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呼吸之間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爲誰 누구를 위해서】
【聞我名者、나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산승이 항상 마음으로 애송(愛誦)하는 것은, 나옹(懶翁)스님의 십대발원문(十大發願文)에,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여시교화항사겁(如是敎化恒沙劫)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
이라고 허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들은 사람은 삼도(三途)의 고(苦)를 면(免)하고, 나의 얼굴을 본 사람은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여 지이다. 여시교화항사겁(如是敎化恒沙劫)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 이와 같이 교화(敎化)를 해가지고 필경(畢竟)에 부처와 중생이 없게 하여 지이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무슨 많은 말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그 나옹스님의 발원, 발원문(發願文)인, 인자 막 말씀드린 대로, ‘저의 얼굴을 여러분께 보여드림으로 해서 삼도고(三途苦)를 면하고, 저의 이름을 여러분이 들으심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여 지이다’ 하는 그러헌 마음으로 오늘 이 법상(法床)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하고,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하여 지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시교화항사겁(如是敎化恒沙劫)하야,
필경무불급중생(畢竟無佛及衆生)하여 지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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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呼吸之間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앞으로 여름 결제(結制) 때까지 석 달 동안을 어떠헌 마음으로 지내느냐, 하루하루를 어떻게 우리가 지내야하느냐? 결제동안에는 모다 스님네는 죽비(竹篦)를 치고 시간을 맞추어서 방선, 입선(入禪) 방선(放禪)을 하고 이렇게 지내지마는, 해제(解制)를 해서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흩어지면 인연(因緣)따라서 이 절도 가고 저 절도 가고 자기의 본사(本寺)로 돌아가기도 하고 모다 그렇, 또 토굴(土窟)에 가서 또 지내기도 하고 그러겠으나, 문제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석 달이 되고 하루하루가 모여서 일 년도 지내가지마는 그 하루라는 것을 분석을 해보면 결국은 하루가 이십사 시간(24시간)이지마는 일분 일분이 모여가지고 한 시간이 되고 일분은 일초 일초가 육십 개(60개)가 모이며는 일분이 되는데, 그 일초 일초를 어떻게 지내느냐가, 일분을 어떻게 잘 지내며 일초 일초를 어떻게 가다듬느냐에 따라서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내가느냐가 결정이 되고,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團束)을 하느냐가 결국은 하루를 어떻게 알뜰하게 지내느냐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 법문(法門)을 듣고 경(經)을 읽고 헌 것도 중요하고 계율(戒律)을 지키고 부지런히 일도 하고 또 보시(布施)도 하고 허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나, 팔만세행(八萬細行)이 결국은 우리의 한 생각을 어떠헌 마음, 어떻게 단속허느냐가... 에 따라서 팔만세행이 결정이 되는 거고, 결국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해나가느냐가 천당(天堂)에도 가고 지옥(地獄)에도 가고 인도환생(人道還生)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참선(參禪)이라고 허는 것은 그 한 생각을 화두일념(話頭一念)에다 집중을 해서 화두,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이 뭣고?’ 무자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을 거각(擧却)을 해가지고 그 의심이 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희미해지거나 딴 생각이 들어오며는 또 ‘이 뭣고?’ 그렇게 화두를 어떻게 단속해나가느냐가 한 생각을 단속하는 방법이며, 한 시간을 어떻게 지내냐가 그 화두를 어떻게 거각 허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무자화두(無字話頭)를 허신 분은, ‘무(無)?’ ‘어째서 무(無)?’ 앉아서도, 서서도, 걸어가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그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해나가는데, 가장 정말 정신 차려야 할 곳은 남이 자기에게 억울한 소리를 허거나 자기의, 자기에게 욕을 허거나 오장(五臟)을 뒤집은 그런 말을 허거나 그런 광경을 보았을 때 그때 그 듣는 데로 쫓아가지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그 사람은 제대로 정진(精進)을 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 오장이 뒤집어질 그 마음을 들은 그 찰나(刹那)에 그,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뭣고?’ ‘이 뭣고?’ 한 번 해도 잘 안되면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그밖에 오장이 뒤집어지지 아니헌 때에는 그냥 항상 심호흡(深呼吸)을 하면서 ‘이 뭣고?’ 이렇게 단속해나가서, 그렇게 항상 그렇게 해나가는 사람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어떠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바로 자기의 본참화두로 그런 것을 다 이겨나가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깨달음의 길로 돌아오기 때문에 역경계(逆境界)를 만나는 것이 자기를 꼭 해롭게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세속(世俗)에 사는 데에도 어려운 난경(難境), 어려운 일을 당함으로 해서 정말 자기의 인생, 참 인생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인가.’ 이 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이 여의치 못해가지고 대단히 어려운 경우를 만났을 때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았다.’고 그것을 미워허거나 그런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그런 경우를 만남으로 해서 자기로 돌아오는 것, 자기의 과거를 반성(反省)하고 앞으로 새로 나아갈 자기 길을 찾게 되니까, 어려운 일을 당한 것이 정말 자기를 참사람을 맨드는 거고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정신을 못 차린 사람은 좋은 일을 당해도 그걸로 인해서 자기의 바른 길을 놓치게 되고 역경을 만나면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신세한탄을 험으로 해서 가정에 불화(不和)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 웬수가 되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參禪)을 허는 사람은 어떠헌 경우를 당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망(亡)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로 돌아오고 바른 공부로 나아가기 때문에, 활구참선법, 정법,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그래서, 그래서 우주법계(宇宙法界)의 모든 법 가운데에 최고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산승은 사주(四柱)를 잘 보는 사람들이 나보고 말하기를, “여든 여섯(86)이 되면 죽을 수가 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백 프로(100%) 사주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각이 본래 「생사(生死)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호흡,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요 내생(來生)이거든. 나는 그것을 철저히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죽을는지 앞으로 한 시간 후에 죽을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마는, 그렇게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고 허는 말을 철저히 믿기 때문에 그렇게 믿음으로 해서 이 세상에 명예니, 권리니, 지위, 부귀니, 그런 데 생각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이러헌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확실히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고 허는 것을 철저히 믿기만 허면 그것이 무상(無常)을 깨닫는 거고 무상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여러 형제자매 도반여러분께 이 말씀을 간절히 당부(當付)를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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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誰、누구를 위해서】
백년부환수중구(百年浮幻水中漚)요
부지종일위수망(不知終日爲誰忙)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약지망리진소식(若知忙裏眞消息)하면
일타연화생불탕(一朶蓮花生沸湯)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백년부환수중구(百年浮幻水中漚)요.
