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일용(日用)을 써 나갈 것인가?】
【어떻게 일용(日用)을 써 나갈 것인가?】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하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가
반복원래시자한(反覆元來是這漢)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하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몸이 바다 가운데에 있으니 물 찾기를 쉬어라.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니라.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니 산을 찾지 마라.
바다 속에 들어가서 헤엄을 치고 있으면서 ‘물이 어디가 있는가?’ 하고 물을 찾지 말고,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면서 ‘산이 어디가 있는가?’ 하고 산을 찾지 말아라.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백년이면 일 년이 삼백육십 일이니까 백년이면 삼만육천 일인데, 백년(百年) 삼만 육천조(三萬六千朝)를,
반복원래시자한(反覆元來是這漢)이니라.
백년 삼만육천 일 반복허는 놈이, 엎쳤다 뒤쳤다 앉았다 일어났다 오고가고 그 반복허는 놈이 원래로 이놈이더라.
오늘은 임술년(壬戌年) 이월 초하루(2월 1일) 반살림 결제(結制)날입니다.
그전에는 조실(祖室)스님 열반(涅槃)허신 뒤로 쭈욱 해제(解制) 동안에도 스님네가 해제했다고 해서 이렇다 할 꼭 갈 곳도 없으면서 모다 걸망을 지고 불불이 나가서 여기저기 동서남북으로 그럭저럭 다니면서 다음 철 결제까지 기다리느라고 정처(定處)없이 모다 행각(行脚)도 하고 모다 이리가서 쉬기도 하고 약(藥)도 먹고 모다 그랬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이 도량(道場)에서 결제 때와 똑같이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허면서 정진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이리 생각을 해서, 산철에도 가시지 말고 여기서 공부를 허시기를 바래서, 그렇게 해서 스님네가 이 산철에도 정진을 쭈욱 해 내려 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금년(今年)부터서는 옛날에 그렇게 산철에 정진을 했지만, ‘산철결제’라 하고 무슨 결제법요식(結制法要式)을 거행(擧行)허고 그러지는 안했습니다. 금년에는 이렇게 새로 선방(禪房)도 짓고 이렇게 법당(法堂)도 짓고 그랬으니, 기왕 산철에 결제를... 안거(安居)를 허기로 헌다면 간략히 결제법요식을 갖고... 갖는 것이 우리의 신심(信心)을 굳건히 하고 여러 가지 분위기를 엄숙히 허는데에 도움이 되리라 이리해서 여러 스님네의 뜻을 받아들여서 이렇게 간락히 법요식을 거행을 허게 되았습니다.
모다(모두 다) 신도님한테는 산철결제법요식에 참석허시라는 구체적인 발표는 허지 안했는데 이렇게 특별히 신심(信心)이 있는, 또 인연(因緣)이 있는 몇 분의 신도님네들이 참석을 해 주셔서 이것도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因緣)의 소치(所致)라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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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眞覺國師)에 좌우명(座右銘)]이 있는데, 그 좌우명을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우리 정진(精進)을 해 나가는 출가납승(出家衲僧)으로서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자(菩薩子) 보살자(菩薩子)여
상자마두심유의(常自摩頭深有以)니라.
보살에... 보살이여, 보살의 자식이여, 보살이여!
우리가 모다 보살의 자식이요, 새끼보살이라 이렇게 생각 헐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상자마두심유의(常自摩頭深有以)여.
항상 스스로 자기 머리를 어루만진... 만지... 만져 보라 그 말이여.
깊은 씀이 있으리라, 깊은 의의(意義)가 있으리라.
마두인득심사량(摩頭因得深思量),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냐.
머리를, 자기 머리를 자기가 떡- 어루만지면서 깊은 사량(思量)을, 생각헌 바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여. ‘부처님이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하는 그러헌 마음으로 자기가 자기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생각을 허는 것이여.
출가본의도하사(出家本意圖何事)냐,
출가(出家)한 본 뜻이, 목적이 무엇을... 무슨 일을 목적으로 해서 출가를 했느냐!
승기상모속기심(僧其相貌俗其心)이요,
모냥은 분명히 중에 모냥을 하고 있는데,
그 마음은 속인(俗人)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참으로 여법(如法)한 출가인(出家人)으로서의 몸과 마음을 다 갖추었느냐.
가불참천이괴지(可不慚天而愧地)니라.
가히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워 헐 일이고 땅을 내려다보고 부끄럽지 않느냐.
추행광언임여위(麤行狂言任汝爲)요
화탕노탄하회피(鑊湯爐炭何回避)리요.
머트러운 행동과 미치광이 같은 말을 니 멋대로 행하고 니 멋대로 지껄이니... 지껄이다가,
화탕노탄(鑊湯爐炭)을 하회피(何回避)냐,
화탕(鑊湯)지옥과 노탄(爐炭)지옥을 어떻게 회피헐 수가 있겠느냐.
