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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다 대고 침을 밭으면】

이 뭣고? 2020. 12. 9. 10:01


【일광(日光)이 풀 위에 떨어져】


심경확연망피차(心境廓然忘彼此)하면
대천사계총포함(大千沙界總包含)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하고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심경(心境)이 확연(廓然)하야 망피차(忘彼此)하면,
마음 경계가 확연(廓然)해서 피차(彼此)를 잊어버리면,

‘내다 남이다’, ‘주관이다 객관이다’, ‘좋다 나쁘다’ 이러헌 피차를 잊어버리면,


대천사계총포함(大千沙界總包含)이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일월성진(日月星辰)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그 속에 다 포함되아 버린 거다 그 말이여.

마음속에 아상(我相) 인상(人相), 내다 남이다, 이건 좋다 나쁘다, 이러헌 차별심이... 차별(差別) 분별심(分別心)이 일어나면 육도... 육도(六道)가 분명히 있고 중생과 부처님이 따로따로 있고 온갖 재앙이 거기에서 생겨나는 것이지요. 마음경계가 확연(廓然)해서 인아상(人我相)이 뚝 떨어져버리면 삼천대천세계가 그냥 고대로, 현실(現實) 있는 고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되는 것이요 부처님의 세계요 진리의 세계인 적광토(寂光土)가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처처녹양감계마(處處綠楊堪繫馬)요,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이다.
곳곳에 푸른 버들에는 다 말을 맬 수가 있어.

사람이 옛날에는 다 말을 타고 댕이다가 그 말에서 내리면 그 말을 그 나무에다가 고삐를 매는데, 어느 곳에 있는 아무 버드나무에도 그 말을 마음 놓고 붙들어 맬 수가 있는 것이고,


가가유로투장안(家家有路透長安)이여.
집집마다 길이 있으면 그 길이 바로 장안(長安), 서울로 통하는 길이더라 그 말이여.

어느 집에서는... 어느 집이고 그 문 앞에 있는 길로 나가기만 하믄 거기서 바로 서울과 직통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참선(參禪)을 해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슬픈 생각이 일어나거나 기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어떠헌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해... 해나간다면, 그것이 바로 인아(人我) 피차상(彼此相)에 떨어지지 않는 가장 요긴(要緊)한 길이고,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단속(團束)해 나가면 마침내는 참 나를 깨달라서 바로 이 몸띵이가 이대로, 속에 피와 오줌과 똥이 들어있는 이 몸띵이 그대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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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조실(祖室)스님 법문에, 중국(中國)에 동산숭장로(東山崇藏老)라고 허는 선지식이 그 제자(弟子)를 참선허러 나가는, 행각(行脚)으로 나가는 제자에게 설(說)한 그 법문(法門)을 해주셨는데, 설사 머리를 깎지 않고 속가(俗家)에서 가정을 가지고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하는 그러헌 생활을 허신 분, 또는 출가(出家)를 해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아서 일평생(一平生)을 도(道)를 닦는 그런 스님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언제나 행각(行脚)을 지금 허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를...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지 아니하고 그렁저렁 살아가는 사람은 말고, 참으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공부를 헐랴고 마음을 낸 사람은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더라도 행각에 나서고 있다고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행각에 나선 사람은 자기의 고향과 부모를 다 여의고 떠나왔으며, 또 자기의 은사(恩師)스님이 계시는 그 절도... 절도 이미 하직(下直)을 허고 선지식(善知識)과 도반(道伴)을 찾어서 이미 길을 떠나있거든. 고향과 부모를 떠났고 거기에서 다시 은사와 자기가 살던 절도 버리고 걸망 하나를 짊어지고 행각에 나선 사람이, 무슨 딴 생각을 헐 겨를이 있으며 무슨 딴 일을 헐 틈이 있겠느냐 그 말씀이여. 앉으나 서나 일을 헐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소지(掃地)를 헐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헐 때라도 한 생각 돌이켜서 참 나를 찾는 그 공부 밖에는 일 분 일 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이렇게 간절히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허지 아니하면 후일(後日)에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의 밥값을 따져서 계산허게 될 것이다.’


