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능전득若能轉得]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명이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다.】
<無無明>
一切眾生 人人盡有無明 起多種種差別 百種煩惱。
常取六根 起十八界 心處六情 如鳥投網 造眾惡業 如蛾赴燈。
出殼入殼 展轉不覺 流浪經劫 皆因無明而起。
일체중생과 사람사람이 다만 무명無明이 있으므로해서 많은 갖가지 차별과 온갖 번뇌가 일어난다.
항상 육근六根을 취取하므로 십팔계十八界가 일어나는데, 마음이 육정六情에 처處함은 그물에 있는 새와 같고 온갖 악업을 지음은 나방이 등불을 향해 치닺는것과 같다.
껍질에 들고 나는것을 되풀이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한량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것은 모두가 무명無明으로 인因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因有無明 無明緣行 行緣識 識緣名色 名色緣六入 六入緣觸 觸緣受 受緣愛 愛緣取 取緣有 有緣生 生緣老死。
憂悲苦惱 皆由無明為始 於此忽然親見無明 降伏令死 死中更死 萬緣俱息。諸漏已(以)盡 永斷煩惱,根本既除 三毒自滅。一切眾生 不識無明 惡毒緣起 因被所累 曆劫受苦 忽然自覺 無明起處。朝打三千 暮打八百 直教大死一回 末後再甦(蘇) 欺君不得。
무명無明이 있음으로 인因해서 무명은 행行을 연緣하고, 행은 식識을 연緣하고, 식은 명색名色을 연緣하고, 명색은 육입六入을 연緣하고, 육입은 촉觸을 연緣하고, 촉은 수受를 연緣하며, 수는 애愛를 연緣하고, 애는 취取를 연緣하며, 취는 유有를 연緣하고, 유는 생生을 연緣하며 생은 노사老死를 연緣한다.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번뇌가 모두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것이니, 여기에서 홀연히 무명無明을 친히 보아(親見) 항복받아 죽게하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죽으면 온갖 연緣이 함께 쉬어지리라.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해서 번뇌는 영원히 끊어지고, 근본이 이미 없어졌으니 삼독三毒은 스스로 사라지느니라.
일체중생이 무명無明을 알지 못하고 악독惡毒한 연기緣起를 하며 더럽혀진 바를 입게되어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고통을 받게되니, 홀연히 무명無明이 일어나는 곳을 스스로를 깨달아 아침에 삼천번 치고 저녁에 팔백번을 쳐서, 곧 바로 크게 한번 죽음으로해서 한번 돌이켜 마지막에 다시 살아나게되면 아무도 그대를 속이지 못하리라.
一僧問投子 大死底(的)人,却(卻)活時如何。
投云 不許夜行 投明須到。於此直截根源 掃除心地 不見有身。身盡無明盡 塵垢盡除 萬劫塵沙之罪 一時頓消 輪轉生死 一時頓脫。
古云
【刹那滅却(卻)阿鼻業 了得萬法本來空。
如何是本來空。無明實性即佛性 幻化空身即法身。
法身覺了無一物 於此一一明得 轉凡成聖 轉無明作佛】
한 승僧이 투자스님께 묻기를, "크게 죽은 사람이 도리어 살아난 때는 어떻습니까?"
투자스님 이르시되, "밤에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밝음에 합치해서 모름지기 나아가느니라."
여기에서 바로 근원을 끊어버리고 마음 땅을 쓸어 없애면 몸이 있는것을 보지 못하리라.
몸이 다하고 무명이 다하여 티끌 먼지가 다해 없어지면 만겁의 먼지와 모래같이 많은 죄가 일시一時에 단박 사라져 생사에 윤회함을 일시一時에 몰록 벗어나게 되리라.
옛 사람이 이르시되,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이 멸하고 만법이 본래공本來空한줄 깨닫네. 어떤것이 이 본래공本來空한 것인가?
무명無明의 실다운 성품이 그대로 불성佛性이요,
환幻으로 이루어진 빈 몸(空身)이 그대로가 법신法身이니라.
법신法身을 깨달아 마처 無一物(한 물건도 없음)이니, 여기에서 하나 하나마다 낱낱이 明得(밝음을 얻어서)해서 범부를 바꾸어 성인을 이루고 무명을 바꾸어 부처를 짓게되리라(作佛).】
* 朝打三千 暮打八百: 아침에 삼천번 치고 저녁에 팔백번을 쳐서. - “三千功滿。八百行圓。吾來度子
삼천의 공功이 채워지고 팔백의 행行이 원만해(져서 돌이 금으로 변할 수 있으면) 다시 돌아와 그대를 제도하리라”고 종리권 선생이 여동빈에게 말한 대에서 유래.
