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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역사(歷史)에 대해서】

이 뭣고? 2021. 2. 7. 17:04

【부처님 출생과, 고행정진 하셔서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최상승법이 우리에게까지 미치게 된 역사에 대해서】

 

 

 

법왕권실영쌍행(法王權實令雙行)하니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한디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법왕권실(法王權實)이 영쌍행(令雙行)하니,

우리 부처님이신 대법왕(大法王)의 권(權)과 실(實), 권법(權法)과 그 실법(實法)이 쌍(雙)으로 행(行)해지니,

 

 

뇌권풍치해악경(雷捲風馳海岳傾)이다.

우레가 치고 바람이 냅대 불어재끼니 바다가, 바다와 산이 기울어져. 바다와 산이 뛰우뚱거린다 그 말이여.

 

 

벽력일성운산진(霹靂一聲雲散盡)하니,

벽력(霹靂) 한소리에 구름이 다 흩쳐져버... 흩어져버리니

 

 

도가원불섭도정(到家元不涉途程)이다.

고향, 고향에 이르르니 원래(元來)로 길을 건너지 안했더라. 

 

고향에 그 다겁생(多劫生)을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허다가 이 확철, 그 고행(苦行) 난행(難行)을 겪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마음의 고향에 돌아와 보니 원래로 한걸음도 옮긴바가 없더라. 깨닫기 전에는 고향을 떠나서 타향살이를 허면서 갖인 고통을 겪으면서 유랑(流浪)을 헌 걸로 생각을 했어. 그래서 고향에 돌아오기 위해서 무척 고생을 하고, 그러다가 고향에 떠억 돌아와 보니 원래 고향을 한 걸음도 떠난 바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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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진년(戊辰年) 납월 팔 일(臘月, 음력 12월) (8일), 금년(今年)이 이천오백삼십이 년(2532년)이고 새해는 이천오백삼십삼 년(2533년)인데, 이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 해를 원련(元年)으로 잡어서 따진 것이고, 거기다 부처님께서 팔십 세(80세)에 열반허셨으니까 칠십구 세(79세)를 보태며는 이천육백십이 년(2612년)이 되고 부처님이 탄생(誕生)허신제(때)가 이천오백 십이 년(2512년)이 됩니다. 근데, 부처님께서는 인도(印度) 가비라왕국(迦毘羅王國), -지끔에 네팔국(Nepal國)에 해당이 됩니다마는- 그 가비라왕궁(迦毘羅王宮)에서 정반왕(淨飯王), 아버님은 정반왕이시고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여. 그 정반왕과 마야부인을 부모로 해서 구담(瞿曇) 싯달타(Siddhārtha, 悉達), 고따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 라고 허는 이름으로 그 왕궁(王宮)에 태자(太子)로 태어나셨습니다.

 

그 태자로 태어나가지고 어려서, 태어나자마자 육 일(6일) 만에 어머니이신 마야부인(摩耶夫人)은 돌아가시고, 그 이모이신 대애도(大愛道)께서 계모(繼母)로 들어오셔서 그 싯다르타, 싯달태자(悉達太子)를 잘 양육(養育)을 허셨어. 그래가지고 십구 세(19세)에 출가(出家)허실 때까지 인도에 구십육 종(96종) 철학(哲學)을 다 통달(通達)하시고, 그런 학문뿐만이 아니라 온갖 무예(武藝)까지도 다 통달을 허셨어. 그리고 야수다라(耶輸多羅)라고 허는 그 아름다운 미인(美人)을 아내로 맞이해가지고 나후라(羅睺羅)라고 허는 귀여운 아들까지 낳으셨습니다.

 

그러나 싯달태자는 왕궁의 부귀와 예쁜 아내와 귀여운 그 나후라라고 허는 아들 그러헌 것에 애착(愛著)이 없고, 항상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어떻게 했으며는 이 생사(生死) 없는 영원(永遠)한 것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 그러헌 간절한 생각이 마음속에 항상 있었는데, 마치 동서남북 사대문(四大門)을 유관(遊觀)을 허셨어. 그러다가 거기에서 여러 광경(光景)을 보시고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달으시고서 결국은 출가(出家)해서 도(道)를 닦을 것을 결심을 허셔서, 십구 세(19세)에 왕궁을, 성(城)을 넘어서 설산(雪山)으로 들어가셔가지고 십이 년(12년) 동안 수행(修行) 끝에 삼십 세(30세)에 성도(成道)를 하셨습니다. -또 어떠헌 경전에는 이십구 세(29세)에 출가(出家)해가지고 육 년(6년) 동안 고행(苦行)을 허셔가지고 삼십오 세(35세)에 성도(成道)허셨다고 씌여 있는 경전도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팔십 세(80세)에 열반(涅槃)하셨다고 허는 것은 여러 경전이 다 공통적이라고 합니다.- 

 