옛날에 운광법사(雲光法師)라 허는 큰 스님이 계셨는데, 계행(戒行)이 청정(淸淨)하고 설법(說法)을 잘해서 그 운광법사가 법문을 허시면 뜰 앞에 있는, 또는 산에 있는 바위도 감동이 되아 가지고 고개를 끄떡끄떡 허고, 또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얼마나 설법을 잘 허시면 그 바윗덩어리가 감동이 되아 가지고 고개를 꺼떡꺼떡 허며 하늘에서는 꽃비가 쏟아지겠느냐 이 말씀이여.

그런데 그 운광법사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허시기를,
“시주... 시주(施主) 것은 그 쌀 알갱이 하나에 은혜(恩惠)가 일곱 근 반이라, 그렇게 시주에 물견이라 하는 것은 은혜가 그렇게 지중(至重)헌 것인데, 그 무서운 시주 것을 먹고 금생(今生)에 도업(道業)을 성취허지 못 하면 죽어서 소가 되느니라. 소가 되아 가지고 그 시주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평생토록 죽도록 피땀 흘려서 일을 해서 그 은혜를 갚어야 하고, 죽어서는 피와 고기와 가죽으로써... 가죽과 뼈로써 또 그 은혜를, 빚을 갚어야 하고, 한 생 동안 소 노릇을 해서 못 갚으며는 죽자마자 다시 또 소가 되아 가지고, 태... 소로 태어나가지고 또 그 은혜를 갚고 해서 몇 백 천생(千生)토록 그 은혜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렇게 소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설법을 허시니까 그 어떤 스님 한분이,
“그러시다면 큰스님께서는 능히 그 시주에... 그런 시주가 바친 그런 그 무서운 시주 것을 다 능히 소화시킬 수가 있으시겠습니까?”
하고 이렇게 여쭈어봤습니다.

그 운광법사가 대답허기를,
“능소(能消) 능소(能消)! 능히 소화를 시키고말고!”
이렇게 대답을 했는데, 아 운광법사(雲光法師)가 소가 되았습니다.

큰 황소가 되아가지고 “움메~ 움메~”하고 우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운광법사처럼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키고 그렇게 도(道)를 열심히 닦고, 그래가지고 큰시님이 되아서 저렇게 설법을 잘해가지고 많은 중생들을 교화(敎化)를 허셨는데 어째서 소가 되았느냐?’

그 운광법사가 소가 되아 가지고 죽은 다음에, 그 운광법사... 그 소를 껍데기를 벗겨가지고 그래가지고 큰 북을 만들아 가지고 절에다가 그 북을 만들아서 걸고 아침저녁으로 예불할 때는 그 북을 쳤던 것입니다. 그 북소리를 듣고, ‘운광법사와 같은 그러헌 큰 스님도 이렇게 소가 되아가지고... 되았는데, 하물며 그밖에 누가 소가 되지 않겠다고 자긍(自矜)을 헐 수가 있겠느냐? 이것을 거울삼아서 게을리 해태(懈怠)에 빠지지 말고 목숨 바쳐서 도를 닦을 지니라.’ 이러헌 뜻으로 큰 절에는 다 북을 매달아 놓고 조석(朝夕)으로 치는데,

‘어째서 운광법사와 같은 그러헌 대도사(大道師)가, 대 선지식이 소에 과보(果報)를 받았느냐?’
이것이 하나에 공안(公案)입니다.