백 년(100년)이라고, 인생 백 년이라 하는 것은 물 가운데서 솟아오른 물, 물거품 같은 것이다 그 말이거든.
부지종일위수망(不知終日爲誰忙)
그러거늘 종일토록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부지런허게 지내느냐?
약지망리진소식(若知忙裏眞消息)이면
만약 이 바쁜 가운데에도 참 소식(消息)을 알 것 같으면,
일타연화생불탕(一朶蓮花生沸湯)이다.
한 송이 연꽃이 펄펄 끓는 물속에서 떠억 솟아오른 거와 같다.
이 고인(古人)에 게송(偈頌)은, 우리가 항상 마음에 새기고 ‘이 바쁜 속에서도 어떻게 생각허는 것이 참 소식을 찾는 것이냐’ 하며는 ‘이 뭣고?’인 것입니다. 바쁜 가운데 바쁜 디에 끄달려가지고 정신없이 동서남북으로 설쳐대다가 하루재가 지내고, 또 꿈에도 꿈을 꾸다가 그 이튿날 또 일어나면 또 그 이튿날도 동서남북으로 바쁘게 직장에서 일하고 사업허는 데에 정신이 없는데, 그 가운데일 수록에 숨을 깊이 들어쉬었다가 수욱 내쉬면서 ‘이 뭣고?’ 꼭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죽비치고 앉어서만 참선(參禪)을 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을에서 살면서, 가정생활하면서도, 직장에서 일하면서, 차타고 가면서 오면서, 항상 ‘이 뭣고?’를 챙기고 자기 본참공안을 단속해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바쁜 속에서 참 소식을 찾는 길」이라고 허는 것을 명심(銘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 하루를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정말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가?’ 시간 있으면 한번 씩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벌이 수백 가지 하루 종일 꽃으로 꽃으로 돌아댕이면서 꿀을 빨아다가 벌통 집에다가 꿀을 쟁입니다(모읍니다). 그 꿀통이 가뜩 차도록 그 비가 오나 눈이... 바람이 부나 그 꿀을 따다가 벌통에다 채와 놓면 누가 그 꿀을 먹느냐 하며는 그 사람이 벌통을 열고 꿀을 다 따다가 먹는 것입니다. 벌은 사람이, 다 벌통 가득히 차 놓면 사람이 따다먹을 걸 모르고 꿀을 따다가 놓음으로 해서 눈이 오고 비가 오더라도 그걸 먹을라고 따다놓겠지마는, 그 벌이 그 죽음을 무릅쓰고 고생허면서 따다놓은 그 고통을 전혀 생각지 않고 사람들은 그 꿀통을 따먹고 맙니다. 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하고 돈 벌고 애쓰는 것이, 물론 그렇게 직장에도 충실히 하고 사업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야 아들, 딸, 손자, 또 학교도 보내고 유학도 보내고 또 인생을 살아가는데 요긴(要緊)허게 쓰게 되겠지만, 벌의 신세가 되아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아들, 딸, 손자, 손녀를 위하고 또 보시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 돈을 벌지마는 그 가운데에 ‘이 뭣고?’를 챙기지 않고 그것만 허면 결과적으로는 벌과 같은 그런 꼴을 당할 수밲에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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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하고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泉名在家)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망[감](不知辛苦爲誰忙[甘])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 갓으로 날아가 버렸는데 기러기가 놀다간 모래사장에는 그 발자취만 남아있고,
인거황천(人去黃泉)에 명재가(名在家)다.
사람은 일생을 살다가 팔십 년(80년)이면 팔십년, 백 년(100년)이면 백년, 이 온갖 고통 또는 희로애락, 흥망성쇠 속에서 살다가 이승을 하직(下直)허고 황천(黃泉)에 가면, 그 집에, 자기가 살던 집에 ‘이 집에 아무개가 살다갔다’ 그 이름만 그 집에 남는다 이것입니다.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백 가지 꽃에서 꿀을 따다가 놓으면,
부지신고위수망[감](不知辛苦爲誰忙[甘])이다.
‘벌이 고생을 헐, 어떻게 고생허면서 갖다 벌을, 꿀을 따왔는가’ 알지 못한 누구를 위해서 달게 허는 것인가?
다음 결제 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보기를 원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
- 송담선사 법문 74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