십구 세에 출가해가지고 십이 년간을 수행(修行)허셨는데, 처음 육년간은 그때 인도에 널리 이름이 난 그 아라다카라마(Arada-kalama) 선인과 우드라가라마푸트라(Udraka-Ramaputra) 선인, 이 두 선인(仙人)으로부터 유(무)소유처(無所有處), 또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이런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이 본래(本來) 다 공(空)한 도리(道理)에 계합(契合)을 허는 그러헌 수행을 그 신선(神仙) 밑에서 닦았습니다. 그 스승으로부터 쾌히 인가(印可)를 받았으나 부처님 자신이 생각헐 때 ‘절대로 이것이 아니다. 이것이 구경(究竟)의 해탈법(解脫法)이 아니다.’ 이렇게 거기서 만족을 느끼시지를 못하고, 그렇게 스승이 간절히 붙잡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버리고서 거기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두 선인(仙人)의 스승 밑에서 깨달은 도리가 결국은 능소(能所)를 초월(超越)하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해서 결국 극진처(極盡處)에 들어가면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거여. 멸진정에 들어가서, 들어갔으나 ‘그것이 최고에 해탈법이 아니다’ 한 것을 부처님은 그것을 아시고서 그 스승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고행림(苦行林)에 들어가가지고 정말 육 년간을 하루에 삼씨 한 알과 보리, 보리알 한 알갱이를 잡숫고서 육 년간을 무서운 고행(苦行)을 허셨어. 삼씨 하나와 보리 알갱이 하나라도, 그걸 잡순 것은 거의 단식(斷食)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단식을 허면서, 그 단식고행(斷食苦行)이라고 헐 수가 있는데, 그 삼씨하나 보리알 하나 그 두 개를 잡숫고 육 년간을 지냈으니, 여러분이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서 보신바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했어. 눈어둑도 툭 꺼져버리고, 얼굴에 살도 쫙 다 빠져버리고, 가슴에 뼈와 사지가 완전히 해골만 남았어. 정말 해골이, 해골이 다 되다시피 그렇게 되고 얼굴빛은 하~ 잿빛과 같이 되았어. 그렇게 무서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스스로 깨달음을, 정각(正覺)을 얻지를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고행을, 고행림을 떠나서 ‘전정각산(前正覺山)이다, 정각을 이루기전에 산이다.’ 해서 전정각산에 들어가서 거기다가 자리를 잡고 거기서 마지막 깨달음, ‘참 깨달음에 이르리라’ 하고 딱 가서 자리를 잡으니까 산이 막 진동(振動)을 하고 산이 막 울어. 그래서 산이 울고 진동을 해서 도저히 거기서 수행을 계속 헐 수가 없어서 그 전정각산을 떠날랴고 일어서니까... , 그런데 그렇게 그 ‘여기서는 도저히 안 되겄다’ 하고 생각을 허시자 하늘에서 그 소리가 나. -그 인자 경전에는 ‘정목선인’이라 그러는데- “이곳은 최후(最後)에 수행(修行)허는데 적합한 곳이 아니니, 이 산을 떠나서 저 산 기슭에 그 마을로 가라.”고 허는 공청(空聽)이 있었어. 

 

그래서 거기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일어서니까, 용(龍)이, 그 산중(山中)에 오랫동안 업(業)을 지어서 용이, –그 지금 용이라고 허지마는 일종에 이무기 같은 그런 구렁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그 용이 그 수 오랜 세월을 두고 그 거기에 있는 용이 나타나서 부처님께 간청(懇請)을 했습니다. “이곳에 부처님께서 반드시 도(道)를 이루시면 그 공덕(功德)으로 나는 이 구렁이의 탈을 벗고 승천(昇天)을 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부처님께서 이곳을, 이곳에서 도를 이루시지 않고 떠나실 수가 있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이곳이 수행허시기에 적합(適合)허지 못하면 이 굴속에 들어오셔서 잠깐만 앉어서 그 그림자만 남겨주시고 가셔도 저는 좋겠습니다.”하고 어떻게 간절히 말허던지, 부처님께서는 그 자비심(慈悲心)으로 그 굴속에 들어가서 잠시 앉었다가 나가셨습니다. 

 

그 굴 이름이 ‘유영굴(留影窟)이다, 그림자를 머무른 굴이다’ 해서 유영굴이라고 지금 경전에 있는데, 그 유영굴을 사 세기(4세기)에 중국(中國)에 법현(法顯)이라고 허는 큰스님이 그 인도를 가가지고 과연 그 굴속에 그 부처님의 그림자를 봤다고 전해내려 옵니다. -그런데 칠 세기(7세기)경에 현장법사(玄奘法師)가 인도에 가가지고 그 유영굴에 가보니까 현장법사는 인연이 없어서 그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고 전해옵니다마는-, 그 유영굴에 잠시 앉었다가 거기서 떠나가지고 결국은 마갈타국(摩竭陀國)을 두루 다니시면서 어느 곳이 제일 좋은가 하고 찾은 결과 범지촌(梵志村), -‘범지(梵志)’라고 허는 것은 ‘바라문(婆羅門)’을 말한 것인데- 바라문들이 살고 있는 그 범지촌 우루벨라(Uruvela) 부락(部落)에다가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 우루벨라 부락에 필발라(畢鉢羅, pippala)라고 허는 큰 나무, 정자나무가 있는데 그 필발라수(畢鉢羅樹) 밑에다가 자리를 딱 펴고서 거기서 금강좌를, 금강, 그 자리를 ‘금강좌(金剛座)’라 그러는데, 거기에서 아주 최후(最後)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자리로 결정을 허시고 거기서 딱 이렇게 정진(精進) 허시는데, 그때에 그 수자타(Sujata)라고 허는 그 바라문에 딸이, 장자(長者)에 딸이 유미죽(乳米粥)을 갖다가 부처님께 바치셨어.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 이련선하(尼連禪河))에 목욕(沐浴)을 터억 허시고서 새로운 정, 기분을 가지고 떡 앉어 계시는데, 그 수자타가 바치는 유미죽을 받아 잡숫고 헌데, 

 