‘어째서... 도(道)도 안 닦고 계행(戒行)도 안 지키고 그렇다면 혹 소가 되았... 된다 해도 그것이 당연허다고 생각이 되겠지만, 운광법사처럼 그렇게 계행이 청정하고 도를 그렇게 참 철저히 닦고 설법을 그렇게 참 부처님 설법을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지고 바위가 고개를 꺼떡거리고 이렇게 감동을 주는 그러헌 대법사(大法師)가 어째서 소가 되았느냐?’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계행을 청정허게 지키고, 밤잠을 덜 자고, 말을 적게 하고, 쓸데없이 외출을 허지 아니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잠을 안자는데에 있는 것도 아니요, 말을 아니 헌 데에도 있는 것도 아니요, 밥을 안 먹는데 있는 것도 아니요, 그러헌 것들이 수행허는데 마땅히 좋은 수행자로써 다 주의해야할 점이고 지켜야 할 점인데 또 거기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말이여.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옆구리에...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평생 동안을 장좌불와(長坐不臥)허는... 그런다고만 해서 그것이 가장 도를 잘 닦는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없는 것이고, 평생 동안 묵언(默言)을 하고 벙어리 노릇을 헌다고 해서 그것이 꼭 도를 가장 잘 닦는다 할 수도 없는 것이여. 만약에 눕지 않는 것으로써 제일가는 정진을 삼는다면 앉음뱅이는 금방 도(道)를 이룰 것이고, 말을 아니 헌 것으로써 가장 훌륭한 도를 닦는 것으로 여긴다면 벙어리는 일찌감치 도를 통할 것이고, 뭘 듣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않는 것으로써 도를 삼는다면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제일 먼저 도를 툭! 통하고 말 것이겠지만, 그러헌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먹고, 자고, 듣고, 보고, 말하고, 걷고, 그러허면서 거기에 떨어지지 아니해야... 눈이라 하는 것은 보라고 붙어있는 것이니까 보고, 귀라 하는 것은 들으라고 붙어있는 것이니까 듣고, 입은 말하고 밥 먹으라고 붙어있는 것이니까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말 할 때는 말을 하고, 밤이 오면 자라고, 쉬는 시간이니까 쉴 때는 쉬되 거기에 착(着)이 없어야 한다. 거기에 떨어지지 아니해야... 아니 허고서 거기에서 화두(話頭)를 올바르게 거각(擧却)을 해 나간 사람은,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허는 사람이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허는 사람이다 그 말이여.

묵언을 헌답시고 말은 아니 하면서 온갖 시비(是非)에 다 참견(參見)하고 온갖 참견을 다하고, 장좌불와를 헌다고 밤 잘 때 옆구리는 땅에 대지 아니하면서 종일토록 혼침(昏沈)에 떨어져서 끄벅끄벅하고, 그렇다면 그렇게 해가지고 무슨 도(道)에 보탬이 될 것이냐 이 말씀이여.
편행외도(徧行外道)는 일... 하루에 공양(供養)을 한 끼 밲에는 아니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수행자로써 헐 수 있는 모든 고행(苦行)을 다 해도, 그것이 참으로 바른 도를 깨닫지를 못했고, 밤 먹을 때 먹되 과식을 허지 아니하고, 말을... 헐 말을 허되 쓸데없는 말을 허지 아니하고, 이렇게 허되 대도(大道)를 성취한 선지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평상시(平常時), 말하고 듣고 보고 걸어가고 일하고 잠자고 밥 먹고 허는 이 평상(平常) 일상생활(日常生活)이 도(道) 닦는데 가장 중요한 시간(時間)이요 중요한 과제(課題)요 중요한 장소(場所)라고 허는 것을 깊이 명심(銘心)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들이는 것, 그리고 하루에 넷...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시간생활을 헌 것도 대단히 필요 헌 것이고 그렇되, 참으로 공부를 알차게 헐라면 입선 헐 때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시간, 결제 때뿐만이 아니라 산철에, 또 앉어 있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걸어 다닐 때나 똥을 눌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할 때라도 바로 그때 그 시간 그 장소 그 일에 있어서 경계(境界)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화두(話頭)를 성성(惺惺)하게 거각(擧却)해 나가는 이러헌 수행자라야 도를 빨리 그리고 바르게 성취할 것입니다.

사실 이 참선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복잡하고 이상스럽고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중생심(衆生心), 중생에 번뇌망상(煩惱妄想) 분별심(分別心) 이놈을, 이것을 돌이켜서 자기(自己)로 회귀(回歸)하는 이것이 가장 평범(平凡)하면서도 최고(最高)의 수행방법입니다.
어쩌다가 생각을... 생각이 나면 들고, 그래 안 허믄 경계에 떨어져서 그럭저럭 시간이 지낸 줄을 모르고, 그렇게 해가지고서는 미륵(彌勒)이 하생(下生) 헐 때 까지 닦어도 깨달을 기약(期約)이 없다고 과거에 모든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말씀을 허셨습니다.

