底道理니]
위에 쭈욱 말한 이 낱낱 이 조항들은 참선하는 사람이 일용중(日用中)에 일상생활(日常生活) 속에 점검(點檢)해야 할 중대한 도리(道理)니라.
[古人云, 此身不向今生度하면 更待何生度此身고 하시니라]
고인이 이르기를, 이 몸을 금생(今生)을 향해서 제도(濟度)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을 제도할 것인가?
- 서산대사西山大師. [선가귀감禪家龜鑑 22.]
*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해나가서도 아니 되고, 너무 늘어져가지고 그래도 아니 되고, 「거문고줄 고르듯 해라.」 거문고 줄 고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 되게 세게 갖다가 당기며는 줄이 끊어지고 끊어지지 않더라도 소리가 제 소리가 안 나는 것이고, 결국은 되게 되기다보면 지가 끊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고, 좋은 곡(曲)을 타기도 전에 끊어져버리고 마는 것이고, 끊어질까 두려워해서 너무 느슨하게 매면 제 음가(音價)가 나오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덩 덩 덩 해가지고 너무 늘어져 쳐져가지고 무슨 소리가 날 것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도(道) 닦는 데에 이 거문고 타듯 해라.」
- 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을 得其中이니 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공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 하여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하니, 너무 애쓰면 병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미세하게 끊임없이 하여야 하느니라.
- [註解]
彈琴者曰, 緩急이 得中한 然後에야 清音이 普矣라 하니 工夫도 亦如此하야 急則動血囊하고 忘則入鬼窟이니 不徐不疾하야사 妙在其中이니라
거문고를 타는 자가 말하기를 「그 줄의 느슨하고 팽팽함이 알맞은 뒤라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가 고르지 못한 병이 나고, 잊어버리면 흐리멍덩하여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되면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 [선가귀감禪家龜鑑 18.]
* 上報四重恩。下濟三途苦。
위로는 사중四重의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삼도三途의 고통을 제도하여지이다.
- 사중은四重恩: 부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나라의 은혜, 중생의 은혜.
- 삼도고三途苦: 지옥, 아귀, 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