-그 유미죽(乳米粥)이라고 허는 게 무엇이냐? 그것은 우유(牛乳)와 곡식(穀食)을 합해서 쑨 죽인데, 그 우유는 보통 죽이 아니고 육백 마리(600마리)의 소, 소에게 그 비니초(肥膩草)라고 허는 아주 그 설산(雪山)에 좋은 풀을 맥여, 약초(藥草)를 맥여가지고 그 육백 마리의 소로부터 얻은 우유를 다시 또 다른 삼백 마리(300마리)의 또 소에다 맥이고, 그 삼백 마리가 그 육백 마리로 부터서 짠 젖을 먹고 거기서 나온 젖을 다시 백오십 마리(150마리)의 좋은 소에다가 또 그 우유를 맥이고, 또 거기서 나오는 젖을 가지고 또 육십 마리(60마리)의 소에다 맥이고, 또 육십 마리의 소에서 나온 우유를 삼십 마리(30마리)의 소에다가 맥여가지고, 그 삼십 마리의 소에서 얻은 우유(牛乳)를 정제(精製)를 해가지고 그 헌, 얻은 것이 바로 제호(醍醐)라고 허는 아주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고 향내도 좋고 허는, 인도(印度)에 모든 음식가운데 최고에 음식(飮食)이면서 최고에 약(藥)인 것입니다. 그 제호에다가 아주 택미(擇米)를 잘한 좋은 양질(良質)에 쌀을 넣어서 쑨 우유가 바로 수자타가 부... 실달태자(悉達太子)에게 바친 유미죽(乳米粥)인 것입니다.-

 

 그 젖을 받아 잡숫고서 새로운 정신(精神)을 차려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필발라수(畢鉢羅樹) 밑에서 터억 정진(精進)을 허신 것입니다. 그 나무 밑에서 얼마동안을 정진허셨냐 하며는 수무하루(스무하루, 21일)동안을 정진을 허셨는데, 그 수무하루동안에 그 공부허는 것이 공포(恐怖)와 유혹(誘惑)의 갈등(葛藤) 속에서 수무하루를 지내신 것입니다. 어째서 공포와 유혹의 갈등 속에서 그렇게 지내실 수... 지내셨느냐 하며는, 머지안해서 성불(成佛)을 허시게 되니까, 마왕파순(魔王波旬)이가 갖인 방법으로 부처님의 정신을 아주 뇌란(惱亂)케 헌 것입니다. 부처님이 한 분이 태어나며는 마왕(魔王), 마왕, 팔만사천(八萬四千) 마왕 마군(魔軍)이들이 설 땅이 없어져. 왕궁(王宮)이 흔들리고 자신들이 견딜 수가 없으니까 어쨌든지 성불을 못하게 허기 위해서 갖인 방편으로 방해(妨害)를 친 것입니다. 

 

그 방법 가운데는, 처음에는 천하 없이도 아주... 아무리 실달태자라고 헌들 미인한테는 견딜 수가 없으시다 해가지고 미인계(美人計)를 썼어. 그 마왕에 권속(眷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갖다가 보내가지고 갖인 아양을 떨고 교태(嬌態)를 부리면서 유혹을 헐랴고 했으나 부처님은 까딱도 안하셔. 허다 허다 못허니까, 다음에는 총과 창을 가지고 막 던졌지마는 그 총과 창이 부처님을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다 경전에 보면 그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재미있게 모다 그 상황이 설명이 되아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팔상록(八相錄)]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 끝에 결국은 그러헌 갖인 유혹과 공포를 갖다가 부처님은 정진력(精進力)으로 극복을 하시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는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그 과정을,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다.’ 처음에 모든 것은 무상하단 것을 깨닫고 발심(發心)을 해서 출가(出家)해가지고 그 무서운 고행(苦行)을 거쳐서 결국은 ‘제법(諸行)이 무아(無我)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아(我)가 없다, 실체가 없다고 허는 도리를 깨닫고, 마지막에 가서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경지에 도달하신 것입니다. 그 이십일 일(21일) 동안 그 무서운 공포와 유혹의 나날을 극복하신 다음에 마지막 수무하루 만(滿) 아침이 바로 임오년(壬午年) 납월팔일(臘月八日)입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 ‘그 해가 갑인년 인가, 무슨 해든가’ 그렇게 잊어버리셨던 대목이 나오는데, 이 경전에는 임오년(壬午年) 십이월(12월) 팔일(8일), 임오년, 임오년입니다. 그 임오년 십일(이)월(12월) 팔일에, 그것이 그 전야(前夜), 그 전날에 결국은 ‘처음 초저녁에는 사선정(四禪定)을 얻으시고, 또 밤중에, 중야(中夜)에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을 얻으시고, 그 마지막 새벽 동틀 녘에는 사제법(四諦法)과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과 팔정도(八正道)를 깨달으셨다.’ 이렇게 경전에는 쓰여 있습니다. 

 

장야, 무명장야(無明長夜). 그 무명의 장야를 거쳐서 그 마군(魔軍)이의 유혹과 공포와 그러헌 갈등, 이런 것이 ‘실지(實地)로 우리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마군이가 있었던가’ 그것은 학자에 따라서는 ‘부처님이 성불허시기 전에 그 부처님의 정신내부(精神內部)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갈등(葛藤)을 팔만사천 마군(魔軍)이가 그렇게 들어와서 그렇게 했다고 인도의 그 설화에 비유로서 그렇게 표현을 헌 것이 아니냐’ 하는 학자들의 말씀도 있습니다마는, 어쨌든지 간에 유형(有形)이건 무형(無形)이건, 또 밖에서 팔만사천의 마군이가 쳐들어왔건 또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신적인 갈등이건, 그것은 내나 ‘안팎이 본래 같은 것’입니다. 