이건 진각국사(眞覺國師)가 항시 자기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던 글입니다. 이 글은 바로 출가납승으로서는 누구나 이러헌 좌우명으로써 자기(自己)의 좌우명(座右銘)을 삼는다 해도 조끔도 손색이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기가 자기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이 좌우명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되새겨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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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조실스님 법문(法門)가운데에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있는 법문을 해 주셨는데,
네 가지의 은혜(恩惠)가 중(重)한 것을 잊지 않았느냐?
사대(四大) 오온(五蘊)이 생각 생각이 일초 일초 늙어가고 있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안했느냐?
너의 목숨이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려 있는 것을 잊지 안했느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와 조사(祖師)를 만났느냐?
이러헌 등(等)의 여러 가지 그 법문을 해 주셨는데, 그러헌 말씀도 우리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그런 중대(重大)헌 법문(法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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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가한 선객(禪客)이 무엇이 제일 고민(苦悶)이냐?
옷이 없는 것도 고민이 아니요. 먹을 것이 없는 것도 고민이 아니요, 건강이 좋고 나쁜 것도 그것도 큰 고민이 아니고, 오직 큰 고민은 ‘정진(精進)이 순일(純一)허게 되냐 안 되느냐, 오직 이 하나의 고민이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중국에 고봉선사(高峰禪師), [선요(禪要)] 법문을 허신 그 고봉선사께서도 처음에 출가해서 선방에 들어와 가지고 화두(話頭)를 타서 참선(參禪)을 하는데, 어떻게 잠이 퍼 오고... 오던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포단(蒲團) 위에 앉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득이 밥을 먹을 때에만 방석에 앉아서 밥을 먹고는 그밖에는 방석에 앉어 있을 수가 없어. 앉었기만 허면 혼침(昏沈)이 와서 졸음이 오기 때문에 앉지를 못하고 금방 앉을랴고 하면은 잠이 퍼 와가지고는 끄뻑.
일어나가지고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허는데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점심 먹고 저녁 먹을 때까지 그래가지고 왔다 갔다 허면서 잠을 깨가지고 잠이 깨져서 막 좀 앉아... 가서 방석에 가서 앉을랴고 하면은 또 잠이 오고, 잠이 깨며는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망상이 좀 가라앉을 만 허면 잠이 오고 이랬는데, 처음에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결심(決心)을 허기를 ‘삼년 동안 정진을 해 가지고 삼년이 되아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면 죽어버릴 각오’를 하고 공부를 시작을 했는데, 삼년이 거의 다 되도록 조끔도 공부가 진취(進就)가 없었습니다.
죽을 날은 얼마 안 남았는데, 기한은 얼마 안 남었는데 공부가 전혀 진취가 없어. 이 세상에 무엇이고 삼년동안 적공(積功)을 들이면 숙달(熟達)이 되아서 많이 무엇... 나아... 진취가 있는 것인데, 어찌된 셈인지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아무리 고단해도 자리에 눕지를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허는데 삼년이 되도록 조끔도 진취가 없었습니다. 혼침과 산란 두 가지로 완전히 이십사 시간(24시간)이 점철(點綴)이되았어. 혼침 아니면 산란, 산란 아니면 혼침. 아무리 곤해... 곤(困)해도 자리에 눕지를 않고 낮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밤새도록 잠을 안 잘랴고 도량에 나가서 왔다갔다. 밥 한 그릇 먹는 그 잠깐 동안도 화두가 순일허게 들리지를 아니했어.
그리다가 마즈막에 가서 달마(達磨)스님 기일(忌日)에, 달마스님 모셔진 영각(靈閣)에 올라가서 그 제사를 지내는데, 달마스님... 그 오조법연화상(五祖法演和尙) 진영(眞影)에 쓰여 있는 글에,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反覆元來是者漢)이라.”
그 영찬(影讚)을 보고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는데, 그 확철... 그 확철대오 허기 전 일주일 전에 꿈에 단교화상(斷橋和尙)이 보이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그 화두(話頭)를 꿈에 받고서 꿈을 깼는데, 그 화두가 성성(惺惺)허고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밥을 먹어도 의심이요 똥을 누어도 의심이요, 산을 봐도 의심이요 물을 봐도 의심이요, 대중가운데 있어도 대중은 한 사람도 보이지도 않고 오직 의단만이 독로해서 밥 먹을 것... 밥도 건성으로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화두(話頭)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일부러 딴 생각을 좀 헐랴고 해도 딴 생각이 나지를 않고 오직 화두만이 독로를 했다 그 말이여.