오늘은 우리에 평상심(平常心), 일상생활(日常生活) 속에서 공부를 해 나가는 것, 그 점에 대해서 강조를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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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日光)이 풀 위에 떨어져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어디를 향해 법(法)을 설(說)합니까? 이 분상(分上)에서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뭘 물어보나? 뭘 물어봤어?”


“일광이 풀 위에 떨어져 삼라만상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어디를 향해 법을 설하십니까?”

“다 물어봤으면 물러가. 물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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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취산왕산막궁(寶聚山王算莫窮)호되
환여앙전사허공(還如仰箭射虛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통명일구초삼제(通明一句超三際)하면
절승승지만배공(切勝僧祇萬倍功)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보취산왕산막궁(寶聚山王算莫窮)이며,
보배가, 보배 무데기가 태산(泰山)과 같이 그렇게 많이 보배를 모여서 쌓아놨다. 쌓아놔서 얼마나 많은 보밴가 도대체 헤아릴 수가 없어.

세속에 돈을 많이 벌어서 보배를... 복을 많이 짓고 또 보배를 그렇게 많이 쌓아 놨다 하더라도,


환여앙전사허공(還如仰箭射虛空)이라.
저 하늘에다가 활을 쏘으면 그 하늘이 올라갈 만끔 올라갈... 갔다가는 다시 그 올라가는 기운(氣運)이 다 떨어지며는 땅으로 도로 떨어지는 거와 같다.


오늘 이 법회에 한 납자(衲子)가 나와서,
“설할 바 없는... 한 법(法)도 설(說)할 바 없는 곳을 향해서 무슨 설법을 어디다 대고 허느냐?”
이러헌 뜻으로 대 사자후(獅子吼)를 했습니다.

하늘에다 대고 침을 밭으면 제 얼굴에 떨어지는 법입니다.
설할 바 없는 법을 설하는 사람이나, 설할 바 없는 법을 어디다 대고 설하느냐고 묻는 사람이나, 바람을 거슬러서 문지(먼지)를 날리며는 그 문지가 자기 얼굴과 자기 몸에 온통 얹기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옛날부터 이런 법회(法會)가 있으면 눈 밝은 납자(衲子)는, 또 정진을 애써서 허는 납자는 선지식(善知識)에 법을 묻기도 하고 또 답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참 탁마(琢磨)를 해온 준례(準例)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헌 모습을 처음 보신 분은 어리둥절해서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시겠지만, 이러헌 법(法)을 거량(擧揚)하는 것은 대단히 많은 대중(大衆)들로 하여금 분발(奮發)을 허게 하고, 침체(沈滯)했던 사람에게 채찍을 가하고, 졸고 있는 사람에 정신(精神)을 바짝 채리게 하는, 그러헌 참 좋은 선불장(選佛場)의 하나의 양상(樣相)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실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으면, 조실스님이 법을 설하실 때에도 가끔 어떠헌 납자들이 나와서 법거량(法擧揚)을 하고 모다 그러헌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마는, 참으로 눈을 갖춘 분은 점검(點檢)을 잘 해주시길 바랍니다.


통명사구... 통명일구초삼제(通明一句超三際)하면,
일구(一句)를 통명(通明)을 해서 삼제(三際)를 뛰어넘으면,

과거 현재... 시간을 초월을 해버리면,


절승승지만배공(切勝僧祇萬倍功)이라.
아승지겁에... 아승지겁을, -아승지겁(阿僧祗劫)이라 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이란 말인데- 그 아승지겁에... 겁 동안 쌓은 공덕(功德)보다도 더 수승(殊勝)헌 것이다.

불법(佛法)은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져서 알아들으... 알아들어가는 그러헌 공부가 아닙니다. 일언지하(一言之下)에 돈망생사(頓忘生死)여, 한 말씀 아래에 몰록 생사를 잊어버려.
일언지하에 돈망생사 하는 그 방법이 바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충실헐 때에 일구(一句)를 통명(通明)하게 되고 무량겁 닦은 공(功)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공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학문은 점진적(漸進的)이여. 계속해서 해가지고 차츰차츰 나아져가는 것인데,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점진적이 아니고 비약적(飛躍的)인 것이거든.