 

내 마음이 있으므로 해서 밖에 모든 경계(境界)가 결국은 나에 와서 다 닿는 거고, 또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내 마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바로 밖에 세계나 내 마... 안에 마음의 세계가 본래 둘이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 참선(參禪)허는 사람은 생사(生死)도 우리의 일념(一念) 속에 들어있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도 바로 우리의 일념(一念)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래서 일념단속(一念團束)을 함으로써 팔만사천의 마군이도 항복(降伏)받을 수가 있고, 일념을 단속함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도 거기에 있고, 일념을 단속함으로써 무량중생(無量衆生)을 제도(濟度)하는 도리(道理)도 그 속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실달태자께서는 무명장... 장야로부터, 그 무명의 긴 그 어둡고 괴로운 그 밤. 그것이 어찌 그 스무하루 째 밤만을 가리키겠습니까? 무량겁(無量劫)이 바로 무명장야(無明長夜)인 것입니다. 무명에 긴 어둡고 괴로운 밤을 거쳐서 그놈을 항복, 극복을 해가지고 결국은 사선정(四禪定)과 삼명육통(三明六通)과... 육통을 차례로 깨닫고 마지막에 샛별, 동천(東天)하늘에 번쩍거리는 샛별을 보시고서 사제(四諦)와 십이인연(十二因緣)과 팔정도(八正道)를 깨달랐다.’ 경전에 이렇게 되아있다 그 말이여. 그러나 이것은 유언설적(有言說的) 교(敎)에 있어서 중생(衆生)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부득이 그러헌 표현을 쓸 수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깨달은 그 진리(眞理)는 무슨 언설(言說)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여. 언설로 표현헐 수 있는 것이라면 어찌 그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참 이치는 언설로써 표현헐 수가 없어. 따라서 우리가 팔만사천에 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한 자(字)도 놓치지 않고 다 읽어본다 하더라도, 읽고 외우고 해석헌다 하더라도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참 진리는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로써 표현하고 글씨로써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 진리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도, 최상승법, 그 조사관(祖師關)을 뚧어야 한다. 조사관은 언어 문자로 깨달을 수가 없는 것이고, 사량분별로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언설적(無言說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벌써 최상승법이라 해도 벌써 언어(言語)지만- 

 

판치생모(板齒生毛).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묻는데 대해서 조주(趙州)스님은,

 

‘판치생모니다, 판치(板齒)에 털이 났느니라’ 

 

이것이 바로 공안(公案)인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론과 사량분별을 쓰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맥힌 의심, 의심관(疑心觀), 의관(疑觀)으로써 이걸 참구(參究)해나가면, 그 의심이 더 이상 간절헐 수가 없고 더 이상 깊고 커질 수가 없어. 그래가지고 결국은 그 의단(疑團)이 툭! 터짐으로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허는건데, 

 