그 전에는 화두를 아무리 들랴고 해도 들을 때뿐이지 금방 산란심(散亂心)이 들어와 버리고 그랬었는데, 꿈에 단교화상 ‘만법귀일’ 화두를 받은 이후로는 제절로 그렇게 되았더라. 그래가지고 이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가 일 주일을 고대로 가는데 마침내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 반복원래시자한(反覆元來是者漢)’ 이란 영찬(影讚)을 보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는데, 어째서 무슨 까닭으로 해서 삼년 동안을 그렇게 애를 썼어도 공부가 일호진취(一毫進就)가 없었느냐? 그 원인을 캐 보니까, 다른 디에(데에)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정(疑情) 상(上)에서 공부를 짓지 아니 헌 데 있더라. 화두(話頭)만을 자꾸 거각(擧却)했을 뿐이지 그 간절한 ‘의정(疑情)’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공부가 잘 안 된다’, ‘의심이 잘 안 든다.’ 많은 수행승(修行僧)들이 이 년, 삼 년 내지 십 년을 선방으로 다니면서 공부를 해도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못하는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가끔 “어떻게 하면 의정이 돈발 하겠습니까?” 이러헌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다정한 도반(道伴)이 무상(無常)하게 죽은 것을 보고, 그 도반이 죽어서 사십구재에... 사십구재(四十九齋)날 김응애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어린 나이에 선방(禪房)에 들어오셔서 그 용맹정진을 해 가지고 마침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허셨습니다마는, 그러헌 특별한 발심기연(發心機緣)이 있거나, 스스로 그렇지 못하면 이 고봉스님의 경우와 같이, 되고 안 되고 헐 것도 따지지 말고 아주 죽기로 맹서(盟誓)를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일 년, 이 년, 삼 년, 이렇게 피나는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공부가 되고 한 것도 따지지 말고 모기가 마치 쇠로된 소에 입부리를 박듯이, -모기가, 그 약하디 약헌 모기가 어떻게 쇠로 지어 붓어진 소 몸에다가 그 입부리를 박은 들 들어갈... 상식적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들어갈 것이다 안 들어 갈 거다’ 그것도 생각허지 않고 몸띵이채 소... 쇠로된 소 몸에다가 뚫고 들어가는 것이여- 입부리와 자기 몸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거나 말거나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헌 것을 전혀 따지지 아니하고 몸띵이채 아주 육탄(肉彈)으로 소를 향해서 몸을 던진다 이 말인데,
이러한 대용맹심, 조실스님께서도 도반의 죽음으로 해서 무상함을 깨달라서 발심을 허셔 가지고 대중의 사분정진에 구애(拘礙)받지 아니하고 법당 뒤에다가 꺼적을 하나 깔아놓고 거기서 앉아서 정진(精進)을 하다가 졸으면 또 포행(布行)을 하고 또 졸음이 나가면 정진을 하고 무섭게 정진을 허셨습니다. 그러헌, 속에서부터 불타오르는 그러헌 그 간절(懇切)한 분심(憤心), 신심(信心)이 아니면 대의단(大疑團)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이 모여서 방을 짜서 정진을 허게 되니까 대중(大衆)의 규칙(規則)에 순응(順應)을 해야되겠지만, 대중의 규칙에 어긋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철저한 자기규칙,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고봉스님처럼 조실스님처럼 그러헌 철저한 가행정진을 해서 기어코 이번 철에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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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회타귀굴(忘懷墮鬼窟)이요.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갱의제이병(更擬除二病)하면,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망회(忘懷)에 타귀굴(墮鬼窟)이요.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라.
생각을 잊어버릴랴고 허고, 생각을... 자꾸 생각을 잊어버릴랴고 노력을 하면, 망회(忘懷)를 잊어버리면, 회포(懷抱)를, 생각을 잊어버리면 흑산하귀굴리(黑山下鬼窟裏)에 떨어지고,
착의종원정(着意縱猿情)이다.
뜻을 착(着)하면, 생각을 일으키면, 그 생각이 무슨 생각이 되았건 무슨 뜻을 착(着)하면 잔나비의 뜻에 놀아난 것이다.
갱이재이병(更擬除二病)하면,
생각을 잊을랴고 허지도 아니하고 뜻을... 뜻에... 뜻을 부딪칠랴고 허지도 아니하고, 이 두 가지 병(二病)을 없앨랴고 뉘기 짜면,
미면야호정(未免野狐精)이다.
야호에 정, 야호정(野狐精), 야호(野狐)는 여우, 여우에 정(精)을 면틀 못할 것이다.
——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허고,
경수호한형(鏡隨胡漢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직요임마거(直饒伊麽去)라도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이니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생각을 잊어버리면 귀신굴(鬼神窟)에 떨어지고, 뜻을 부딪히면... 착(着)하면 원숭이의 정(精)에 놀아나고, 이 두 가지 병(病)을 없앨랴고 허면 야호(野狐)의 정(精)을 면틀 못한다.
(수임방원기(水任方圓器))
그렇다면 물이 둥글고 모난 그릇에 따르듯이,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도 둥그렇게 담아지고, 모난 그릇에 담으면 물도 모난... 모나게 담... 담아지고,
경수호환형(鏡隨胡漢形)이다.
거울은 검은 것이 거울 앞에 나타나면 검은 것이 거울 속에 비추고 흰 것이 나타나면 흰 영상(影像)이 거울 속에 드러나듯이,
(직요임마거(直饒伊麽去))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가져가면 어떻겠느냐!
유교환롱맹(猶較患聾盲)이다.
이러헌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마치 귀먹은 벙어리와 눈이 먼 장님에다가 비유할 수 밲에는 없느니라.
최상승법을 닦아가는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은, 과연 어떻게 일용(日用)을 써 가겠는가, 수용(受用)을 해 갈 것인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 송담선사 법문 164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