만날 화두(話頭)를 들고 애를 쓰고 정진을 허되, 무엇이 조끔도 알아진 것이 없고 나아가는 것이 없습니다. 해 갈수록 답답허고 아무것도 얻어진 것이 없고 내놓은... 내 놓을 것이 없어요. 그러지만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뭣이 공부가 잘 되아간 것 같지도 않고 그렇지만, 물러서지 아니하고 한 걸음 한걸음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徹底)하게 단속(團束)을 해 나가면, 화두를 들랴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이여.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똥을 눌 때도 화두가 그대로, 일을 허거나 걸어가거나 소지를 허거나 누웠어도 그 화두가 성성(惺惺)허게 현전(現前)을 하고, 심지어 잘 때에도, 꿈속에서도 그 화두(話頭)가 현전(現前)을 허게 되면, 그땐 공부가 순숙(純熟)해져서 깨달음이 멀지 않다 하셨습니다.

이 공부, 이 법을 듣지 못했거나 믿지 못했다면 모르되, 듣고 믿은 이상은 이것 밖에는 인생으로서 헐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 공부 하나 함으로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날마다 종횡으로 외운 공덕보다도 이 한 생각 돌이키는 것이 더 훌륭헌 것이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하면, 경(經)을 읽고 외우고 허는 것은 노정기(路程記)를 외우는 거와 같고 약방문(藥方文)을 읽은 거와 같고 농사짓는 법을 외우는 거와 같애.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것은 바로 밥을 먹는 것이요 약을 먹는 것이요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는 것이여. 그러니 농사짓는 법을 공부... 열심히 읽기만 하고 실지로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안이... 안 짓는다면 한 알갱이의 한 톨의 곡식도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밥을 지어서 먹는다면, 한 숟가락이라도 먹으면... 먹어야 그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되아서 배고픔을 면한거와 마찬가지여.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찌 이것을 듣고 믿으면서도 이것을 등한(等閑)히 헐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인생으로 태어나서 헐 일은 이것 밲에는 없는 것이다.


“설할 것 없는 곳을 향해서 어디를 향해서 무슨 법을 설하느냐?”
설할 곳 없는 곳을 향해서, 분명히 설할 것이 없지만 설할 곳 없는 곳을 향해서 설해야만 되고, 닦을 곳 없는 곳을 향해서 목숨 바쳐서 닦어야 하고.

본분납승(本分衲僧)의 입장에서 보면 부처와 조사도 본분납승의 방(棒)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헌 부처에게도 방을 내리고 조사(祖師)에게도 방을 내릴 만한 그러헌 하늘을 찌르는 장부(丈夫)에 기상(氣像)을 가진 납자가 많이 출현(出現)해야만 불교에 중흥(中興)을 이룰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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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이 보통일이 아니여. 생사해탈 허는 일이 이 보통일이 아니니,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히 화두를 들어서,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 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이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 헐 것 같으면, 뼈에 사무치도록 되게 강추위를 허지 아니할 것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

되게 강추위를 해야 그 매화꽃이 향내가 진동을 허는 법이여.
겨울에 이상난동(異常暖冬)으로 날씨가 너무 푹하면, 그럴 때에, 그런 뒤 끝에 매화꽃이 피어봤자 별 향취가 없어. 되게 강추위를 뒤끝이라... 핀 매화라야 그 향취(香臭)가 진동(振動)허는 법이다.



금년(今年)도 봄도 다 가고 또 이렇게 가을도 다 가고 머지 안 해서 또 삼동 결제를 또 맞이하게 되았습니다. 무엇을 허다가 이렇게 또 일 년이 이렇게 다 지내가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해놓은 일은 없으면서 세월(歲月)은 이렇게 흐르는 물처럼 나를 위해서 잠시도 기달라 주지 아니하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음력 시월 십오일(10월 15일)이 겨울 석 달 동안 안거 결제(結制)날이니, 그때 법회에 모다 참석을 하셔서 석 달 동안 선방(禪房)에 나와서 방부(房付)를 딜이실(들이실) 분은 방부를 딜이시고 또 댁에서 허실 분은 또 댁에서 결제를 허시는 그러헌 마음으로 음력 시월 십오일 결제법요식(結制法要式)에 모다 참석을 해 주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송담선사 법문 18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