아까 부처님께서, 싯달태자가 설산에 들어가가지고 그 두 신선(神仙)으로부터 받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이것이 바로 주관과 객관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래가지고 그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 이 최상승법에 의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나가면, 망상(妄想)을 없앨랴고 안 해도 그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고, 이 몸띵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시간이 흘러가는것도 잊어버리고, 그 수백 명, 수천 명이 우글거리는 그 시끄러운 시장바닥에 있어도 한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그래가지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아서 그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지에 들어가면, 우리가 무슨 사선정(四禪定)을 닦지 안 해도, 또는 뭐 비상비비... 비비상천의 그러헌 수행을 특별히 일부러 쌓지 아니해도 활구참선을 해나가는데 자연히 그런 경계를 지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헌 경지가 왔을 때 너무도 고요하고 너무도 깨끗하고 너무도, 너무나 맑고 너무나 편안허기 때문에,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공부를 해나가는 사람은 그러헌 경지에 떨어져버리기가 십상팔구(十常八九)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께서는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헌 경지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것이 구경(究竟)에 해탈법(解脫法)이 아니란 것을 스스로 알으시고서 그 스승을 버리신 데에 참 우리 부처님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을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납월 팔일에 정말 생사 없는 도리를 요달(了達)을 허시고서 자수용법락(自受用法樂), 그 법에 즐거움을 스스로 수용하는 자수법락(自受法樂), 그 깨달은 그 경지에 터억 그 잠겨 계시는 것입니다. 그 자수법락의 경지에서 칠 일(7일)간, 또는 경전에 따라서는 삼십오 일(35일)간, 오칠(5x7)은 삼십오(35), 삼십오 일(35일)간을 그 자수용법락의 경지에서 터억 계셨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헌 미묘(微妙)한 법(法)을 다른 사람한테, 다른 사람한테 설(說)해준들 누가 이것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시고, 또 그때 마군(魔軍)이가 나와서 “그러헌 법을 중생들한테 설해봤자 아무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 그 법을 즐기시다가 가십시오. 설해봤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뭐 하러 수고롭게 설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왜 그 마군이가 그러헌 청(請)을 했느냐허며는, 자꾸 그 정법(正法)을 설(說)해가지고, 해탈법을 설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허면 점점 이 마군이가 설 땅이 없어지니까 어쨌든지 교화(敎化)를 못허시게 허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경전에는 그렇게 되아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부처님 스스로 생각허시기를, ‘이러헌 미묘하고도 이... 이런 법을 내가 설해봤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차라리 설허... 설... 설허지 말고 스스로 이 법을 즐기기... 즐기고 말 것인가.’ 이렇게 스스로 이렇게 생각허신 것을 마군이를 등장을 시켜서 그런 표현을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그러헌 생각에 잠겨계실 때에 저 범천(梵天)에서 부처님께 권청(勸請)을 하신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도 방편법(方便法)을 설해서 중생(衆生)의 근기(根機)에 맞추어서 차츰차츰 이 방편(方便)을 설해셔 나가며는 인연(因緣)있는 중생들이 그 방편법에 의해서 차츰차츰 근기(根機)가 성숙(成熟)헌 다음에 마지막에 가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說)하신다며는 부처님의 그 정법(正法)을 널리 펴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권청을 해가지고, 부처님께서는 그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서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가장 당신과 인연이 깊었던 교진여등(憍陳如等) 다섯 비... 사람에게 이 사제법(四諦法)을 설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케 허셨다고 이렇게 경전(經典)에 씌어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도(道)를 이루신 마갈타국(摩竭陀國) 붓다가야(Buddha–Gayā), 이 붓다가야에서 녹야원까지, -녹야원을 인도(印度)에 말로는 베나레스(Benares, Varanasi)라고 그럽니다마는- 그 녹야원까지 삼백이십 키로(320km)면 우리나라 이수(里數)로는 팔백리(八百里) 길입니다. 팔백리(800리)길을 걸어가셔서 결국은 그 당신과 같이 그 고행(苦行)하던 그 교진녀등 다섯 비구에게 법(法)을 설(說)하셔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허게 했다’ 이렇게 전해, 경전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불법은 자기 혼자만 깨닫고 마는 것이 아니여. 자기 혼자만 깨달라가지고 그 열반락(涅槃樂) 속에 잠겨있는 것으로써 그치지 아니하고, 그 깨달은 바를 일체중생(一切衆生)들에게 널리 펴서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불도(佛道)를 이루는,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허는 그러헌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겸해서 행하는 도리(道理)인 것입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혼자만 깨닫고서 말으셨다면 인도에 그러헌 성인(聖人)이 있었다고 허는 사실이 오늘날까지 전해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역사적으로 전해졌다고 헌들 우리 중생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왕궁(王宮)에 부귀(富貴)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출가(出家)허셔서 그 무서운 고행(苦行)을 허셔가지고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얻으신 그 깨달음을, 그 깨닫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들, 그리고 당신을 하루도 잊지 않고 있는 정반왕(淨飯王) 부왕(父王)과 그 대애도(大愛道, 摩耶夫人) 그런 것을 생각헌다며는 그길로 쫓아가서 왕궁의 부귀 속에 일생을 보낼 수도 있고, 다시 왕위를 이어받아서 자기가 왕이 되아가지고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서 인도를 평화적(平和的)으로 통일(統一)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마는, 부처님은 그런 일신(一身)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생각지 아니하시고 계속해서 그 넓은 인도 천지를 유행(遊行)하시면서 그 끝없는 설법교화(說法敎化)로써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허셨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탄생(誕生)허시기 전에 인도에는 기원전(紀元前) 십오 세기(15세기) 이전부터 그 아리안(Aryan) 민족(民族)들이 인도(印度)를 침범(侵犯)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인도교(印度敎), -바라문교(婆羅門敎), 힌두교(Hindu敎)- 로 널리 퍼져있었는데, 부처님이 나오셔서 이 불법(佛法)을 펴심으로 해서 그 바라문교를 믿던 많은 사람들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계속해서 이 불법이 그렇게 번창해나가고 그러자, 그 바라문들은 굉장히 시기질투를 해가지고 ‘어떻게 허며는 자기네 교도(敎徒)들을 불교에 빼앗기지 아니헐까.’ 그래가지고 결국은 목련존자(目連尊者)를 갖다가 살해(殺害)하고 그런 일도 있었고, 

 

또 오백년, 겨우 오백년(500년)을 지내지 못해가지고 결국은 불교가 많은 피해를, 핍박(逼迫)을 받았습니다. 그래가지고 사찰도 다, 사찰과 탑이 다 파괴가 되고 경전도 다 불사지르고, 또 스님네들도 다 참사(慘死)를 시키고 해서 그 스님네들이 동남아(東南亞) 동북아(東北亞)로 모다 피신(避身)을 해가지고 결국은 버마(Burma, Myanmar)라든지 태국(泰國)이라든지 모다 그 중국(中國) 한국(韓國) 일본(日本)으로 이렇게 해서 외국으로 다른 나라로 이렇게 퍼져 나왔고 인도본토자체는 아주 자최가 없이 흔적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흙에다 다 묻어버리고. 그 뒤로 그 근세(近世)에 와서 모다 그런 유적(遺跡)이 발굴(發掘)이 되기는 했습니다마는, 그렇게 무서운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뒤 참 삼철련(3000년). 그 불법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오늘날 한국에까지 남아있고, 일본을 거쳐서 세계 각국에 모다 펴져가지고 서양 사람들까지 이 참선(參禪)을 믿고 모다 실천을 허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까 부처님... 조실스님께서 참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이다’ 그런 말씀을 허셨습니다마는, ‘자기가 지은 그, 지은 죄업(罪業)을 피할 수가 없다.’ 부처님의 삼불능(三不能)이 있는데, 그 첫째가 ‘정법은 난면이다.’ 둘째는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헐 수가 없다.’ 셋째는 ‘중생계(衆生界)를 다할 수가 없다, 한 중생도 없이 완전히 다 해탈도를 증득헐 수 있도록 그렇게 허기는 어렵다’ 그거거든. 그 첫 번째 ‘정업은 난면이라’하는 게, ‘자기가 지은 죄(罪)는 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불법에는 참회법(懺悔法)이라 하는 것이 있어가지고 정말 간절(懇切)하고도 진실(眞實)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를 허면, 참회를 허고서 그 자기가 지은 죄를 보상헐 만큼, 그 이상의 선업을 쌓아. 선업공덕(善業功德)을 쌓으며는 그 지은 죄를 아주 면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볍게 받게 됩니다. 아주 가볍게 받게 되아. 그래서 그 참 조달이, 제바달다(提婆達多)에 그 간계(奸計)한 그 유혹을 받아서 아사세왕(阿闍世王)이 그 부왕(父王)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았습니다. 그러한 대역죄(大逆罪)를 지은 그 아사세왕도 부처님께 참회를 허고, 그래가지고 지극정성으로 부처님을 받들고 많은 불사(佛事)를 행했습니다. 