<亦無無明盡>
有身即有無明 有無明即有三毒。因有三毒 起三惡業 三業昏暗 背覺合塵 不覺不知。若能轉三毒作三德 轉六根作六神通 於此一一轉得 轉凡成聖 凡夫即是聖人 聖人即是凡夫。
몸이 있은즉 무명無明이 있고 무명이 있은즉 삼독三毒이 있다.
삼독三毒이 있음으로 인해 삼악업三惡業이 일어나고, 삼업三業이 어두워서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에 합하여 아지 못함을 깨닫지 못한다.
만약 능히 삼독三毒을 전환해서 삼덕三德을 짓고 육근六根을 전환해서 육신통六神通을 지을 수 있다면 여기에서 하나 하나 전환해 얻으니 범부가 곧 이 성인이요 성인이 곧 이 범부이리라.
若轉不得 凡夫被物所轉 百姓日用而不知 終日忙忙 無本可據。
若能轉得 會萬物歸於自己 終日忙忙 那事無妨。終日喫(吃)飯 不曾咬破一粒米 終日著衣 不掛一縷絲。終日為 未嘗為。
만약 전환을 얻지 못했으면 범부는 물物에 굴려지는 바를 입어 백성은 매일 쓰면서도(日用) 알지 못하고 종일 바쁘기만해서 의지할 근본이 없으리라.
만약 능히 전환을 얻는다면 만물이 자기에게로 돌아감을 알아서 종일토록 바쁘더라도 어느 일에나 방해로움이 없다.
종일 밥을 먹되 일찍이 한 알갱이 쌀도 깨물지 아니하고 종일 옷을 입고있되 한 올의 실도 걸치지 아니한다.
종일 무언가를 하되 일찍이 한 바가 없다.
如此轉得 混融魔界 居塵不染塵 在欲而無欲。身心一如,內外無餘 須是打成一片 與空劫齊 形影不存 纖毫不立 體露堂堂。纔(才)有纖塵 遍界空生 即墮生死(界)。但去反觀自己 不見有身。我身既無 無明亦無。
이와같은 전환을 얻으면 마구니 세계와 섞이어 어울리고 티끌에 있으면서 티끌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욕欲에 있으면서 욕欲이 없다.
몸과 마음이 일여一如해서 안팎으로 남음이 없으니 모름지기 이것이 '쳐서 한 덩어리를 이룬 것'(打成一片)이라, 공겁空劫과 더불어 나란히 하며 형체와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고 가는 터럭도 세우지 못하니 체體가 드러나 떳떳하다.
가는 티끌이 조그만큼이라도 있으면 온 세계의 공생空生이 곧 생사生死로 떨어진다.
다만 자기自己를 돌이켜 살핀다면 몸 있는것을 보지 못하리라. 내 몸이 이미 없으니 무명 또한 없다.
經云 永斷無明 方成佛道 只這佛之一字 亦不可得 覓(覔)元字脚(腳) 亦不可得。
古云 無卓錐之地 喚作(做)了事底(的)人 喚作(做)無心道人。莫道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且道。隔那一重關。
會麽。
【一片白雲橫谷(穀)口,幾多歸鳥盡迷巢】
경에 이르시되, '무명無明을 영원히 끊어야 비로소 불도佛道를 이룬다.'
그러나 다못 이 '불佛'이라는 한 글자는 또한 가히 얻을 수 없으며 원자元字의 다리(元字脚: 글자의 원래 출처)를 찾는것 또한 얻을 수가 없다.
옛 사람이 이르시되, 송곳 꽂을 땅도 없음을 일 마친 사람(了事底人)이라 하고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한다.
그러나 무심無心을 일러 이 도道라 말하지 말라.
무심無心도 오히려 한 두꺼운 관문에 막혀있느니라.
일러 보아라.
막힌것은 어떤 하나의 두꺼운 관문(一重關)인고?
알겠는가?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 어귀에 가로 걸려있으매
얼마나 많은 돌아가는 새가 모두 둥지를 잃어버리는가】
* 무명無明을 모르면서, 다시 그 무명을 벗어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