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생각.

* 태고의 데미우르고스는 신인 동시에 악마이다. 그는 최초부터 존재한 신이다. 그만이 때때로 일어나는 대립의 건너편에 서 있으며, 낮과 밤, 선과 악의 구별을 모른다. 그는 무이며 또한 일체이다. 그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인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비하고 대조할 수 있는 사물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낮과 밤, 따뜻함과 차가움의 대립에 묶여 있으며, 신과 악마를 모두 필요로 한다.
* 구약이나 신약 성서에서 볼 수 있는 전능한 신의 모습은 참으로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이 신의 본래 나타내야할 모습을 하고있지 않는데에 문제가 있다. 신은 선한 것, 고귀한 것, 아버지이며 아름다운 것, 높은 것, 다정다감한 것...... 아주 좋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악마의 탓으로만 돌려버렸기 때문에 세계의 절반은 은폐되고 묵살되어 있는 것이다.
* 신을 가리켜 어떤 사람은 빛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둠, 어떤 사람은 아버지, 어떤 사람은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은 평안함이라면서 찬양하고, 어떤 사람은 운동, 불, 차가움, 심판하는 자, 위안하는 자, 창조하는 자, 파괴하는 자, 용서하는 자, 복수하는 자라면서 찬양한다. 신은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인간에 의해 명명되고, 사랑을 받고, 찬양을 받고, 저주를 받고, 증오를 받고, 기도를 받기를 원한다. 모든 세상 사람들로 이루어진 합창대의 음악 속에 신이 머무르는 신전이 있고, 신의 생명이 있다.
* 모든 인간은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으나 영혼은 결코 그렇지 않다.
* 신에 대한 사랑이 선에 대한 사랑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선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으며, 계율에도 쓰여있다. 하지만 신이 계율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계율은 신의 극히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계율은 지키면서도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있다. (전지전능, 온전한 앎과 온전한 가능성, 이것은 순간에 깨어 있는 우리의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 신은 있다. 오직 하나뿐이다. 그 신은 당신의 마음 속에 살고 있다. 당신은 거기에서 신을 구하고, 거기에서 그 신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 모든 탄생은 전체에서 분리되고 한정되는 것이며, 신에게서 격리되는 것이다.(아담과 이브가 신의 나무에 달린 사과를 따서 먹음으로 그 나라에서 추방당한 것과 같이)
* 사람의 일생은 청춘과 노년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춘은 이기주의로 끝나고, 노년은 남을 위한 생활로 시작한다.
* 기도는 음악처럼 신성하다. 언제나 우리에게 구원이 된다. 기도는 신뢰이고 확인이다.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고뇌를 말할 뿐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노래하듯이 고뇌와 감사의 말을 중얼거린다.
* 신앙의 길은 사람마다 달라도 좋다. 내게 있어 그 길은 숱한 과오와 번뇌, 자기학대, 어리석음의 원시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힘겹게 넘어왔다. 나는 사상면에서 자유롭기를 원했으므로 신앙심을 영혼의 병이라고 여겼다. 나는 고행자였으므로 얼음물에 몸을 집어넣었다. 나는 신앙심이 건강함과 쾌활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다.
* <기도>
신이여 나를 절망하게 하소서.
당신에게거 아니라 나에게
방황하는 슬픔을 남김없이 맛보게 하소서.
모든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시고
모든 굴욕을 내가 받게 하소서.
내가 나아갈 때 돕지 마시고
내가 부서지거든 그때에 내게 제시해 주소서.
그 모두가 당신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불꽃과 괴로움을 함께 낳은 자가 당신이었음을
왜냐하면 나는 기꺼이 멸망하고 싶은 것입니다.
기꺼이 죽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의 품 안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시나이 산이 아니다. 성서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사랑, 아름다움의 본질이 그리스도교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옛 사람의 안에, 괴테에게, 톨스토이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너의 안에, 너 자신 안에, 우리들 각자의 안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옛부터 내려오는 오직 하나, 언제나 변함없는 가르침이다.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진리이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 속에 포용되는 천국의 가르침이다. (그럼 우리의 그 ‘자신 안’은 어디인가?)
* 나는 잘 알고 있다. 불안에 쫓기는 넋이여. 너에게는 네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필요한 것은 없고, 또 그 이상의 음식도 잠도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너를 둘러싸고 파도가 속삭인다. 너는 파도이며 숲이다.(너의 들숨과 날숨은 파도의 밀물과 썰물이며, 들이쉼에 나무들은 푸르러지고 내쉼에 낙엽들은 쇠잔히 떨어진다) 너 자신이 숲이라서 거기엔 안도 밖도 없다. 너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되어 바다를 헤엄친다.(새는 기쁨과 불안함으로 두 날개짓을 하며 높이 날으고, 물고기는 희망과 후회의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바다로 헤엄쳐 나아간다.)
너는 빛을 마심과 동시에 빛 자체이며, 어둠을 맛보면서 어둠 자체인 것이다.
* 때때로 새가 울거나
바람이 가지 사이를 불어 지나가거나
개가 먼 농가에서 짓거나 하면
오랫동안 귀를 기울이고 침묵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영혼은 쫓기듯 돌아온다.
잊었던 천년이나 전의
우는 새 소리, 부는 바람 소리가 나를 닮아 있고
나의 형제였던 옛 말과 나의 영혼은 나무가 되고
짐승이 되고 흩으러진 구름이 된다.
그리고 낯선 모습으로 돌아와
나에게 묻는다.
이때 나는 뭐라고 답해야 좋은가?
- 헤르만 헤세.







* 헤세의 그림.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 중에서.