 

(어째) 그 불사가운데에 부처님과 부처님제자들에게 그 많은 공양(供養)을 올리고, 모다 그 부처님이 법을 펴시는데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받들어 행했고,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뒤에 칠엽굴(七葉窟)에서 제 일회결집(第一回結集)을 헐 때에, 오백성승(五百聖僧)이 결집을 헐 때에 그 오백 성스... 오백성승들의 의식주 전부다, 의식주(衣食住)와 약(藥)과 모든 것을 다 이 아사세왕이 다 받들어서 그 결집을 행한 것입니다. 그밖에도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서 참 정치를 잘했습니다. 그 대역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사람으로 되아가지고 그러헌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아사세왕이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마는, 떨어지자마자 바로 천상(天上)에 태어났다고 경전에 전해집니다. 그러니 지은 죄를, 그 정업(定業)을 안 받은 것은 아니나, 진실(眞實)로 참회(懺悔)하고 그 지은 죄를 보상허기 충분할 만큼 더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공덕(功德)을 쌓으면 또 그렇게 또 천상에도 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누가 죄(罪)가 없겠습니까? 무량겁을 두고 오면서 알, 고의적으로나 또는 무의식 가운데에 참 많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육도를 윤회허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까.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중생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 바로 본업(本業)이여. 그것이 본업이라 고의적으로도 죄를 짓고 무의식중에도 죄를 짓고 해서 수없는 죄를 짓고, 그 죄를 지은 벌을 받으면서 동시에 또 새로운 죄를 짓고 해가지고 이 죄를 지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허게 된 것인데, 금생에 다행히 우리가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은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왕궁에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렸기 때문에 그, 그러헌 오욕락을 버리고 그 고행을 극복을 하고 그래가지고 납월 팔일, 임오년(壬午年) 납월 팔일(음력12월 8일)에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오늘날까지 그 불법을 우리는 만나게 되았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참 자기 자신을 냉정히 생각해보면 참 죄가 많고 업이 두터운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새벽마다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허도록 이렇게 법칙을 제정(制定)을 허셔서 이 용화사(龍華寺)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는 새벽마다 십악참회를 헙니다. 참회를 허고 참회를 해도 또 그날 하루 생각을 통해서 죄를 짓고 입을 통해서 죄를 짓고 몸띵이를 통해서 죄를 짓습니다. 그 미세한, 삼세육추(三細六麤)의 미세한 생각 동(動)한 것이 그것이 바로 죄업(罪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새벽에 다시 또 참회를 험으로써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도 가정에서 사회에서 생활을 허는 가운데에 좀 사업을 허던지 장사를 허던지 무엇인가 헐랴고 마음을 먹으면 본의 아니게 죄를 짓게 됩니다. ‘나는 죄가 많아서 도를 닦은들 무슨 견성을 헐 수가 있을 것인가, 무슨 성불을 헐 수 있을 것인가.’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허실 것이 아니라, 죄가 많을수록에 더욱 간절히 참회를 하고, 자기 성격이 고약하고 나쁜 버릇이 있고 그럴 수록에 더욱 참회를 해서 그 새로운 마음으로 ‘이 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더욱 간절히,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 순일무잡한 경지를 거쳐서... , 

 

그 사람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경지에 들어가면 아무리 안 할랴고 해도 기쁜 마음이 속에서 우러나. 아~ 너무너무 고요하고 너무너무 편안하고 너무너무 깨끗하고 맑으니까, ‘아~ 이런 경지에 영원히 있었으면...’ 그러헌 중생의 욕심이라고 헐까, 망령된 생각이 일어난다 그 말이여. 아 그런 경지에 들어갈 수록에 더욱 그 의단이, 의단(疑團)을 잘 단속(團束)을 해서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헐 텐데, 그 의단을 잘 단속헌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생각으로나 몸띵이로나 용을 써, 용을 쓰는 것은 못쓰는 것이여. 아주 간절히 헌답시고 이마에다가 내천(川)자를 쓰고 어깨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면서 아주 그 ‘이 뭣고?’를 갖다가 힘을 써서 든다 그 말이여.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여. 너무 지나치게 용을 쓰고 힘을 들이면 오히려 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가 흩어지게 되는 거여.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어깨에다가 힘을 주거나 목에다 힘을 주거나 눈에다가 힘을 주어가지고 용을 쓰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허리, 허리도, 허리를 갖다가 단정허게 펴지를 않고 등어리가 구부정허고, 목도 힘이 없고 어깨도 추욱 처져가지고 눈도 생선 눈처럼 맼아리가 없이 그래가지고 멍청허니 우두거니 그렇게 앉어서 그러라는 게 아니에요. 단정허게 몸을, 단정허면서도 힘이... 힘을... 긴장을 풀고, 긴장을 풀면서도 단정허니 앉으라는 거지, 힘을 쓰지 말라고 허면 맼아리가 없이 추욱 처져버리고, 또 그러지 말고 단정히 앉으라 하며는 목에다 힘을 주고 어깨다 힘을 주고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거여. 지혜로운 사람은 양단(兩端)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여.

 

우리 부처님께서 깨달라가지고 녹야원에 가셔서 그 교진여등 다섯 비구에게 맨 첨에 무슨 말씀을 하셨냐하며는, 대뜸 사제법문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너무 고행, ‘지나친 고행(苦行)도 올바르지 못하며, 지나치게 편안하고 사치스러운 의식주생활도 지혜로운 수행이 아니다’ 헌 것을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왜 그 말씀을 허실 필요가 있냐 허며는, 교진여등(憍陳如等) 그 오비구(五比丘)와 같이 그 고행(苦行)을 허시다가 부처님께서 그 유미죽을 받어잡순 것을 보고서, ‘아 싯달태자는 타락(墮落)했다.’ 해가지고 그 실달태자를 버리고서 그 녹야원으로 떠났거든. 그렇기 때문에 그 다섯 비구가 저 멀찌감치 보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 오는데 찬찬히 바라보니까 그 실달태자라 그 말이여. ‘그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고 수자타에 유미죽을 받아잡... 받아 묵은 그 타락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우리를 찾아오는가. 우리, 여기를 와봤자 우리는 발 씿을 물도 갖다 주지 말자. 일어서서 인사도 허지 말자.’고 짰다 그 말이여. 

 

그 다섯비구가 누구냐하며는 부처님의 아버지이신 정반왕(淨飯王)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내가지고 “너희들이 어쨌든지 태자(太子)를 잘 보호허면서 잘 시봉(侍奉)을 잘 받들어라.”하고 보냈는데, 그 사람들이 와가지고, -물론 부처님을 잘 이렇게 보호허면서도 같이 수행을 해서 깨달음에 이르도록 약속을 한 도반(道伴)이 된 것입니다- 그랬는데 부처님이 유미죽을 받아 잡숫고 배고픔을 못 참고 고행을 그만두니까, 그것을 보고 ‘이러헌 타락헌 사람하고 우리가 같이 있을 필요가 없다.’해가지고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자기네끼리 또 계속해서 고행을 허고 있었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가서, 가니까 그렇게 부처님이 와도, 실달태자가 와도 ‘우리 발 씿을물도 갖다 주지 말고 인사도 허지 말기’로 딱 짰는데, 실달태자가 터억 가니까, 너무도 얼굴에 환한 광명(光明)이 나면서 너무너무 거룩허니까 그렇게 약속헌 것도 잊어버리고 일어서서 모다 경건하게 절을 하고 발 씿을 물을 갖다가 떠다드리고 그랬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허셔야 했겠느냐 그 말이여. ‘지나친 고행, 너무 몸띵이를 못살게 구는 그러헌 고행은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한 것을 말씀을 허셨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입고 그런 사치(奢侈)에 떨어진 것도 못쓰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굶고 지나치게 잠을 안자고 해가지고 몸띵이 들볶는 고행이, 고행으로써 수행을 삼는 것은 성(聖)스러운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한 것을 말씀을 허시고 그것을 알아들은 다음에 사제법(四諦法)을 설하신 것입니다. 사제법을 설하심에 한사람은... 세 사람은... 네 사람은... 법문을 듣고 한사람은 때가 되면 나가서 탁발(托鉢)을 해가지고 와서 또 공양(供養)을 허고 같이 법문을 듣고, 그 다음날 또 때가 되며는 또 한사람이 또 교대(交代)로 나가서 밥을 얻으러, 얻어오고 이렇게 허면서 계속해서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듣고서 그 다섯 사람이 다 아라한도(阿羅漢道)를 증득(證得)을 했습니다. 다섯 사람이, “한 군데를 두 사람이 나란히 가지 말아라. 따로따로 떨어져서 인도(印度) 천지로 다니면서 법(法)을 설(設)해라.” 이렇게 되아가지고, 이렇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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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리는 밤낮 ‘‘이 뭣고?’를 해라. 활구참선을 해라. 이 경 저 경을 보아... 보지 말고 어쨌든지 화두를 거각하라’고 한결같이 이렇게 설법(說法)을 해왔습니다마는, 우리는 다른 경전은 안 봐도 ‘부처님께서 어떠헌 어른이셨으며, 어떻게 출가(出家)를 허셨으며, 어떻게 도(道)를 닦으셨으며, 어떻게 일생(一生)을 보내셨는가’에 대한 그 [팔상록(八相錄)]은 한번 보시는 것이 우리의 신심(信心)을 돈독(敦篤)히 허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월 초파일(음력4월 8일)이라든지 이런 성도재 날에는 제가 비교적 이 부처님의 역사(歷史)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집안에 선조(先祖)들이, 조상들이 어떠헌 어른이었는가’, 그래서 족보(族譜)를 통해서 우리 가문(家門)에 위대한 것도 앎으로 해서 자기의 처신(處身)이라든지 자기 긍지(矜持)를 세속사람들은 갖거든, 하물며 우리 불자(佛子)가 우리 생명에 조상, 생명에 스승이신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하야 

일좌부지경육년(一坐不知經六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인경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하니 

언전소식변삼천(言詮消息遍三千)이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세존당입설산중(世尊當入雪山中)하야, 

일좌부지경육년(一坐不知經六年)이다.

세존께서 당년(當年)에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한번 앉은 채 육 년(6년)이 지낸 줄을 몰랐더라.

 

그 뼈아픈 무서운 참, 고행을 허시면서 육년을 지냈어. 그러다가,

 

 

인경명성운오도(因見明星云悟道),

밝은 별을 보시고서 도(道)를 깨달랐다.

 

 

언전소식(言詮消息)이 변삼천(遍三千)이여.

그 도를 깨달은 그 소식(消息)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두루 퍼졌더라.

 

부처님께서 확철대오를 허셔서 그 깨달은 도리를 사십구 년(49년) 동안, 처음 <아함경(阿含經)>을 –아함경을 원시경전(原始經典)이라 그러는데- 아함경을 십이 년(12년) 동안을 설하시고, 그 다음에 <방등경(方等經)>을 팔 년(8년) 동안을 설하시고, 이십일 년(21년) 동안을 반야경, 육백 부(600부) <반야경(般若經)>을 설하시고, 마지막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마지막에 법화, 열반경을 팔년간에 설하셨어. 그래서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이렇게 합하면 사십구 년이 되는 것입니다[是卽名爲四十九].

 

참다운 법은 언, 언설로써 설할 수가 없는데, 왜 사십구 년 동안 그 많은 법을 설할 수 밲에 없었던가. 중생의 근기(根機)가 말없이 설한 법을 이해를 못하니까 근기 따라서 방편(方便)을 설하시다보니까 그러헌 사십구 년의 그 설법(說法)이 있을 수밲에는 없었던 것입니다마는, 부처님 분상(分上)에는 무슨 법을 설하셨건 다 설한바 없이 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의 참뜻은 깨달은 사람이 보면 ‘한 법도 설한법이 없는 법’이라고 허는 것이 분명허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보면 전부가 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분명히 사십구 년 동안 법을 설하셨다’고 이렇게 볼 수밲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내가 설한바 법이 있다고 생각허느냐? 설한바 법이 있다고 허며는 여래(如來)를 비방(誹謗)하는 것이 되고, 설한바 법이 없다고 허며는 부처님의 법(法)을 비방(誹謗)한 것이 되느니라.” 그래서 중생의 알음알이로써 부처님께서는 설한바 법이 있다고 해도 맞지 않는 것이고, 설한바 법이 없다고 해도 맞지 않는 거여. 있다고 허자니 분명 부처님께서는 설한바 법이 없는 것이고, 설한 바 법이 없다고 허자니 팔만대장경의 법이 엄연히 존재허고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있다’, ‘없다’ 헌 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과연 부처님 법이 있느냐 없느냐’ 한 것을 바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량분별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쨌든지 ‘이 뭣고?’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헌 이 조사(祖師)에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를 해야 ‘부처님 법이 설한바가 있냐, 없냐’도 알 것이고, 생사도, 생사법, ‘생사가 없는 도리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는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허셨지만 우리 중생에게는 분명히 생사가 있어.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단 말이여. 그런데 깨달은 경지에서 보면 생사가 없는 거거든. 바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그 생사 없는 열반의, 이 온 세계가 바로 열반(涅槃)의 세계(世界)여. 생사는 본래 없는 거여. 그래서 생사 없는 도리를 우리는 기어코 요달(了達) 해야만 되는 거여.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이런 불법(佛法)을 만났을 때 뿌리를 뽑아놓지 않고 그럭저럭 허다가 세속(世俗)에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이 우리의 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등한(等閑)히 헌다면 우리는 다시 어느 때 이 불법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무진년 납월 팔일을 맞이해서, ‘부처님의 출생허셔서 고행정진 허시고 대도를 성취해가지고 그 부처님의 최상승법이 우리에게까지 이렇게 미치게 된 역사’를 대략적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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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거각해서 화두(話頭)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헐 때에 부처님은 바로 거기에 출세(出世)허신 것이고, 한 생각 남이 없는 도리를 깨달을 때 부처님이 성도(成道)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출세와 부처님의 성도가 삼철 련(3000년) 전 인도국(印度國)에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그런 것이고, 참다운 진리(眞理)에 입각(立脚)해서 보면 ‘부처님의 탄생(誕生)과 부처님의 성도(成道)와 부처님의 열반(涅槃)은 바로 우리 각자의 일념(一念) 속에 들어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줄을 안 사람이라야 참선(參禪)도 정말 철저허게 헐 수가 있고, 그것을 믿는 사람이라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라고 헐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일념(一念) 속에 불출세(佛出世)와 불성도(佛成道)가 있는 도리’를 믿는 사람이 어찌 부처님의 방편(方便)에 떨어져서 그 바닷가에 그 모래를 헤치면서 좋게 생긴 조개껍질을 줏을랴고 몸부림을 칠 까닭이 있겠습니까? 

 

오늘 이 성도재(成道齋)를 기(期)해서 다시 새로 태어나고 다시 발심(發心)해서 해제(解制) 때까지, 이제 한 달 남짓, 한 달 반 이상이 남았습니다. 한, 한 달 남짓 남았는데 해제 때까지 정말 지난 철, 지난 안거(安居)동안 보단 앞으로 남은 안도... 안거동안을 정말 알뜰허게 정진(精進)을 해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상월만공산(霜月滿空山)헌데 

고안여천비(孤雁唳天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하사왕비력(何事枉費力)고 

월하대강류(月下大江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상월(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데, 

고안(孤雁)이 여천비(唳天飛)다.

서리친 달, 달빛이 빈산에 가득 찼는데, 외로운 기러기는 하늘에 울며 나는구나.

 

 

하사(何事)로 왕비력(枉費力)고, 

월하대강류(月下大江流)로다.

무슨 일로 헛되이 세월을 허비했던가. 달 아래 큰 강이... (녹음 끊어짐)

 

 

- 송담선사 법문 37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